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슈타트 "비텐베르크(Wittenberg)"

그 1 - 개 관, 종교개혁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 곳

by 깨달음의 샘물

1. 개 관 - 루터슈타트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 이런 곳이다.


독일의 동북부, 정확히 말해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Berlin)에서 남쪽으로 90km, 옛 동독지역을 대표하는 문화도시 중의 하나인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북쪽으로 60km정도 떨어진 곳에 비텐베르크(Wittenberg)라는 도시가 있다. 물위에 떠 있는 성, 그리고 성밑에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 독특한 문장(紋章)을 사용하는 도시인데, 독일 사이트를 여러 곳 둘러보았지만 사진과 같은 문장이 사용되게 된 배경에 관한 설명은 찾을 수가 없었다.







비텐베르크는 240km의 면적에 (2022년말 현재) 인구 45,000명 정도르르 가진 도시이니, 우리 기준으로 본다면 틀림없이 작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은 도시 비텐베르크가 갖는 역사적 의미, 특히 종교사적 의미는 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이 도시의 성교회(城敎會, Schlosskirche)에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걸은 것이 종교개혁의 발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텐베르크의 역사적 의미의 중심에 루터가 있기 때문에 비텐베르크의 공식 명칭 또한 "루터슈타트 비텐베르크(Luthersatdt Wittenberg)"야. 아, 루터슈타트는 루터의 도시란 뜻인데, 도시의 공식 명칭이 루터슈타트로 시작하는 도시는 비텐베르크와 아이스레벤(Eisleben), 이렇게 두 도시밖에 없다.


비텐베르크의 볼거리는 시내에 밀집해 있는데, 그것도 예외없이 비테베르크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콜레기안 거리(Collegian straße), 그리고 그와 이어지는 슐로스 거리(Schloss Straße)에 몰려 있다. 따라서 이른 바 Must-See에 중점을 두고 돌아본다면, 웬만큼 꼼꼼히 보고 다녀도 비턴베르크는 한나절이면 얼추 둘러 볼 수 있다. 물론 아래 지도에 주황색으로 넘버링이 되어 있는 볼거리들을 모두 꼼꼼히 챙겨보고자 하면 몇날 몇일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참고삼아 내가 돌아본 곳을 열거해 보면,
3번 성교회(城敎會, Schlosskirche)
7번 크라나하 호프(Cranach-Hof)
9번 구 시청사
10번 또 한곳의 크라나하 호프
11번 구 대학(LEUCOREA)
12번 멜란히톤의 집(Melanchthonhaus)
13번 루터의 집(Lutherhaus)
16번 시교회(市敎會, 성 마리엔교회)와
초록색 4번 루터의 떡갈나무(Luthereiche) 정도


그럼 지금부터 비텐베르크의 볼거리를 간단하게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2. 성교회

누군가가 나에게 비텐베르크를 찾았을 때 꼭 보아야 할 곳을 한 곳만 고르라고 한다면, 난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성교회(Schlosskirche)를 꼽을 것같다. 왜냐하면 비텐베르크를 가장 비텐베르크스럽게 만든 것이 종교개혁이고, 그 종교개혁의 불꽃은 루터가 이곳 성교회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이면서 타오르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아래 사진은비텐베르크 성과 성교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사진 왼쪽에 탑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 성교회이다.

종교개혁의 불길을 점화시킨 곳이라는 점에서 성교회의 의미를 찾는다면, 성교회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보아야 할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걸었던 교회의 문, 이른바 테제튀어(Thesetür)이다. 아, Thesetür는 These(명제, 조문) + tür(문)의 합성어이다.

테제튀어(Thesetür)

3. 루터의 집

누군가가 나에게 비텐베르크에서 꼭 보아야 할 것을 한가지만 더 꼽아 보라고 한다면, 이번에도 나는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루터의 집(Lutherhaus)을 꼽을 것이다. 비텐베르크를 오늘날처럼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만든 종교개혁의 불꽃, 그 중심에 바로 루터가 있으니 말이다. 루터의 집 입구인데, 들어가서 왼쪽에 인포메이션이 있다. 그 실체는 사실상 입장권 판매 장소에 가깝기는 하지만.

루터의 집(Lutherhaus)

루터의 집 내부로 들어서게 되면 의자들이 가득한 넓은 방을 만나게 되는데, 전면에 십계명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 보인다.

루터의 집안에는 이런 저런 모습의 루터를 화폭에 담은 그림을 만날 수 있는데, 루터의 초상화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 하나를 가져와 보았다.

