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없으면 노후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되는 건가…

by 무어

나는 부모가 되어 보지 않아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자식을 키우는 일이 여러 가지 면에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기 때문에,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일은 아무래도 소홀하게 될 것 같다.

그저 자식의 미래를 위해 본인의 현재를 포기하는 삶을 살지 않을까? ‘포기’라는 단어가 불편하다면 희생이나 투자 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 자식이 커가는 모습 속에서 아주 간간히 느끼는 순간적인 기쁨들을 마약처럼 여기며, 자신의 분신이라 위안 삼아 뿌듯할 것 같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이 생물학적으로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나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고 사망하는 것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자연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다.

그런데 철학적으로 접근하면 혈육을 남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철학에서 인간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태어났기에 삶을 살아내고, 가능하다면 ‘선’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이다. 철학적으로 자식이 있는 것이 선은 아니다. 반대로 없다 해서 악이 될 수도 없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본인의 의지이든 아니든 의미가 없다.

사회적으로는 올바른 사회구성원을 키워내서 이 사회가 영속될 수 있게 이바지한다는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도 ‘올바른 구성원’을 키워 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자식 일은 부모 뜻대로 안 된다고들 하는 걸 보면 내 아이가 범죄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으니 자식을 낳은 것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일조했다고 보긴 힘들 것 같다.


어쨌든 자식이 없는 것이 우리 부부의 의지는 아니다.

가끔 2세가 없어서 아쉬웠던 적도 있다. 정확하게는 나와 같은 유전자의 인간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더 컸다. 또 우리 부부가 아이를 키운다면 그 아이는 어떤 사람으로 자랄지 궁금했다.

경제적으로 살만해지자 사회에 기여하는 차원에서 아이를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교장이나 기업 오너 같은 생각도 했었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게 자연의 섭리이고 모든 동물들의 본능이기 때문에 자연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겠지만, 지구에 이미 인간은 너무 많다.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고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자연은 더 반가워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식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나’의 시간이 더 많다. 자녀를 키우는데 들어갈 시간에 각자의 취미를 하거나 땅을 일군다. (철학적인 의미의 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진짜 땅을 일궈 농사를 짓고 정원을 가꾼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수시로 한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간적, 철학적, 도덕적, 의학적, 건축학적으로 은퇴 후에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무엇보다 가장 고려되는 것은 경제적 측면이다.

은퇴 후에는 지금처럼 많은 돈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돈이 들진 않는다)

인간관계도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일을 하면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은 업무적인 필요에 의해 만나고 일이 끝나면 거의 다시 연락하지 않지만, 그래도 기계가 아닌 이상 만나는 동안엔 마음을 쓰게 된다. 가끔은 한발 더 들어가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일을 하지 않게 되면 그런 식으로 만나는 사람이 줄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더 확장되진 않을 것 같다.

(은퇴 후는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추측일 뿐이다. 의외로 더 넓고 깊게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다..)


취업 전 나의 목표는 10억을 모으는 것이었다. 10억을 모으면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에 가서 번 돈을 쓰며 살고 싶었다. 2000년대를 전후해서 10억은 지금보다 큰돈이었다. 버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벌기만 한다면 은퇴자금으로 허무맹랑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10억으로 남은 인생을 시골에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정말 밥만 먹고살아야 할 것 같다. 은퇴 자금으로 10억은 참 애매한 숫자가 된 것이다.

대도시는 아니지만 너무 시골도 아닌 지방의 중소도시를 기준으로 했을 때, 예를 들면 춘천이나 충주, 청주, 단양, 강릉. 이런 곳에 약 2백 평의 땅을 사고 20평 정도의 단층집을 짓는다고 하면 땅값 1억에 건축비와 세금 등 2억 정도는 필요하다. 은퇴를 해도 차를 한대 굴릴 것이고 각종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두 명의 통신비, 먹는 비용, 집 유지비에 옷을 살 것이고 외식도 하고 카페도 가고 가끔 여행도 다니고 병원도 들락거릴 것이다. 그런 비용들을 계산해 보면 우리가 매월 필요한 돈은 최저로 잡아도 약 200만 원이다.

50세에 은퇴를 해서 90세까지 산다고 할 때, 1년에 2400만 원, 10년이면 2억 4천만 원, 40년이면 9억 6천만 원이 필요하다. 50세에 10억이 있다면 간신히 인간답게 살다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집값으로 이미 3억을 지출한 상태이기 때문에 3억을 메꿔야 한다. 물론 이 계산은 나가는 돈만 계산한 건데… 나 같은 경우는 55세부터는 회사에서 가입한 개인연금이 20년간 매월 약 60만 원씩 나오고 65세부터는 국민연금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부부 합산,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100만 원은 나올 것이다. 개인연금으로 20년간 1억 4천만 원, 국민연금으로 25년간 3억이 나온다.

큰 사고나 질병 없이 무난한 삶을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10억의 은퇴자금은 충분히 가능한 수준인 것 같다. 해외여행도 적지 않게 다닐 수 있을만한 비용이다.


자 이렇게 대략 먹고살 걱정은 해결됐으니 이제는 진짜 무얼 하며 살지를 고민해야 한다.

수익을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해도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은퇴 후에 하는 일들은 크게 보면 돈을 버는 일과 벌지 않는 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본인이 했던 일과 연관성이 있는 일들이거나 아니면 단순노동이다.

그나마 젊을 때 했던 일과 연관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운이 좋은 편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도 있고 잘하는 일이니만큼 보수도 많이 가져갈 수 있겠다.

나 같은 경우는 영상 만드는 일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은퇴 후에 지역 면사무소나 마트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영상 만들기 등의 강의를 나갈 수도 있겠다. 물론 강사료는 건당 몇만 원 단위일 테니 돈을 버는 목적에 부합하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나이 들어서 매우 건전하고 발전적이며 치매예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밖에 지금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를 은퇴 후에 더 활발하게 할 수도 있겠다. 업무 자체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이어서 잘하든 못하든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일에 거부감이 없어서 가능하다.

또 글 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지금처럼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실제로 책을 내서 인지세를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을 써서 돈을 버는 건 아무래도 꿈같은 일이다. 책을 내는 건 돈을 벌기보단 돈이 드는 일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다. 정 돈이 필요하다면 프리랜서 PD로 일할수도 있겠다.


회사의 선배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살아가는 것 같다.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선배들의 삶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회사와 집, 술집, 골프장, 자녀들 학원, 자동차 등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주말에 가족들과 캠핑을 가고 여행을 다니고 자녀가 학교에서 몇 등을 했으며 진학을 위해 어디를 다닌다. 어디에 아파트를 샀는데 얼마가 올랐다. 누구는 무슨 차를 샀더라… 물론 그런 이야기만 한다고 그들 인생이 그런 것들로 만 채워지진 않았을 것이다. 나라고 아무에게나 진지한 이야기를 하진 않으니까 그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가끔 그런 대화를 듣고 있으면 측은한 생각이 든다. 자기 이야기가 빠진 삶은 얼마나 공허할까…


은퇴란 이제부터 자기 이야기를 써가는 시간이다.


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무얼 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가족을 포함해 회사와 타인을 위한 삶을 끝내는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2의 인생이라는 식상한 표현이 매우 적합한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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