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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리 Aug 07. 2023

불쌍한 대한민국 남편들

 은행에 있으면서 많이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가정의 주권은 여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엄마'의 파워가 제일 세다. 서열 1위는 누가 뭐라 해도 엄마. 경제력이 남자한테 있다고 해도 모든 결정권은 여자에게 있다. '남자는 천하를 움직이고 여자는 그 남자를 움직인다'라는 말을 요즘 부쩍 실감한다. 남자 고객들은 예금을 할 때 와이프의 허락이 떨어져야  수 있다. 심지어 통장 비밀번호 설정도 와이프한테 무엇으로 할지 물어보고 한다. 가끔 남자가 여자와 같이 올 때가 있는데 그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가 서명 정도만 할 뿐, 모든 결정은 여자가 한다. 비유하자면 남자는 바지 사장, 여자는 실세랄까. 그러면서도 남자는 여자한테 구박받기 일쑤다. 이러면 이런다고 핀잔 듣고 저러면 저런다고 혼나고. 가끔은 안쓰럽다.


 "띵동"

 "고객님 안녕하세요!"

 중년 여성 고객님이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비밀번호 좀 바꿔줘요."

 통장을 내려놓는 고객님.

 "아 이 통장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구나. 네, 바꿔드릴게요."

 "아휴 왜 이렇게 자꾸 까먹나 몰라."

 "그럴 수도 있죠. 뭐~"

 "까먹으라는 남편은 그렇게 안 까먹고 중요한 건 맨날 까먹는다니깐?!"

 " 아...? 네?! 하하하 농담이 심하시네요~!"

 "아휴 농담이었으면 좋겠네요. 옛날에는 남편 없으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어. 호호호"

 그때 마침 고객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수화기 너머로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왜 그러는데?"

 "아니 똥둣간에 간 사람이 여태 안 오니 그르지~!"

 "뭔 소리야. 나 은행 간다고 그랬잖아~"

 "그랬어? 난 화장실 갔는데 아직도 안 오길래 화장실에서 잠들었나 했지~!"

 "뭔 미친 소리야! 내가 화장실에서 왜 잠을 자!"

 "알겠어~!"

 굳이 듣고 싶지 않았지만 워낙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신지라 의도치 않게 통화 내용을 다 듣게 됐다.

 "나보고 왜 안 오냐고 전화 왔어요. 아니 내가 분명히 은행 갔다 온다고 그랬는데, 이제 와서 똥둣간에서 잠들었냐고  딴 소리 하네. 으휴 왜 이 인간은 안 까먹나 몰라."

 남편은 왜 안 까먹냐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나 보다.


 누군가 그랬다. 남편은 눈앞에 있으면 꼴 보기 싫고, 눈앞에 없으면 이 놈의 남편은 또 어딜 기어나갔나 한다고. 아니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 것인가. 그냥 남편이 싫은 것일까. 그래도 없으면 또 없다고 화내는 것을 보면 아주 싫은 것은 아닌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의 남편들은 힘센 아내에게 맨날 혼난다는 것이다.


 남 얘기할 것 없다. 우리 아버지도 그렇다. 어머니한테 매일같이 혼난다.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허허허" 다. 하루는 내가 아버지께 여쭤봤다. 왜 그렇게 매일 혼나고 사시냐고. 아버지도 어머니한테 뭐라고 하시라고. 그러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남자가 집에서 큰소리 내봐야 좋을 거 하나 없다. 남자가 여자한테 양보하고 져줘야 집안이 평화로운 거야."

 맞는 말씀이다. 아마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도 다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렇게 매일 부인한테 혼나나 보다.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멋진 대한민국 남편들이다!


 내 앞으로의 모습도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아주 조금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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