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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Dec 25. 2023

나치에 항거했던 그룹 "백장미(Weisse Rose)"

독일인들은 아직도 그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 이미 발행했던 글인데, 연재 형태의 브런치 북을 만들다 보니 체계상 필요해서 이곳으로 옮겨 왔습니다(이전 글은 삭제했습니다).


독일 남서부에 있는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에  이름하여 "백장미광장(Platz der weissen Rose)"이라고 불리는 작은 광장이 있는데, 이 광장을 유서깊은 대학건물들이 둘러싸 있다. 그런데 명색이 '백장미광장'임에도 불구하고 광장을 아무리 둘러 보아도 하얀 장미는 단 송이도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하여 이 광장의 이름이 백장미광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하여 궁금증을 키워갔을 뿐인데, 어느날 우연찮은 기회에 그 답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오전 중에 대학도서관에 있다가 점심을 먹으러 단골 음식점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던 내 눈에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서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매일같이 그 앞을 지나치던 법과대학 건물 외벽에 이렇게나 크고 또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진 상태로 붙어 있건만, 어찌하여 그동안 내 눈은 이를 이리도 철저하게 외면했던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단서가 되는 것은 바로 아래 사진인데,  사진속의 글이 백장미광장의 유래에 대하여 정확히 알 수 있는 글이기 때문에, 조금 지리하지만 전문을 요약이라도 해두어야 할 것 같다.


1. 나치가 집권하고 있던 서슬 시퍼렇던 시절 뮌헨(München) 대학에 나치에 반대하던 학생그룹이 있었는데, 그 그룹의 심볼이 "백장미"였다. 나치는 1943년 그 그룹의 구성원인 Sophie und Hans Scholl, Christopf Probst, Alexander Schmorell, Kurt Huber와 Willi Graf를 사형에 처한다. 그리고 이들의 프라이부르크대학 친구들인 Heinz Bollinger와  Helmut Bauer는 유죄판결을 받고 장기간 복역을 한다.
2. 전쟁에 참여했다가 전상(戰傷)을 입고 대학으로 돌아온 학생들 역시 소위 Kakadu라는 단체를 만들어 집단적으로 나치에 반기를 든다.
3. 또한 1938년에서 1944년에 걸쳐 프라이부르크대학 교수들은 전후의 경제-사회질서를 논하여 완성한다.


이런 이들의 용기와 사회참여야말로 프라이부르크대학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하여 이 광장을 조성하여 그들에게 바친다."

나치에 항거했던 그룹 "백장미(Die weiße Rose)"는 1942년 나치를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전단을 뿌렸고, 이를 이유로 사형에 처해지거나 복역을 하게 되는데, 나치에 항거했던 그룹 "백장미(Die weiße Rose)"에 관하여는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아, 독일인들은 지금도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독일의 인터넷 사이트에 이 그룸의 구성원이었던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에 대하여 예외없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독일 사이트에 소개되어 있는 이들 구성원들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먼저 Hans Scholl(1918~1943)과 Sophie Scholl(1921~1943)은 남매였는데, 3살 터울이지만 같은 날에 사망한다. 아, 오른쪽의 Sophie Scholl의 사진은 나치가 찍은 것이라고 한다.

이들 남매의 행복했던 모습이 담긴 사진인데, 촬영시기가 언제인지는 불확실하다. 오빠인 Hans는 자연이 제공하는 풍경에 빠져 있는 듯하고, 동생인 Sophie는 오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이처럼 맑고 해맑기만 한 오누이를 죽음으로 내몬 나치의 만행에 다시금 분노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진이다.


Scholl남매에 관하여는 각기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또한 Christopf Probst(1919~1943)의 생가의 벽에는 그가 이 집에서 태어나서 1943년에 나치에 의해 살해되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다.

Christopf Probst에 관하여는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Alexander Schmorell(1917~1943)은 2012년부더 러시아 정교회에서 새로운 성자로 추앙받게 되며, 그로 인해 지금은 "뮌헨의 알렉산더(Alexander von München)"라고 불리고 있다.

"

Alexander Schmorell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Willi Graf(1918~1943)은 카톨릭 청년단체의 활동가로도 활약했는데, 뮌헨대학 구내에 그의 기념상이 세워져 있다.

Willi Graf에 대하여는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위에 열거한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Kurt Huber(1893~1943, 사진 참조) 교수의 철학과 심리학 강의를 함께 수강한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Kurt Huber교수는 이들에게 나치에 대한 저항의식을 불어 넣어 준 교수로, 어찌보면  백장미의 실질적 산파라고 할 수 있다.


Kurt Huber에 관하여는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지금도 뮌헨대학의 구내에는 '백장미를 추모하는 장소(A)'가 있으며, 인근에는 백장미 연구소(B)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지금도 이곳에는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의 헌화가 이어지고 있다.

아, 이들과 친분을 맺고 있던 프라이부르크대학 출신의 두 학생은 사형을 당하지 않았는데, 그들에 관해서도 잠깐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Heinz Bollinger(1916~1990)는 훗날 심리학교수가 되며, 1982년에 상영된 영화 백장미(Die weiße Rose) 제작에 자문을 해주었다.

Helmut Bauer(1919~1951)는 Willi Graf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카톨릭 청년단체인 Bund Neudeutschland(새로운 독일 연합쯤으로 번역하면 되려나?)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Helmut Bauer에 관하여는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아, Bund Neudeutschland는 지금도 그 이름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데, 왼쪽이 로고이고, 오른쪽은 2019년에 쾰른(Köln)에서 열렸던 창립 100주년 기념대회의 모습이다.

이곳 백장미광장을 걷고 있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학생들의 모습인데,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이 광장이 이처럼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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