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슈타트 "비텐베르크(Wittenberg)"

그 2 - 95개조의 반박문이 걸렸던 성교회(Schlosskirche)

by 깨달음의 샘물

1. 개 관



비텐베르크를 찾은 이들이 빠지지 않고 둘러보는 곳, 아니 그들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은 아마도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95개 조의 반박문을 내걸었던 "성교회(城敎會, Schlosskirche)"일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성교회는 Schlosskirche[Schloss(성) + Kirche(교회)]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비텐베르크성에 딸려있는 부속교회이다. 그렇다면 이 성교회를 감싸 안고 있는 성(城)이 있었을 터인데, 불행히도 성은 전쟁과 화재 등으로 붕괴된 후 폐허로 방치되어 오랫동안 성으로서의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때문에 내가 처음 성교회를 찾았을 때인 2011년만 해도, 성은 안 보이고 성교회만 덩그마니 홀로 서 있었다.

2011년의 성교회(Schlosskirche)

그런데 더 이상 성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 없다는 자성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4년에 걸친 복원작업이 행해졌다. 그 결과 2023년 여름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는 성교회 옆으로 복원된 성이 들어서 있었다.

csm%EF%BC%BFSchloss%EF%BC%8Dmit%EF%BC%8DSchlossturm%EF%BC%BFa7ced0f3e0.jpg?type=w1 2013년의 성과 성교회

성과 성교회를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성교회 팸플릿의 표지 사진을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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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성 앞에 넓은 공원까지 잘 만들어 놓았는데, 이곳을 찾으면 성교회를 찾은 관광객들이 무리 지어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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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곳곳에서 조각 작품들도 만날 수 있는데, 성교회에 관심이 쏠려 있어서 조각 작품들에 대해서는 그냥 눈길 한번 던지는 것으로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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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회는 1517년에 루터가 95개 조의 반박문을 내건 교회라는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데, 그런 이유로 성교회는 만원사례라고 써붙여도 크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2. 외 관


마르크트광장에서 슐로스거리(Schlossstraße)로 들어서게 되면 머얼리 성교회가 첨탑을 중심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일단 그곳에서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아, Schlossstraße는(성을 의미하는) Schloss + (도로/거리를 의미하는) Straße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어떤 이는 독일어를 그대로 한글로 옮겨서 슐로스스트라세라고 부르는가 하면, 나처럼 슐로스 거리라고 칭하는 사람도 있다. 아주 드물게는 완전히 우리말로 풀어 '성거리'라고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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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회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비교적 교회의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거리와 각도를 잡아 또 한 장의 사진을 남겼는데, 1489년부터 1509년에 걸쳐 지어진 교회답게 세월의 흐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탑 윗부분에 "우리 하나님은 강한 성(Ein festive Burg ist unser Gott)"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보이는데, 루터가 작사했다는 찬송가(585장) 가사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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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로 시작되는 이 곡을 예전부터 참 좋아했는데, 링크를 첨부해 두기로 한다.

https://youtu.be/KUp6m3wqYj0?si=bf--UrnFEN5zL5EC

성교회를 찾았다면 정녕코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루터가 95개 조의 반박문을 내건 문인데, 바로 아래 사진 속의 청동의 문이 그것이다. 이 문은 루터가 반박문을 내걸을 당시에는 나무였지만, 7년 전쟁 중에 소실되었다. 하여 1858년에 프로이센의 왕 빌헤름 4세의 명에 따라 청동으로 새로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지금 보는 문이 바로 이것이다.


아, 이 문을 "테젠튀어(Thesentür)"라고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독일어인 Thesentür는 Thesen(논제, 조문) + Tür(문)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20230628%EF%BC%BF103146.jpg?type=w1 테젠튀어(Thesentür)

