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년을 맞아 1년을 보냈던 프라이부르크(Freiburg)의 내 집앞에는 프라이부르크 시민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에서까지 찾아 오는 멋진 호수가 있는데,호수 주변은 넓은 초지와 산책로 등이 어우러진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다. 이 곳의 이름은 문자 그대로 Seepark(호수 공원)인데, 내방 창문을 열면 보이던 호수 풍경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이 호수공원에 호수공원 전체의 풍광과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철제 다리가 호수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이 다리의 난간은 보다시피 온통 자물쇠로 뒤덮여있다.
그런데 이들 자물쇠를 자세히 들어다보면, 거의 예외없이 자물쇠마다 두 사람의 이름과 하트가 아로새겨져 있다. 추측건대 두 사람간에 한 번 맺어진 사랑이 (한 번 채워진 자물쇠처럼) 언제까지나 변함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표출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이런 점에서 한국과 독일의 젊은이들의 생각은 완전히 일치하는 듯하다.
그런데 말이다. 사랑이란 것이 저렇듯 자물쇠 하나를 채워 변치 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60년을 넘어 산 내 삶, 그리고 그 삶속에서 내가 빠졌던 내 사랑의 경험은 감히 "사랑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히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디 이러한 생각이 나뿐만의 일이겠는가? 우리네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이별, 그리고 이별이야기들 역시 "자물쇠 하나로 간단히 채워버릴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더 말할 나위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의 사랑의 징표로 호수의 다리위에 자물쇠를 채워놓는 것은 그 자체로 틀림없이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진실로 변하지 않는 사랑을 원한다면, 자물쇠를 사서 호수 위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을 키워 갈 일이다. 호수위의 다리 난간에 자물쇠를 걸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사랑의 자물쇠를 굳게 채울 일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해하려는 악마가 일절 틈타지 않도록 말이다.
오늘도 여전히 젊은 남녀들은 호수공원 위의 "사랑의 다리"(아, 사랑의 다리'는 공식명칭이 아니고 내 멋대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을 밝혀둔다.)에 올라 밀어를 속삭이며 사랑을 다짐하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저들을 바라보며 두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 하나는 자물쇠 하나 채워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이별노래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의문이고,
그 둘은 철제 다리에 자물쇠를 채우는 이런 관행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하는 의문인데, 혹 열쇠/자물쇠를 만드는 회사에 의해 시작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