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한 외형, 액셀을 밟을 때마다 머플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 차 문은 백 투 더퓨처의 타임머신처럼 수직으로 위로 재껴지기도 한다.
그런 차가 너무 갖고 싶어서 포르셰를 샀다면 그 순간부터 자기모순에 빠진다.
워너비 차를 사고, 운전 중 문득 깨닫게 된다.
이렇게 좋은 차를 샀는데 정작 차가 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니... 이런 비극이 있나.
그렇게 멋진 외관과 성능에 반해 차를 샀는데 정작 나는 그 주행 모습을 볼 수 없다니, 짜증이 솟구친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키를 넘기고 차를 운전해 달라 한 후, 택시를 타고 가면서 내 차의 멋진 주행 모습을 감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값비싼 차를 왜 산 걸까... 실내가 멋져서? 성능이 좋아서?
아마도 나는 나를 볼 수 없지만, 남이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라는 사람은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사실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주위 사람들은 내가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하기 꺼려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굳이 잘못을 지적하거나 싫어할 소리를 해서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고, 그렇게까지 해서 관계의 피곤함을 만들고 싶지 않다.
어릴 때는 듣기 싫어도 훈계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부모와 선생, 친척들, 선배 하다못해 지나가는 첨 보는 아저씨들까지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는 취직하고 결혼하면 급격히 줄어든다. 그 두 가지를 못하면 여전히 잔소리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어릴 때는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칭찬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계속 훈계를 듣게 되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지고 나는 원래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이 들면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진다.
보통 직장인의 삶을 사는 나도 그런데, 하물며 높으신 분들은 더더욱 타인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주변이 온통 아첨꾼으로 득실득실할 테니... 그래서 자신의 직책과 직업이 곧 자기 자신이라는 착각에 빠져 어처구니없는 성추행을 하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추측건대, 본인도 그런 행동이 범죄라는 것을 알 것이다. 다만 상대의 친절이 자신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리라. 너무 오랫동안 모든 이가 자신에게 웃으며 대하고 칭찬일색의 피드백을 받게 되면 사람은 판단력이 흐려진다. 상대의 감정을 짚어내기 힘들어진다. 반대로 오랫동안 모든 이가 자신에게 비판적으로 대하면 상대의 감정을 짚어내기 힘들어진다. 긍정적, 부정적 피드백이 적절히 섞여 있어야 뇌가 판단하기 위해 활동하게 되고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가설을 세우게 되고 분석하게 된다.
의식의 기원이라는 책을 보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의식을 갖고 있는 점이라고 한다.
의식이란 공간감을 느끼는 것과 '유사'한 나를 그려볼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가 포르셰를 사는 이유는 내가 운전하는 내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어도 '유사'한 내가 포르셰를 운전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주변에서 부러움의 시선으로 운전하는 '나'를 바라보는 타인들까지 포함해서...
쉽게 말해 나를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식이 없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좋은 인간이라면 겉으로 보이는 ‘유사’ 나뿐 아니라, 그런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 회사에서 나이 많은 직원 한분과 밥을 먹은 적이 있다. 회사와 집에서 무시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회사밖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동호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과 만나면 모두 자신을 우러러본다고 했다. 대기업에 다니고 외제차를 타고 가끔 술과 밥을 살 때,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너무 좋다고 나에게도 사외 동호회 활동을 해보라고 했다. 종종 먼저 다가오는 여성도 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상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본인의 삶에서 가족과 동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스스로에게 자존감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 동호회 사람들은 그의 직장과 돈 외에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인간적인 교감 없이 그 사람이 가진 돈과 물건들로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섞은 일이 또 있을까.
‘유사’ 나를 보는 능력을 그렇게 활용하라고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일까…
남이 갖지 못한 것을 즐거워하고 내가 가진 것을 과시하면서 행복해하고
남과의 비교를 통해 쾌감을 느끼는 그런 인간이라면 ‘유사’ 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동물보다 낫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정말 중요한 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스스로의 시선.
그리고 겉모습을 비교하는 게 아닌 내 속의 내면을 바라보는 능력.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는 노력.
특히 나이 들수록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꼴불견 소리를 안 듣고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