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나온 대사 중,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나 갖은 수모를 겪고 부모까지 잃은 동매는 일본으로 건너가 무신회의 무사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백정이었던 부모를 죽인 사람들을 찾아가 복수한다. 그리고 복수하기를 머뭇거리는 노비의 아들이었던 유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와 달리 누구든 벨 수 있고 누구든 쏠 수 있지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애초에 못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안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지만 못하는 것은 능력의 문제다. 능력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감정’이란 놈까지 덤벼든다.
모델Y를 사기 전에 4년 정도 QM5 디젤 차량을 타고 다녔다. 7만 km 주행한 중고차를 구매했다.
QM5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넓은 실내 공간이다. 트렁크 문도 위아래로 열려서 캠핑 갔을 때 활용도가 좋았다.
그런데 주행거리 10만 km를 넘기고 15km가 되자 진동과 소음이 참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에어컨필터를 자주 못 갈다 보니 먼지 냄새, 곰팡이 냄새가 심했다. 세차를 해도 그때뿐이었다.
차를 타면 무조건 창문을 열어야 했고 시끄러워서 음악도 들리지 않고 대화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차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 그림을 그리는 이유, 여행에 관한 이야기, 최근 본 재밌는 유튜브 짤이나 같이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와 영화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가족사와 미래에 대한 계획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중요한 공간이 차 안인데 물리적인 이유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공간이 즐겁지 않았다.
그나마 장점 중의 하나인 연비는, 디젤 연비가 좋다고는 하지만 양양 바다라도 갔다 올라치면 교통비로만 10만 원은 들어갔다. (경유비 7~8만 원, 톨비 약 2만 원 등)
선택지는 여러 가지였지만 고민 끝에 모델Y 롱레인지를 사게 됐다.
가장 먼저 축령산 자연휴양림 캠핑장을 갔다.
새로 산 원터치 사각쉘터 하나와 캠핑의자 2개, 테이블을 트렁크에 싣고 음식은 프렁크에 넣었다.
항상 차에 넣고 다니는 전용 차박매트와 베개 2개, 침낭 2개는 트렁크 밑 공간에 들어가 있다.
김치 등 냄새나는 음식물을 프렁크에 넣어서 차 안에는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았다. 모델Y의 프렁크 공간은 굉장히 넓은 편이다. 초등학생 저학년 아이 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라 갇혔을 때 문을 열 수 있는 장치까지 있다.
새 차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차 안은 더없이 쾌적했다. 맑은 가을하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투명한 글라스루프는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13개의 스피커와 1개의 우퍼, 2개의 트위터는 음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정지된 상태에서는 세상과 단절돼 오롯이 연주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5~60km 저속 주행 시에도 그 느낌은 이어졌다. 다만 100km 이상 고속 주행 시에는 바람소리와 지면에서 타이어 마찰음이 조금 들어왔다. 하지만 고속주행 상태에서도 속삭이는 수준의 데시벨로도 대화가 가능했다.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켜자, 기존에 운전 중 쏟는 에너지의 10%만 사용했다. 최소한의 전방 주시, 핸들에 손가락 얹기를 하고 나머지는 대화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음식을 먹는 것도 가능했다. 전방을 보며 멍 때리는 일도 가능했다. 양발이 자유로워지자 엉덩이와 허리, 등의 자세를 수시로 바꿀 수 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정체 구간에서는 4~5번 졸음운전을 했지만 앞차와 충돌은 없었다.
캠핑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하나씩 짐을 옮겼다.
오토 트렁크가 익숙지 않아 옮기다 한 번은, 손으로 트렁크를 내린 적이 있는데, 그 후로 트렁크가 딱 닫히지 않아서 AS를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 설명서를 보고 트렁크 버튼을 10초 정도 길게 눌러서 해결했다.
손으로 트렁크 열림 정도를 변경하면 매번 그 위치로 열릴 수 있게 재세팅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에 세팅된 위치와 옮긴 위치에 차이가 생겨서 정확하게 닫히지 않았다.
밤이 되고 드디어 기다리던 차박의 시간이 왔다.
차박 메트를 펼쳤다. 모델Y는 2열 의자를 접었을 때 완벽한 평탄화는 되지 않는다. 눕힌 2열 의자가 경사를 만들어 낸다. 보통 머리를 운전석 방향에 두고 자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지만 몸이 점점 내려가는 걸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차박메트는 운전석 쪽으로 갈수록 얇아지는 테슬라에 맞게 설계된 차박메트를 구매했다. 가격이 거의 30만 원에 이르는 고가이긴 하지만 차박을 자주 할 생각으로 샀다.
매트를 펼치고 침낭 하나를 펴서 깔고 베개를 베고 누웠다. 주차장 가로등 불빛이 있었지만 글라스루프에 기본적인 선팅이 되어 있어서 눈부시진 않았다. 간간이 하늘의 별이 보였다.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들도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캠핑모드로 해놔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고 있다. 잔잔한 음악도 틀어놨다.
천국인가 싶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애초에 못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제 우리는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어디든 집처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