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잔인함, 현실

현실만큼 잔인한 극본이 있을까.

by 무어


최근에 끝난 ‘일타스캔들’을 보면서 주인공을 스토킹 하던 범인이 마지막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라는 드라마를 보면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아빠가 끝내는 할머니 장례 치르고 남은 조의금을 갖고 밤에 도망가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는 이 장면을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썼겠지만, 이것만큼 행복한 결말이 있을까 싶다. 현실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결론이다.

스토킹 하는 범죄자는 감옥에 가서도, 또 나와서도 끝까지 찾아와 본인 입장에서의 ’ 복수‘를 하는 게 현실이다.

술에 쩔어 사는 폭력 아빠는 절대 어딘가로 도망가지 않는다. 자신이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곳은 가정뿐이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폭력을 즐길 뿐이다.

자기 발로 돈을 갖고 사라져 준다면 그만한 축복이 더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더 글로리’ 드라마 속에서 아버지를 죽인 범죄자가 감옥에서도 아들을 괴롭히려고 편지를 쓰고, 경고하기 위해 온 어머니를 조롱하는 장면은 그나마 현실에 가깝다.


현실 속에서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곧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고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인들의 폭력을 합리화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타고난 사이코패스일 수 있겠다.


그렇게 당하는 피해자들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대부분은 잘못이 없다. 그저 가해자에게 잘 못 걸린 거다. 뽑기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하지만 태어남을 잘못이라고 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우리는 스스로 태어남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이 아닌 일에 잘잘못을 가리는 게 합리적인가?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하는 것에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정당방위일 수도 있고 사회 규범상, 상식적인 선에서 정말 맞을 짓을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들 말한다.

누가? 멀리 떨어져 있는 제3자가, 사건이 터진 후 한참이 지나서야 수습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경찰들이, 검사들이, 판사들이 그렇게 말한다.


도대체 피해자들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들 대부분은 더럽게 가난한 집구석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을 것이다.

부모는 매일 치고받고 칼부림하며 싸우다 이혼하고 그런 가족 중엔 희한하게 꼭 정신이 온전치 않은 형제가 하나씩 있다. 도박에 중독됐거나 알코올중독에 바람이 났거나, 좀 더 나가면 마약에도 손을 댄 부모. 이런 환경에서 피해자는 누구일까.

혹시 나에게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거 아니냐고 코웃음 치는 분이 있다면 본인에게 행복한 삶을 주신 ‘확률’에 감사하길 바란다.

나의 상상력이 부족했을 뿐, 앞에 말한 사례들은 너무나 최소한의 현실만 언급했다.


가난할수록 가족이 제일 큰 가해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가해자 입장에서도 이유가 있긴 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하다. 말투가 이상하다. 돈을 주지 않는다.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집에 늦게 들어온다. 공부를 못한다. 나를 무시한다. 심지어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혹은 그냥…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폭력을 휘두른다면 인류는 1주일 안에 멸종할 것 같다.

결국 폭력적인 사람들은 이성적이지 않다. 이성적 사고가 어려운 사람들이다. 사회성이 떨어진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로 폭력적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폭력을 휘두르고 마약을 하고 도박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가족으로 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해자로 인해 본인의 삶도 지옥으로 변한다. 잘못이 없음에도 ‘뽑기’ 운이 안 좋았다는 이유로 불행한 삶을 사는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하게 안개 낀 서해안고속도로를 100km의 속도로 운전하는 사람은 당장 서야 한다.

1분만 더 달리고 서야지, 조금만 더 달리면 안개가 걷힐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 종 친다.

그 사람이 부모든, 형제든, 배우자든, 누구든지 그 순간 바로 멈춰야 한다.

우리나라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다양한 사회복지제도가 정비되어 있다. 아직 미성년자라면 즉시 시설로 보내는 게 맞다.

시설에서 지내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라면 인연을 끊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문제가 따라올 수도 있다.

성인임에도 가해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과 폭력에 시달리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경제적인 어려움은 나를 꾸준하게 일정한 강도로 괴롭힌다. 폭력은 일순간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나라면 경제적 어려움을 택하겠다. 현실적으로 그런 가족이 부유할 확률이 높지 않고 오히려 나의 경제활동까지 강탈당할 확률이 더 높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노동착취에 폭력까지 당할 필요는 절대 없다.


이때 피해자를 억누르는 또 다른 족쇄는 또 다른 피해자인데…

매 맞는 아내 입장에서 혼자 도망가면 남게 되는 자식이 걱정 돼 참게 된다.

그 결정은 자식에게 도움이 될까? 매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은 삶 속에서

자식은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행복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까? 답은 너무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연민이다. 가해자에 대한 연민.

어찌 됐든 가족이라면 단 한 번이라도 웃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추억이라고 포장되는 그런 좋았던 순간들이 있을 텐데, 그때를 생각하며 가해자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

폭력을 당하는 그 순간은 피해자도 분노를 느끼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는 또다시 반복된다.


금연은 잠시 담배를 쉬고 있을 뿐이지 끊은 건 아니라는 말이 있다. 폭력도 끊을 수는 없다. 그 텀이 짧고 길고의 차이일 뿐, 언젠가는 다시 반복된다.

멈춰야 하나라고 생각이 들었다면 그 순간 바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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