내가 비텐베르크의 성교회를 처음 찾았던 것은 2011년이었는데, 당시 테젠튀어는 보수 중이었다. 때문에 아예 테젠튀어 앞으로는 다가갈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하여 당시에는 접근금지의 의미를 담아 위아래로 쳐놓은 2개의 나무막대기 밖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진에서 보듯이 테젠튀어의 하단 부분도 파헤쳐져 있었고, 성교회의 외부 또한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시행 중이었다. 하여 교회를 찾았건만, 마치 공사장 한복판에 들어선 것과 같은 느낌 속에 황급히 성교회를 둘러보고 떠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성교회 안으로 들어가면서 교회 안쪽에서 바라보는 테젠튀어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났는데, 바깥쪽의 모습에 비해 무언가 초라해 보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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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젠튀어가 갖는 종교사적 의미가 워낙 크다 보니 안내판의 내용도 상세하기가 그지없고, 아주 작은 글씨로 쓰여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만약 이 문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독일어와 영어로 쓰여 있는 아래 안내판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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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젠튀어의 오른쪽에 이런 것이 서 있는데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판의 성격보다는, 실제 신도들에게 예배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게시판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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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회의 외관은 이 정도면 얼추 본 셈이니, 이제 내부를 보아야 할 시간이다. 2011년에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테젠튀어 옆에 교회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있었고, 그를 통해 바로 교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성의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출입방법이 바뀌었는데, 한 마디로 조금 더 복잡해졌다.


아래 안내판을 보면서 출입방법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아래 안내판 사진에 붉게 표시된 점이 보일 텐데, 이곳이 테젠튀어이다. 그리고 테제투어에서 화살표를 따라 왼쪽으로 걸어가면 방문자 안내소(2번. BESUCHERZENTRUM/ VISITOR CENTER)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입장권을 구매한 후 교회 안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8번은 유스호스텔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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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안쪽으로 통할 것 같은 문이 나오는데, 이곳을 지나쳐 조금 더 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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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성교회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사진 뒤편으로 대형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성교회를 찾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웅변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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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로 들어서면 성의 안마당쯤 되는 공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바라본 성교회의 모습이다. 앞쪽에 보이는 부분이 제단 뒤쪽의 스테인드그라스가 있는 부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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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속의 성교회 왼쪽으로 여러 휘장들이 휘날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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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있는 이곳이 성교회로 들어가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방문자 안내소의 입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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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오른쪽에 방문자 안내소가 어떤 기능을 하는 곳인지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서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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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왼쪽에 이곳이 성교회로 들어가는 곳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입간판이 서 있다. 입간판에는 개관시간에 관한 정보가 자세히 담겨 있는데, 그에 따르면 개관 시간은 다음과 같다:

연중무휴이고, 개관시간은 10시부터 17시까지

다만 일요일은 예배 때문에 11시 30 분분에 개관해서 17시까지


탑에 오르르 수 있는 시간도 게시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개관 시간은 다음과 같다:

연중무휴, 개관시간은 10시부터 16시 30분까지

다만 일요일은 예배 때문에

11시 30분에 개관해서 16시 30분까지

(단, 탑의 입장시간은 16시까지)








계단 위에 있는 문안으로 들어서면 매표소 + 안내소 + 전시실 + 기프트샵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문자 안내소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이런저런 전시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교황 레오 10세가 베드로성당 건축자금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도록 한 결정에 대해, 루터가 라틴어로 써붙인 95개 논제를 독일어로 번역해서 게시하고 있는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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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95개 논제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95개 논제가 종교개혁의 불길을 점화시켰다"는 커다란 글씨가 보인다. 그 밑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총만이 인간에게 영생을 부여할 수 있다는 글귀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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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개 논제가 적혀있는 포스터를 한 장 샀고, 인증숏을 남겼다. 귀국해서 거금을 들여 표구상에 부탁해 액자로 만들어 내 거실 한구석에 모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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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사진이 흔들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 누구라도 초상화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두 점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말할 것도 없이 왼쪽은 루터, 오른쪽은 오랜 동반자로서 루터의 종교개혁에 힘을 보탰던 멜란히톤(Melanchthon, 1497~1560)의 초상화이다.



이 두 점 모두 1532년의 작품인데, 우리가 잘 아는 루카스 크라나하(Lucas Cranach d. 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 다만 이에 대해서는 이들 작품은 그의 큰아들인 한스 크라나하(Hans Cranach, ?1513~1537)의 작품이란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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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교회와 단체가 세계인구에서 차지하는 몫"이란 주제의 전시물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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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이 비슷해서 확정 짓기 어렵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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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조각 작품도 있었는데, HEIDRUN FEISTNER란 작가의 2020년 작품인 Alter Friede라고 한다. 작가도 모르고, 작품 제목 또한 잘 이해가 안 되는 자그마한 크기의 작품인데, 꽤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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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작가의 작품은 성교회 안에서도 만날 수 있었는데, 브론즈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2023년도 작품인 Friede / Für Wolfgang Borcher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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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고 있을 뿐, 이 작품의 작가는 이미 독일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듯하다. 이미 많은 독일의 교회에서 이 작가의 작품전(?)이 열린 것을 보면 말이다. 특징적인 것은 이 작가의 모든 작품들이 우리가 이곳에서 만난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것인데, 이 작가의 작품세계가 궁금하다면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3. 내 부