4. 멜란히톤의 집

성교회와 루터의 집을 본 다음이라면 이제부터는 각자의 시간과 관심사에 따라 어느 것을 볼 것인를 정하면 되는데, 나는 루터의 사역에 있어 충실한 동반자였던 멜란히톤(Philipp Melanchton, 1497~1560)의 집을 제일 먼저 찾았다.

멜란히톤의 집(Melanchtonhaus)은 루터의 집 바로 옆에 있는데, 내가 12년전(2011년)에 찾았을 때는 한창 공사중이었는데, 지금은 공사를 모두 마치고 깨끗이 정비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전시물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풍부해졌고, 멜란히톤이 많은 공을 들여 가꾸었던 정원 또한 복원이 이루어져 있었다. 아래 사진 속에는 여러 집들이 보이지만, 가운데의 집이 멜란히톤의 집이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할 때) 멜란히톤의 집 2층과 3층사이의 벽에 "이 곳에서 멜란히톤이 살았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죽었다"라고 쓰여 있다.








그가 가꾸었던 정원..

5. 구 대학

멜란히톤의 집 바로 옆에서 "구 대학(Alte Universität) LEUCOREA"이란 안내판과 마주쳤다. 안내판에 따르면 500 여년 전에 설립되었고, 루터가 신학을 강의했던 곳이라고 한다.

여기가 LEUCOREA의 입구인데, 크지는 않지만 무언가 품격을 지니고 있다.

좁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몇 동의 건물이 서로 맞대어 있고, 넓은(?) 내원도 있다.

6. 시교회

시청사 앞의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 시장광장)에서 서면 광장에 인접한 집들 위로 두개의 첨탑이 우뚝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비텐베르크의 시교회(市敎會, Stadtkirche)이다.

교회 내부의 모습인데,

교회 내부에서는 크라나하(Lucas Cranach, 1472~1553)의 제단화가 특히 유명하다.

7. 크라나하와 관련있는 몇 곳

비텐베르크에 당신의 삶의 흔적을 가장 많이 남긴 사람은 크라나하이다. 크라나하는 비텐베르크에서 궁정화가로 활약을 시작했는데,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교회의 제단화(祭壇畵)를 많이 그렸는데, 실제로 독일의 동북부에 있는 교회의 제단화 중 상당수가 크라나하의 작품이다. 그런데 크라나하라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화가이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참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비텐베르크에서 약사, 사업가, 비텐베르크 시장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했던 크라나하를 만나볼 수 있다. 실제로 크라나하가 경영했던 약국 자리에는 여전히 루카스 크라나하 약국이라는 이름의 약국이 여전히 성업중이다.

그런가하면 크라나하 호프(Cranach Hof)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슐로스 거리 1번지에 하나,

그리고 Markt 4번지에 또 하나가 있다. 특히 이곳은 크라나하 벨트(Cranachs Welt)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데,

이곳에서 그의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8. 구시청사

비텐베르크 시내 한복판에 비텐베르크의 구 시청사(Altes Rathaus)가 있다.

구 시청사 앞에 있는 동상은 볼 것도 없이 루터의 동상이고,

루터의 동상 왼쪽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동상은 루터의 동반자이며 든든한 후원자였던 멜란히톤의 동상이다. 두 동상을 한 컷으로 잡으면 이렇게 되는데, 사진 뒷쪽에 보이는 두개의 첨탑을 가진 교회가 앞에서 말한 시교회이다. ...

9. 맺으며

비텐베르크가 루터의 도시라고 하니 - 지금까지도 다른 도시에 관한 안내에서 루터의 생에 관해 단편적으로 이야기하여 왔지만 - 글을 맺기 전에 여기서 잠시 루터의 생 전반을 간략하게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기로하겠다. 루터는 아이스레벤(Eislebeb)에서 출생하여 아니제나하(Eisenach)를 거쳐 에어푸르트(Erfurt)에서 법학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다 낙뢰로 죽은 친구를 본 후 법학 공부를 중단하고 아우구스티너 수도회에 들어가서 사제(司祭)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1512년에 이 곳 비텐베르크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그러던 1517년 종교개혁의 발단이 된 95개조의 반박문을 성교회에 내걸었다가 교황으로부터 파문칙령(破門勅令)을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루터는 파문칙령을 불태워버렸고(이 이야기는 다른 글을 통해 별도로 상세히 이야기 하겠다), 그의 주장을 취소할 것을 강요당했지만 몇번에 걸친 종교회의에 나타나 끝내 이를 거부한다. 이 때문에서 제국에서 추방되는 처분을 받기에 이르는데, 이때 9개월 동안 바르트부르크(Bartburg)성에서 숨어 지내면서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는데, 이를 통하여 독일어가 오늘날의 독일어와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1530년대부터 활발히 활동을 전개하다가, 1546년 자신의 고향인 아이스레벤을 찾았다가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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