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5 - "성 마리엔교회(St. Marienkirche)"
1517년에 루터가 95개 조의 반박문을 내걸었던 비텐베르크의 성교회(城敎會, Schlosskirche)는 틀림없이 교회사의 한 획을 그었던 역사적 장소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비텐베르크에 있는 교회들의 중심축을 이루었던 교회는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 시장광장)에 접해 있던 성 마리엔교회(St. Marienkirche)였다. 그리고 지금도 성 마리엔교회는 비텐베르크시의 시교회(市敎會, Stadtkirche)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또한 성 마리엔 교회는 루터(martin Luthet, 1483~1546)와도 인연이 깊은 교회이기도 하다. 루터는 1512년부터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설교를 했으며, 1522년에는 사순절(四旬節: 부활절을 앞두고 약 40일간 몸과 마음을 정결하고 경건하게 하며 지내는 기독교의 절기) 설교를 하기도 했다. 아, 1525년에 루터가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와 결혼식을 올린 곳도 바로 성 마리엔 교회였다
성 마리엔교회는 마르크트플라츠에 접해 있기는 하지만, 광장가에 있는 다른 건물들 뒤쪽으로 나 있는 골목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다른 건물들의 방해 없이 교회 전체의 모습만이 담긴 사진을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사진은 기껏해야 이렇게 마르크트 광장가에 있는 다른 건물 위로 높이 솟아있는 성 마리엔교회의 두 개의 첨탑이 담긴 사진 정도가 될 것이다.
골목 안쪽에서 성 마리엔교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성 마리엔교회의 팸플릿에서 만나 볼 수 있는데, 이는 2개의 첨탑 뒤쪽에서 찍은 것이다. 뒤에서 이야기하는 성체예배당(Fronleichnamkapelle, 사진 왼쪽)의 모습 일부까지 들어가 있는 이 사진이 어쩌면 성 마리엔교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앞에 있는 안내판인데, 그에 따르면 이 교회의 공식 명칭은 "개신교 시교회 성. 마리엔(Ev. Stadtkirche St Marien)"인 것 같다.
성 마리엔교회의 출입구 바로 옆의 벽면에 붙어 있는 부조(浮彫)인데, 중앙에 있는 글을 읽어 보려 했지만 부식이 심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부조 밑쪽으로 입간판이 하나 서있는데,
"지금 예배중이오니 출입을 삼가해 달라"고 쓰여 있다. 그제야 비로소 오늘이 일요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근무를 하며 지낼 때 그리도 열심히 챙겼던 요일 감각이 없어진 듯.
다행스럽게도 예배가 끝날 때가 되어가고 있어서 잠시 기다리기로 결정했고, 예배가 끝난 후에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교회 뒤쪽에서 제단을 바라보며 사진을 한 장 남겼는데, 교회가 갖고 있는 전체 분위기를 전달해 주는 컷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
그리곤 천천히 발걸음을 제단 쪽으로 옮겼는데, 사실 제단보다는 제단화를 보기 위함이었다.
성 마리엔교회의 제단화는 루카스 크라나하 Jr.( Lucas Cranach der Jüngere, 1515~1586)의 1457/1458년 작품인데, 루카스 크라나하 Jr.는 우리가 잘 아는 루카스 크라나하 Elder(Lucas Cranach der Ältere, 1472~1553)의 아들이다.
제단화는 보다시피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윗단의 중앙 패널은 지역 유지들과 루터의 만찬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컵을 받고 있는 사람이 루터이다. 그리고 왼쪽 패널은 침례를 행하는 멜란히톤을 묘사한 것이고, 오른쪽 패널은 고해신부(告解神父, father confessor)로서의 요하네스 부겐하겐(Johannes Bugenhagen)을 묘사한 것이다.
제단화의 아랫단도 따로 사진을 찍었는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그림의 중앙에 있다. 그리고 오른쪽 끝에 설교를 하고 있는 루터의 모습이 보인다.
이 제단화에 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궁금하다면 아래 사이트를 찾아가 보기를 바란다.
제단 앞에 서서 제단을 뒤로하고 교회 뒷면을 바라보았는데, 1983년에 새로이 설치하였다는 오르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로본능이 작동하여 똑같은 위치에서 또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제단 왼쪽에 방이 하나 있는데, 아쉽게도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성 마리엔교회의 측면의 모습인데, 유리창이 좀 허전하다. 역시 교회의 측면 유리창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어야 제맛인 듯하다.
한편 성 마리엔교회는 그 자체가 하나의 미술관으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답게 15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작품들이 교회 전체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 그들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이런 팸플릿을 하나 집어 들어야 한다.
그 안에 주요 볼거리들이 일목요연하게 넘버링을 통해 표시되어 있고, (사진을 따로 안 찍어 놓았지만) 그에 대한 설명까지 자세히 되어 있으니 말이다. 아, 사진 위쪽이 제단이 있는 전면이고, 아래쪽이 교회의 후면에 해당한다.
번호가 붙어 있는 모든 작품을 이야기하기는 힘들고, 지금부터는 그 많은 작품들 중 내가 조금 관심 있게 본 작품 몇 점을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위치설명은 위 사진 속의 번호로 대신한다).
먼저 이것은 제단 왼쪽 앞에 있는 것인데(15번), George Schröter란 사람의 1571년작으로, 제목은 "겟세마네(Gethesmane) 동산의 예수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이다. 대리석과 사암(沙岩)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제단화를 그린 루카스 크라나하 Jr.의 1573/1574년작인 "포도밭에서 일하는 사람들"(8번)이다.
이것 역시 루카스 크라나하 Jr.의 1560년 작품으로, 제목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는 예수"(9번).
이 작품에 대하여는 작품 밑에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제단을 오른쪽 옆에서 찍었더니 교회 좌측의 벽면에 걸려 있는 3개의 작품이 함께 딸려 들어왔다(왼쪽부터 2, 3, 4번). 가운데 있는 것은 세바스티안 발터(Sebastian Walter)의 1606/1607년 작인 "예수의 매장"으로, 루카스 크라나하 Jr.의 묘비.
성 마리엔교회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면 교회 앞에 붉은 벽돌로 격조 있게 잘 지어진 건축물과 만나게 된다.
건물 앞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그를 통해 이곳이 성체예배당(Fronleichnamkapelle)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성체(聖體)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뜻한다.
안내판을 사진으로 찍어 놓기는 했는데, 보다시피 글씨도 작고, 햇빛이 반사되기도 해서 해독이 불가능하다. 하여 독일 사이트를 뒤져봤고, 그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체예배당은 1368년에 축조되어 공동묘지에 있는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1526년에 시의회는 위생상의 이유를 들어 공동묘지를 도시 외곽으로 이전하는 결정을 했다. 그로부터 예배당은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게 성구(聖具)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게 되었다. 1845년부터 1950년까지의 복원작업을 통해 예배당은 중세의 모습을 다시 갖게 되었다."
복잡한 역사를 가진 성체예배당은 현재는 보는 바와 같이 기도실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