성교회로 들어서는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이것인데, 작가분에게는 매누 죄송스런 말이지만 솔직히 그저 금속판에 아무렇게나 막 긁어놓고 글자 몇 자 끄적여 놓은 듯해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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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실체는 "어둠 속에 빛이 비추이다"라는 2017년 작품이다. 내가 못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작가에 대한 안내는 적어도 이 작품 주변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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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회의 내부를 꼼꼼히 보려면 성교회 팸플릿 안에 있는 이 같은 위치도(아래 사진 참조)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교회 내부에 주목하여 볼만한 것들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숫자로 표시해 두고, 그것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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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뒤쪽에서 중앙의 제단을 바라본 교회 내부의 모습인데, 보는 이의 눈길을 확 잡아 끌 정도의 특별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축조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을 느낄 수 있게 할 만큼 충분히 격조 있고, 또 엄숙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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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후면에서 제단을 바라볼 때 오른편으로 보이는 이것은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실 때 사용하는 공간인데, 역사가 있고 규모가 웬만한 교회라면 거의 예외 없이 이런 형태의 구조물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서 그것을 새삼스럽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밑에 루터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앞에 꽃이 놓여 있는 자그마한 석관(?), 저것이 루터의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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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묘만 따로 사진에 담아 보았다. 잘들 알다시피 루터는 여행 도중에 자신이 태어난 곳인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1546년 2월 18일에 죽음을 맞이했고, 그의 시신은 그가 마지막 설교를 했던 성 안드레아교회(St. Andreaskirche)에 안장됐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4일 후에 이곳으로 옮겨 왔고.

20230628%EF%BC%BF101159.jpg?type=w1 루터의 묘

루터의 에피타프(Epitapf). 1546년에 만들어진 오리지널의 카피라는데, 원본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설명은 교회의 안내 팸플릿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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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신랑(身廊)을 기준으로 루터의 묘와 마주 보고 있는 곳에는 그의 든든한 동반자였던 멜란히톤의 묘가 있다. 멜란히톤은 1560년 4월 19일에 사망했는데, 이틀 뒤 이곳에 그의 무덤이 마련됐다.

20230628%EF%BC%BF101323.jpg?type=w1 멜란히톤의 묘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묘가 있는 곳 근처의 벽에 두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익히 많이 보아 온 그림이지만, 다시 한번 말해둔다. 왼쪽이 루터, 그리고 오른쪽이 멜란히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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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묘 뒤쪽으로 등뒤의 장식이 거창해 보이는 의자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 자리는 이 교회의 실력자들이 예배 시에 앉았던 자리이다. , 유럽의 많은 교회에서 이런 공간과 마주치게 돼.


허긴 신분과 계급에 다른 대우가 전혀 달랐던 옛날에 그 지역의 영주가 일반평민과 옆에 나란히 앉아 예배를 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만민이 평등함을 그렇게도 강조하셨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앞에 서서 그렇다는 것이고, 속세에서는 여전히 이처럼 차별이 엄존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 교회에 따라서는 앞에서 이야기한 그런 자리가 성가대석인 경우도 있다.



2011년에 성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이렇게 정면에서 바라보며 사진을 남겼었다.

교회 앞의 중앙제단 쪽으로 걸어 나가서 제단과 제단위쪽의 천장을 바라보며 한 장의 사진을 남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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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제단에 초점을 맞추어 또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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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단을 뒤로하고 교회의 뒷면을 바라보며 한 장의 사진을 남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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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 오르간에 초점을 맞추어 또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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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가장 뒤쪽 면의 모습인데, 바닥에 묘로 추정되는 것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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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교회의 안내 팸플릿의 위치도에 따를 때, 묘 위쪽에 보이는 이것이 "작센 아스카니어 대공과 선제후들(sächsisch-askanischen Herzoge und Jurfürsten)"의 묘석(墓石, Grabdenkmal)인 것 같다. 아, 이 묘석은 황제인 빌헬름 2세의 명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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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진 속 묘의 양옆에 이렇게 부조가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찾아볼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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