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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크크를 쓰고 을에서 갑이 되다

출판의 문을 연 부크크, 나에게 자유를 주다

by 무어

부크크를 통해 출판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외부 출판사의 회신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 나는 순식간에 ‘을’에서 ‘갑’이 됐다. 마음이 편해졌다.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렇게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자유를 선물해 준 부크크에 점점 정이 갔지만, 장단점은 분명했다. 내가 경험한 장점들을 먼저 정리해 본다.


부크크의 장점


1. 출판의 문턱이 낮다

글만 있다면 별도의 기획서나 출판 제안서 없이도 출판 신청이 가능하다.
나처럼 출판사의 반복된 거절에 지친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2. 비용 부담이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출판 비용은 0원이다. 주문형 인쇄 방식 덕분인데, 이는 수백·수천 부를 미리 찍어두는 방식이 아니라,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제작하는 구조다.
물론 배송까지는 1주일가량 소요되지만, 작가 입장에서 재고 부담이 없다는 건 큰 장점이다.
다만 교정, 표지 디자인 등을 전문가에게 의뢰하면 선택적으로 비용이 발생한다.


3. 배포망이 넓다
부크크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영풍문고 등 주요 온라인 서점들과 자동 연계된다.
부크크에서 판매 등록만 마치면, 별도의 작업 없이도 대개 한두 달 내 다양한 서점에서 검색이 가능해진다.


4. 자율성이 높다
표지 디자인, 내지 구성, 가격 책정까지 모든 결정은 작가의 몫이다.
나는 책등(책이 접히는 부분)에 제목을 넣지 않았다. 책꽂이에 꽂았을 때 제목이 보이지 않는 책이라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 선택이 효과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율성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5. 출판 속도가 빠르다
원고만 준비되어 있다면 부크크에서는 필수적인 디자인 요소만 검수한 후 출간을 승인한다.
글 내용에 대한 심사는 하지 않기 때문에 빠르면 1주일 안에 책이 출간될 수 있다.
성격이 급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속도가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6. 인세가 비교적 높다
초보 작가가 기존 출판사와 계약할 경우 인세는 보통 6~8% 수준이다.
반면 부크크는 흑백 종이책 기준, 부크크 자체 판매 시 최대 35%, 외부 서점 판매 시에도 15%를 받을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책을 낸 건 아니지만, 6%는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1. 브랜드 인지도 부족
처음 책을 내고 지인들에게 부크크 링크를 보내자, 단 한 명도 부크크를 알고 있지 않았다.
회원가입부터 카드 결제까지 낯선 플랫폼에서의 구매 과정이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책을 사주지는 않는다.
결국 나는 “그냥 네이버에 책 제목을 검색해 보세요”라고 안내하게 됐다.


2. 품질 관리의 한계
자율성이 높은 만큼, 책임도 전적으로 작가에게 있다.
교정, 교열, 편집, 디자인 등은 전문적인 영역이고, 초보 작가 혼자 하기엔 쉽지 않다.
나 역시 폰트 크기 설정을 잘못해 초판 책이 너무 커 보였고, 표지나 내지의 촌스러움에 실망했다.
오탈자를 반복 검수했지만, 혼자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3. 마케팅/홍보는 전적으로 작가 몫
부크크는 마케팅을 전혀 지원하지 않는다.
책을 알리기 위한 모든 활동은 작가 스스로 해야 한다.
SNS, 브런치, 블로그, 지인 네트워크… 누가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지도 않는데, 나는 이미 진짜 작가처럼 행동해야 했다.


4. 책값이 비싸다
주문형 인쇄 특성상 권당 단가가 높다.
내 책은 200페이지도 안 되는 흑백 인쇄인데도 14,500원으로 책정됐다.
인세를 포기하면 가격을 낮출 수도 있지만, 책값 전략은 신중하게 세워야 한다.


5. 오프라인 서점에선 볼 수 없다
지인 몇몇은 “교보문고 가봤는데 책이 없더라”라고 말했다.
주문형 인쇄이기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의 매대에 책이 진열되는 일은 없다.
실물로 책을 접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큰 아쉬움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경험한 부크크는 ‘빠르고, 싸고, 자유롭지만, 모든 걸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플랫폼이었다.
공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린 아무것도 안 해줄 테니 너 혼자 다 해봐’라는 구조다.
그래서 일정 수준의 출판 역량이 있는 사람, 혹은 출판 경험이 있는 작가라면 부크크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완전 초보라면 고민이 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크크를 선택했다.
출판의 세계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이제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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