나는 나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전까지는.
지금 와 생각해 보면, 해열제를 먹으면 열이 떨어지 듯, 약을 먹으면 손쉽게 우울이 나아질 거라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일들이 그러한 것처럼, 쉽게 단번에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몇 번의 약 교체를 통해 그나마 '나에게 맞는 약'을 만났지만 그마저도 부작용이 있었다.
날뛰는 감정이 그중 하나였다. 사소한 일에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났다.
어느 날에는 지나치게 부지런해진 것도 같았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들을 가족들에게 토해내듯 쏟아내는 날들도 있었다.
'약 때문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지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감정불내증이 회복되는 과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복의 과정. 그것은 불편하고 낯선 나 자신을 견뎌야 하는 시간인 것만 같다.
어디서부터가 원래의 모습이고, 어디까지가 약에 의한 것일까 여전히 헷갈리기만 하다.
다만 참으로 다행인 것은, 나를 온전히 기억하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아의 경계선은 희미해지는 것 같지만, 이들은 변함없이 한 걸음 뒤에서 나를 선명히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잠시 나를 잃어도 괜찮지 않을까.
언제든 다시 나를 찾아줄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이들에게 묻고 따라가다 보면, 익숙하고도 그리웠던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오늘도 이들의 손을 잡고 안갯속을 한걸음 나아가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