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 출판에 대한 의지
동네의 한 카페에 들렀는데, 오래된 공장을 개조해 성수동 감성의 공장형 카페처럼 꾸며놓은 곳이었다.
붉은 벽돌 외벽과 양철 지붕이 그대로 남아 있어 거칠지만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한쪽 벽면에는 책들이 진열돼 있었는데,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아닌, 카페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독립출판물 컬렉션이었다.
그중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독립출판의 왕도, 작은 나의 책》. 저자는 김봉철이라는 사람이었다. 책은 한 마디로, 안정된 직업 없이 지내던 한 작가가 독립출판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각 단계에서의 시행착오와 고민이 세밀하게 담겨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출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을 했다는 대목이었다. 단지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 의미 있는 목표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그 과정이 곧 ‘삶의 목적’이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책을 바로 구입했고, 카페 한켠에 앉아 단숨에 읽었다.
나는 어떤 계획을 세울 때, 실현 가능성을 먼저 따져보는 편이다. 내가 가진 능력과 자원, 시간과 환경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지부터 점검한다. 물론 가끔은 여건이 안 되어도 하고 싶은 일이면 무리를 감수하지만, 대부분은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싶은 목표를 세우고 도전한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강한 동기를 주었다.
책에 담긴 실제 경험들이 상세하고 구체적이어서, 나도 책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이 정도의 글로도 책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전에는 ‘책을 낸다’는 행위가 대단한 업적을 가진 사람들만의 일인 줄 알았다. 위대한 학벌, 특별한 이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가능하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날 밤, 집에 와서 내가 그동안 썼던 글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브런치스토리에만 약 40여 개의 글이 있었다. 주제는 참 다양했다. 허무맹랑한 단편소설, 영화 후기, 출퇴근길의 단상, 회사에서 겪은 갈등,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정치 이야기, 인간의 역사까지.
이렇게나 많은 분야에 관심이 있었나, 나 자신도 놀랐다. 하지만 이런 중구난방의 주제를 하나의 책으로 엮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기존 글들 중 주제를 꿰뚫을 수 있는 하나의 축을 잡기로 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떠올린 제목이 바로 **《나는 무취한 사람이 되고 싶다》**였다.
내 글들은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였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쓰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냄새’에 관한 글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관찰하며, 결국 내게서 나는 냄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흐름. 그 글이 전체적인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낸다고 느꼈다.
그렇게 기존 글 중 약 20여 편을 골랐고, 주제의식에 맞춰 몇 편을 더 써보기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여기저기 ‘책을 내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대놓고 비웃는 사람은 없었지만, 표정에서 ‘저게 될까?’ 하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별 관심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어쩌면 내가 출판을 하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위축되진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 떠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내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고, 내 글을 읽은 사람이 나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상상이 점점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어릴 적부터 상상했던 것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자주 했다.
1등 하는 모습을 그리면 정말 그렇게 됐고, 덩크슛을 넣는 장면을 상상하면 어느새 실제로 하고 있었다. 지금 내 삶도, 어릴 적 막연히 꿈꿨던 모습과 꽤 닮아 있다. 누군가 왜 더 큰 꿈을 꾸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현실과의 간극이 너무 큰 꿈은 꾸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어느 정도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실현 가능한 꿈을 꾸는 편이다.
책을 낸다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한때는 멀게만 느껴졌지만, 출판의 과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 의지가 생겼다. 그리고 내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날 카페에서 만난 책 **《독립출판의 왕도, 작은 나의 책》**은 내게 소중한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