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주년에 제주도 차박 일주를 하자.
우리가 타고 있는 QM5 디젤이 13만 km를 넘어서자 이것저것 소모품을 갈아 줄 일이 자주 생겼다.
미션오일을 갈았고 타이어도 바꿨다. 1년에 한두 번 엔진오일도 갈았다. 다른 차 같았으면 엔진오일 교체 때마다 에어컨필터를 교체했겠지만 카센터에서도 에어컨필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작업을 기피하는 눈치다. (QM5는 차량 구조상 에어컨필터가 핸들 안쪽 깊숙이 있어서 매우 까다롭다) 그러다 보니 몇 년째 에어컨필터를 바꾸지 못했다. 겨울이 지나 여름이 되면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올라왔다. 이제는 1년 내내 냄새가 난다.
가장 더웠던 이번 여름엔 처가 식구들과 단양 산 꼭대기에 있는 카페에 갔었는데, 엔진과열 경고등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라디에이터 쪽 이상이 생긴 것 같다. 간신히 의성에서 서울까지 운전해서 돌아왔지만 이젠 수리보다는 새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사실 작년 말부터 이런저런 차를 후보군으로 정해서 보고 있었다. 가장 유력했던 차는 현대의 신형 산타페 하이브리드였다. 연비가 좋고 무엇보다 차박에 최적화된 실내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와이프랑 대리점에 2~3번 가서 타보고 뒷자리 평탄화 후 누워보기도 했다. 가격도 예산안에 들어왔고 여러모로 우리가 사기에 딱 맞는 제품인 것 같았다.
그러다 올 초 태양광 전기 설비를 마친 후 생각이 바뀌게 됐다.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몇 년 전부터 태양광을 설치하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번번이 지원금 선정에 떨어지면서 미뤄지게 됐다. 더욱이 정권이 바뀐 후 태양광 사업이 계속 축소되면서 기존에 있던 지원금도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럴 바엔 우리가 원하는 위치와 형태로 설치할 수 있게 전액 자비로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약 500만 원 가까운 돈을 들여서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했다.
설치 전 매달 7~8만 원 나오던 전기료는 2월부터 기본요금만 나왔다. 매월 기본요금이 4~5천 원 정도 된 것 같다. (KBS 수신료는 정말이지 내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우리 같은 상황이면 전기차가 하이브리드보다 더 적합해 보였다.
하이브리드를 굳이 사야 한다면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이 맞았다.
그래서 산타페 하이브리드는 일단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다음으로는 지프랭글러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볼보 XC6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아 EV9, 아이오닉 5, 폭스바겐 id4 등을 후보군에 넣었다.
랭글러는 와이프가 최애 하는 디자인이었다. 도로를 가다 ‘어머 저 차 뭐야 이쁘다’ 하는 차는 매번 랭글러 아니면 G바겐이었다. 각진 박스형 차를 좋아하는 것 같다. G바겐은 가격이 넘볼 수 없는 규모여서 웃어넘겼지만 랭글러는 어떤 차인지 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대리점에 가서 직접 타보기도 했지만 세컨드카가 아닌 이상 랭글러는 뭔가 부담스러웠다.
특별한 여행에는 최적화된 차이지만 마트를 가거나 카페에 가고 동네 앞을 편하게 나갈 때마다 타기에는 어색했다. 거기에 1억에 달하는 차값도 부담이어서 제외했다.
볼보는 안전하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후보에 넣었다. 클래식하면서 중후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심심한 인테리어와 의외로 좁은 실내, 무엇보다 너무나 ‘차‘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탈락.
EV9은 와이프와 처제 셋이 시승을 하러 갔는데 외관은 사이버틱하면서 이뻤다. 하지만 실내에 앉는 순간 화물차를 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투박하고 ‘아저씨’ 냄새날 것 같은 인테리어였다. 처제는 차에서 내리면서 ’형부, 이 차는 언니랑 내리면서 카시트에서 애 둘 데리고 내려야 할 거 같아요.’라고 했다. 바로 후보군에서 탈락…
아이오닉5는 택시가 너무 많아서 패스, id4는 차 크기가 많이 작았다.
그리고는 테슬라 모델Y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차들은 ’차‘를 탄다는 느낌이 강했다. 전통적인 내연기관 차의 인터페이스를 하고 있었다. 핸들과 계기판, 네비 화면, 공조기 버튼들… 사실 지금 타고 다니는 차와 다른 점이 크게 없었다.
하지만 모델Y는 실내가 혁신적이고 파격적이었다. 나는 아이맥, 아이패드, 아이폰, 에어팟프로, 애플워치울트라를 쓰고 있다. 유튜브도 운영하면서 다양한 촬영장비들도 쓰고 있는데 나름 얼리어덥타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모델Y는 그런 나의 성향에 딱 맞았다. ’차‘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적합하지 않았다.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모바일 ‘탈 것’ 정도로 정의 내리는 게 맞을 것 같다.
특히 시승 때 들었던 음악 소리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넓은 콘서트홀에서 연주자들이 직접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의 사운드는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 테슬라를 타는 사람들이 빼먹지 않는 장점으로 오토파일럿 기능이 있다. 시승 때 잠깐 사용해 봤지만 비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앞차와의 간격, 차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운전했다.
전기차로 영역을 한정하니 오히려 무엇을 사야 할지 명확해졌다.
그렇게 2024년 8월 3일 토요일 모델Y 롱레인지 화이트 외관에 화이트 실내 옵션으로 주문을 했다.
비대면으로 테슬라 홈페이지에서 신용카드로 거금 3백만 원의 계약금을 결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