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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리 Aug 02. 2023

I  ♡ 옥수수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은행은 조금 특별하다. 사실 처음에는 특별한지 잘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 주위 사람들이 내 근무지에서 있었던 일을 들으면 굉장히 신기해하길래 그때 깨달았다. 내가 근무하는 곳이 조금 특별한 곳이라는 걸. 내가 일하는 곳은 도시도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시골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 굳이 따지자면 시골 쪽에 가깝다. 그래서 그런지 고객님들의 정이 넘치는 편이다. 도심에 있는 은행에서는 기대하기 힘들 만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아무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 고객층이신데 그 고객님들이 직원들을 손주들 챙겨주듯이 챙겨주신다. 물론 모든 고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그렇다. 그래서 나는 고객님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지금 근무지가 정말 좋다.


 오전 10시쯤이었다.

남성 고객님께서 은행 정문으로 들어오셨다. 그분은 마을에서 크게 농사를 짓는 고객님이셨데 은행에 자주 방문하시는 고객님이라 모든 직원들이 아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고객님이 오시면 모든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고객님의 방문에 직원들 모두가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이거 가져왔으니까 이거 쪄먹어."

 고객님의 오른손에는 커다란 봉투가 하나 들려 있었다. 한눈에 도 엄청나게 많은 무언가가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뭐예요, 고객님?"

 "옥수수야 옥수수. 오늘 밭에서 따고 따로 챙겨둔 거야. 직원들 먹으라고."

 봉투 안에는 직원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옥수수가 들어 있었다. 직원들은 고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그날의 점심 식사를 옥수수로 대신하기로 했다. 점심때 먹으려면 미리 옥수수를 쪄놔야 했기에 한 직원이 탕비실에 들어가 옥수수를 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맛있는 옥수수 냄새가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그 냄새를 맡으려니 시장기가 돌아 죽을 맛이었다. 맛있는 옥수수를 빨리 들어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이거 얼른 받아 무거워~!"

 한 여성 고객님께서 커다란 바구니에 무언가를 담아 낑낑대며 은행으로 들어오고 계셨다. ATM 전용 문쪽으로 들어오려 시도하고 있었는데, 들고 있던 바구니가 너무 커서 한 번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이에 고객님은 바구니를 먼저 밀어 넣고 그다음에 들어오셨다.

 "이게 뭐예요 고객님?"

 "옥수수 쪄왔어. 같이 먹으라고. 아까 아침에 막 따서 금방 쪄가지고 온 거니까 나눠들 먹어요."

 "아이고 이런 걸 뭐 하러 쪄오셨어요. 힘들게! 진짜 감사히 먹겠습니다~!"

 날 것으로 주셔도 감사한데 본인이 직원들 바로 먹으라고 직접 쪄서 주신 것이다. 한 분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 두 분씩이나 직원들을 챙겨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날 점심시간에는 두 집의 옥수수를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고객이 직원들한테 뭔가를 먹으라고 챙겨주는 경우가 일반 회사에서 얼마나 될까. 사실 고객이 직원을 챙겨줄 이유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직원들을 챙겨주시려는 고객님들께 더욱 감사한 마음이 다. 일부러 직원을 생각해 주시는 고객님의 그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은 후, 옥수수를 챙겨주셨던 고객님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직장 동료와 하고 있는데, 한 남성 고객님께서 나를 급히 부르셨다.

 "잠깐만 밖으로 나와봐요."

 나는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그 고객님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경운기가 있었는데 그 경운기 뒤에는 커다란 봉투 꾸러미가 여러  실려있었다. 그 안에는 옥수수가 들어있었다.

 "이거 들고 들어가요. 나 혼자는 이거 다 못 들어. 오늘 옥수수 딴 김에 딴 거니까 맛있게들 먹어."

 "아휴 안 주셔도 되는데 저희까지 챙겨주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낑낑대며 고객님과 옥수수를 함께 날랐다. 하루에 그것도 세 집씩이나 옥수수를 가져다주시다니. 그날이 아마 동네 옥수수 따는 날이었나 보다. 우리는 그날 점심에 옥수수를 먹고, 일 끝나고 남은 옥수수를 먹고, 퇴근할 때는 각자 집에 옥수수를 싸갔다. 내 생애 하루에 그렇게 많은 옥수수를 먹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일하는 은행의 고객님들은 옥수수만 주시는 게 아니다. 비 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해다 주시는 분도 계시고, 직접 쑤었다고 도토리묵을 간장과 함께 가져다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가을이면 직접 키운 무, 배추를 뽑아다 주시는 고객님들도 있다. 언젠가 한 번은 우리 집 식구들이 우스갯소리로 내게 말하기를, 내가 은행을 다니는 건지 농사를 지으러 다니는 건지 모르겠단다. 고객님들은 그냥 놀러도 오신다. 여름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에어컨 바람을 쐬러 오셔서는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가신다. 그뿐인가. 자식들 결혼한다고 청첩장 돌리러 오시는 분들도 있다. 반대로 직원들 경사에 축의금 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내가 일하는 곳은 따뜻하고 정겨운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은행 점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 뱅킹이나 모바일 뱅킹과 같은 전자금융이 점점 보편화되면서 오프라인 점포를 찾는 고객들이 상당히 줄었기 때문이다. 은행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이윤이 안 남는 장사는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인지 시골에 있는 은행 점포는 없애거나 통폐합한다. 지점을 없애고 ATM기만 두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해한다. 기업이 봉사단체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점포가 하나 줄면 그 점포를 이용하던 고객들은 더 먼 거리에 있는 점포를 이용하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ATM기? 있어도 이용 방법을 몰라 지금까지도 ATM기 조작을 직원들에게 부탁하는 고객들이 수두룩하다. 그뿐인가. 하루에도 수십 번 비밀번호를 까먹는 고객들 때문에 직원들이 고객들 대신 외우고 있는 비밀번호만 수십 개다. 그 고객들은 직원이 없으면 금융업무를 볼 수조차 없다. 통장에 돈이 있는데도 자신의 돈을 빼서 쓸 수가 없다. 인터넷 뱅킹? 모바일 뱅킹? 남의 나라 얘기다. 그렇다. 내가 말한 이 고객들은 모두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다. 손주 같은 직원들 옥수수 먹으라고 챙겨주시는 그분들 말이다. 당연히 시대가 바뀌면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그 변화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기계대신 사람한테 업무를 봐왔던 그분들께는 적응하고 배우는 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나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고객'의 범주에 점차 할머니, 할아버지가 빠지는 것만 같아 슬프다.

난 꽤나 옥수수를 좋아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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