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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리 Aug 09. 2023

살아내다

 "띵동"

 "고객님, 이쪽으로 오세요."

 1940년생 할머니께서 천천히 내 앞으로 오셨다. 1940년생.  나는 1940년대생이나 그 이전에 태어나신 고객님들이 오실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진다.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를 겪어내고, 해방이라는 역사의 큰 물결을 마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라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지옥을 경험한 분들이니까 말이다. 그뿐이랴. 그 이후에도 수많은 격변의 사건들을 마주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존경심도 생기고 그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도 든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돈 좀 찾으려고 왔어요."

 "얼마 찾아드릴까요?"

 백발에 깊은 주름.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몸짓까지. 나는 그 모든 것 하나하나에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고객님, 찾으실 금액을 여기다가 써주세요."

 고객님께서 열심히 글자를 적어주셨다.

 "내가 글씨를 예쁘게 못 써. 손이 병신이라서."

 '병신'이라는 단어가 귀에 와 꽂혔다.

 "무슨 말씀이세요! 예쁘게 잘 쓰셨는데요, 뭘! 그런 말씀 마세요! 물구나무서서 봐도 알아보겠는데요?"

 "하하하 재밌는 선생님이네. 이 선생님은 좀 낫네. 어디 은행은 갔더니, 글쎄. 무슨 글씨를 이렇게 쓰냐고 소리를 지르더라고. 아니, 내가 손이 병신이라 그렇다고. 나도 손 멀쩡하면 잘 쓸 수 있다고 그랬지. 그리고 부모 잘못 만나면 옛날에는 글도 못 배우고 다 그렇게 살았다고. 부모 잘못 만난 게 내 죄는 아니지 않냐고. 나도 소리 지르면서 억울해서  얘기했어."

 "아니 무슨 그런 사람이 다 있어요? 아주 정신이 나간 사람이네요? 너무 무례한 거 아녜요?"

 나는 어이가 없고 기가 차서 언성을 높였다.

 "그래서 거기 다시는 안 가요. 내가 기분이 너무 나빠가지고. 그래도 내가 이 손으로 4남매 다 키우고 시집, 장가 다 보냈다고."

 난 요즘 들어 생각한다. 뭔가 대단한 업적을 세우는 것보다 자식을 잘 뒷바라지하고 잘 키워낸 게 훨씬 더 대단한 일이라고. 10달 동안 아이를 품고 엄청난 고통으로 아이를 낳는 것. 이후에도 밤잠 설쳐가며 먹이고 가르치고 입히고 키우는 것. 1년, 2년도 아니고 20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간이라는 한 인격체를 온전한 성인으로 자립할 수 있게 키우는 것, 의젓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우는 것. 이것은 정말 그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고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그것을 해냈다는 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쉬워 보이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절대적인 희생과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절대 누구나 하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정말 힘드셨겠어요. 손은 어쩌다가 다치신 거예요?"

 내가 물었다. 고객님께서 잘 굽혀지지 않는 오른쪽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며 얘기했다.

 "기계에 들어갔어. 젊었을 때 일하다가 기계에 빨려 들어갔지. 뼈고 살이고 아작이 났어. 꿰매고 수술하고 어쩌고 난리를 쳤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잘 쓰질 못해. 그때부터 이때까지 이러고 사는 거야."

 "아휴. 얼마나 아프셨을 거예요. 사고가 났던 거군요."

 고객님께서 이번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씀하셨다.

 "여기 봐봐요. 여기 엄지손가락은 색깔이 다르지? 색깔이 다른 부분만큼 살을 잘라냈었어. 반 정도 잘라냈었지."

 "네? 아니 거기는 또 왜요?"

 "염산 때문에."

 "염산? 염산이요? 아니 살면서 그걸 만질 일이 있으셨어요?"

 "기계 닦다가. 젊었을 때는 눈이 좋으니까 기계의 미세한 부분 닦는 일을 하고 그랬거든. 근데 거기 기계에 염산이 묻어있던 거야. 사실 염산인지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게 내 손에 묻었어. 난 몰랐지. 시간이 지나니 갑자기 손에서 불이 올라오더라고. 그러더니 여기가 다 타버렸어. 그렇게 손 병신돼가면서도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려고 일했어 내가."

 얼마나 아프셨을까. 상상만 해도 내 손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아니, 근데. 남편분은요? 같이 일하셨을 거 아녜요."

 고객님은 손으로 을 만들어 무언가를 입에 넣는 시늉을 하셨다.

 "술만 지게 퍼 마시다가, 결국 술로 갔어."

 "아이고 도움이 안 되셨군요."

 "도움? 아이고 도움은 개뿔. 어디서 누구 해코지나 안 하면 다행이지. 술 마시고 매번 그렇게 남들이랑 싸우고 다녔어."

 고객님의 목소리에서 한스러움이 느껴졌다.

  "한 번은 술 쳐 먹고 모르는 사람이랑 싸워서 경찰서를 갔어. 보호자를 부르길래 갔지. 워낙 여러 번 가니까 이제는 경찰관도 낯이 익더라고. 그런데 경찰관이 이번에는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남편한테 나가서 싸우라고 한 거 아니냐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남편한테 싸우고 오라고 시켰다니.

 "경찰관이 일부러 그랬던 거야. 남편한테 백날 얘기해 봐야 안 들으니까, 본인 부인한테 뭐라 하는 거 들으면 좀 느끼는 바가 있을까 하고. 아휴 그 인간한테는 택도 없었. 내가 그렇게 살았어요."

 고객님은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나이가 들어 힘겹게 조금씩 발을 옮기는 그녀의 걸음걸이에서 굴곡진 삶이 느껴졌다.


 우리는 보통 삶을 산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살아내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힘겹지만 꾸역꾸역 버텨가며 살아내기도 한다. 나가 느끼기에는 그 고객님의 삶이 그랬다. 전언했듯이 역사의 큰 비극적 물줄기 안에서 살아남기도 버거웠을 것이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매일 술만 마시고 사건 사고를 일으켰던 남편 때문에 얼마나 속이 썩었을까. 불의 사고로 평생 느꼈을 사람들의 시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하루하루 버텨갔을 시간들은 상상할 수도 없다. 고객님이 살아온 세월이야 말로 글자 그대로 살아낸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싶다.

 살아내다.

 처음으로 네 글자로 이루어진 그 단어의 무게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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