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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
출판사

작가가 되려면 출판사를 통과해야했다

by 무어

원고는 완성됐지만, 출판사를 어떻게 접촉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네이버에 ‘개인 출판’ 키워드로 자료를 검색해 블로그 글을 몇 개 읽었다. 나처럼 원고를 써놓고 출판사에 무작위로 투고한 사람도 있었고, 출판사를 선별해서 보내라는 조언도 있었다.

문득, 나에게 출판의 목표를 심어줬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독립출판에 관한 책이었다. 을지로에서 직접 돈을 내고 제본을 한 뒤, 몇백 권의 책을 들고 독립서점에 직접 발로 뛰며 입점 신청을 하고, 홍보도 스스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에겐 그 방식이 맞지 않았다. 나는 직장인이었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었다.

결국 현실적인 방법은 출판사를 통한 출간이었다.
문제는, 어떤 출판사가 나의 글에 관심을 가질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단 블로그에서 본 방법대로, 많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보기로 했다.
검색을 통해 약 50여 곳의 출판사 이메일 주소를 모았다.
그리고 나에 대해 소개하는 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주요 내용 등을 담은 출판기획서를 작성했다.

별도의 문서로 만들지 않고, 메일 본문에 그 내용을 정리해 넣었다.
나이, 직업, 업무 내용, 관련 분야 경력, 살아온 이야기 등을 적는 게 마치 이력서를 쓰는 기분이었다.
사실, ‘내가 뽑힐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나를 어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취업 이력서와 다를 바 없었다.

책 소개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정리했다.


집필 동기

원고 내용 요약

대상 독자

책의 강점

홍보 아이디어


나는 글을 모두 쓴 후에 기획서를 정리했지만, 다음번에는 이 순서를 먼저 구성한 뒤 글을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투고 메일을 쓸 때는 떨렸다.


‘책이 대박나면 어쩌지?’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천 권이 팔리면 인세는 얼마일까?’
‘지인들에게는 어떻게 홍보하지?’


온갖 상상을 하면서, 최대한 공손하고 정중한 메일을 작성했다.
원고는 PDF로 첨부했다. 수정 방지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출판사 메일 주소를 하나씩 붙여넣었다.
처음엔 10군데 정도를 입력하고, 드디어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중에 에세이를 주로 다루는 출판사가 있을까?’
만약 과학이나 경제 분야 출판사라면, 내 원고는 읽지도 않을 것이다.
무작위로 보내는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눈에 들어온 건 책상 위에 놓인 책 한 권이었다.

‘뜻밖의 좋은 일’이라는 라디오 PD의 에세이였는데,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책 뒤편에 적힌 출판사 메일 주소를 확인했고, 그걸 노트에 옮겨 적었다.
이후에도 내가 읽고 좋았던 에세이들의 출판사를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렇게 모인 곳이 약 20군데.
내가 믿고 읽은 책들의 출판사이니, 왠지 더 신뢰가 갔다.

메일 내용도 바꿨다.
좀 더 개인적인 느낌으로.


“귀사에서 출간한 *** 에세이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써보았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읽어 주시고, 출간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단체 메일이 아닌 만큼 한 통씩 정성껏 보냈고,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고는 감수해야 출판이라는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0통의 메일을 보낸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수신 확인을 눌렀다.
아직 오전 9시도 되지 않았는데 2곳에서 읽은 흔적이 있었다. 신기했다.
그때부터 한 시간에 한 번씩 수신 확인을 하게 됐다.
내가 약간 스토커 기질이 있는 걸까 싶었지만, 첫 책 투고의 설렘과 긴장 때문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틀째. 드디어 한 출판사에서 답장이 왔다.
검토 의견과 수정 제안이 아주 구체적이었다.
이틀도 안 돼 원고를 다 읽고 메일을 준 것 자체가 고무적이었다.
문장의 표현에 대한 세세한 피드백까지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계약 조건이 있었다:

1안: 계약금 50만 원 (600부까지 선인세) / 예약판매 200부

2안: 계약금 100만 원 (1,000부까지 선인세) / 예약판매 300부

3안: 계약금 100만 원 (1,000부까지 선인세) / 예약판매 500부


처음 듣는 조건들이라 낯설었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의미가 이해됐다.
‘선인세’는 책이 600권이 팔려도, 계약금 외에는 인세를 추가로 받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예약판매’는 작가가 미리 책을 구매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예를 들어 200권 예약 판매 시, 1권당 15,000원짜리 책을 30% 할인된 가격(10,500원)에 사면 총 210만 원.
계약금 50만 원을 받는다고 해도, 내 돈 160만 원을 들여 책을 내는 셈이었다.
2안을 선택하면, 내 부담은 200만 원이 넘는다.


고민이 깊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내기로 결심했을 때는 몇 백만 원이 들어도 낼 마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 글을 정성껏 읽고 피드백까지 준 출판사의 태도가 고마웠다.
하지만, 아직 피드백이 오지 않은 출판사들이 남아 있었기에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이후 며칠 간 간간이 답장이 왔다.
대부분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보내주신 원고는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 맞지 않아 출간이 어렵습니다. 출판사 홈페이지의 도서 목록을 참고하셔서 의뢰하시면 더 긍정적인 결과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친절하게 사유를 설명한 곳도 있었고,
단순히 “죄송합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라는 짧은 답장만 온 곳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의미 있는 수확이라면, 처음 답장을 준 출판사의 수정 의견이 꽤 유효했다는 것.
그 내용을 반영해 원고 전체를 다시 고쳤고, 책 제목도 바꾸었다.
그래서 결국 그 출판사와 계약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자가출판 플랫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바로, **‘부크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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