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있으면서 많이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가정의 주권은 여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엄마'의 파워가 제일 세다. 서열 1위는 누가 뭐라 해도 엄마다. 경제력이 남자한테 있다고 해도 모든 결정권은 여자에게 있다. '남자는 천하를 움직이고 여자는 그 남자를 움직인다'라는 말을 요즘 부쩍 실감한다.남자 고객들은 예금을 할 때 와이프의 허락이 떨어져야 할 수 있다. 심지어통장 비밀번호 설정도 와이프한테무엇으로 할지 물어보고 한다. 가끔남자가 여자와 같이 올 때가 있는데 그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남자가 서명정도만 할 뿐, 모든 결정은 여자가 한다. 비유하자면 남자는 바지 사장, 여자는 실세랄까. 그러면서도 남자는 여자한테 구박받기 일쑤다.이러면 이런다고 핀잔 듣고 저러면 저런다고 혼나고.가끔은안쓰럽다.
"띵동"
"고객님 안녕하세요!"
중년 여성 고객님이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비밀번호 좀 바꿔줘요."
통장을 내려놓는 고객님.
"아 이 통장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구나. 네, 바꿔드릴게요."
"아휴 왜 이렇게 자꾸 까먹나 몰라."
"그럴 수도 있죠. 뭐~"
"까먹으라는 남편은 그렇게 안 까먹고 중요한 건 맨날 까먹는다니깐?!"
" 아...? 네?!하하하 농담이 심하시네요~!"
"아휴 농담이었으면 좋겠네요. 옛날에는 남편 없으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어. 호호호"
그때 마침 고객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수화기 너머로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왜 그러는데?"
"아니 똥둣간에 간 사람이 여태 안 오니 그르지~!"
"뭔 소리야. 나 은행 간다고 그랬잖아~"
"그랬어? 난 화장실갔는데 아직도 안 오길래 화장실에서 잠들었나 했지~!"
"뭔 미친 소리야! 내가 화장실에서 왜 잠을 자!"
"알겠어~!"
굳이 듣고 싶지 않았지만 워낙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신지라 의도치 않게 통화 내용을 다 듣게 됐다.
"나보고 왜 안 오냐고 전화 왔어요.아니 내가 분명히 은행 갔다 온다고 그랬는데, 이제 와서 똥둣간에서 잠들었냐고 딴 소리 하네. 으휴 왜 이 인간은 안 까먹나 몰라."
남편은 왜 안 까먹냐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나 보다.
누군가 그랬다. 남편은 눈앞에 있으면 꼴 보기 싫고, 눈앞에 없으면 이 놈의 남편은 또 어딜 기어나갔나 한다고. 아니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하는 것인가. 그냥 남편이 싫은 것일까.그래도 없으면 또 없다고 화내는 것을 보면 아주 싫은 것은 아닌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의 남편들은 힘센 아내에게 맨날 혼난다는 것이다.
남 얘기할 것 없다. 우리아버지도 그렇다. 어머니한테 매일같이 혼난다.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허허허" 다.하루는 내가 아버지께 여쭤봤다. 왜 그렇게 매일 혼나고 사시냐고.아버지도 어머니한테 뭐라고 하시라고. 그러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남자가 집에서 큰소리 내봐야 좋을 거 하나 없다. 남자가 여자한테 양보하고 져줘야 집안이 평화로운 거야."
맞는 말씀이다. 아마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도 다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렇게 매일 부인한테 혼나나 보다.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멋지다고생각했다.멋진 대한민국 남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