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슈타트 "비텐베르크(Wittenberg)"

그 3 - "멜란히톤의 집(Melanchthonhaus)

by 깨달음의 샘물

1. 멜란히톤, 그는 누구인가?


멜란히톤(Melanchthon, 1497~1560)은 루터와 종교개혁을 함께 한 동반자로 잘 알려져 있는 신학자이다. 본명은 "검은 흙"을 의미하는 Schwarzert인데, 이를 그리스어로 바꾸면 멜란히톤이 된다고.이다. 뿐만 아니라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그리이스어를 강의할만큼 뛰어난 언어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 1466?~1536)의 가르침을 받은 인문학자로도 유명했다. 멜란히톤과 에라스무스의 이러한 관계 때문인지 멜랴히톤의 집에는 에라스무스(좌측)와 멜란히톤(우측)의 초상을 이렇게 나란히 내걸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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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솔직히 종교개혁에 있어 멜란히톤이란 사람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비텐베르크의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에 세워져 있는 2개의 동상 가운데 하나가 루터이고, 다른 하나가 멜란히톤이라는 것을 보면 멜란히톤이란 인물의 중요성에 대하여는 큰 의심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 멜란히톤의 본명은 "검은 흙"을 의미하는 Schwarzert인데, 이를 그리스어로 바꾸면 멜란히톤이 된다고.


2. 멜란히톤의 집


사실 난 멜란히톤을 잘 몰랐다. 내가 멜란히톤의 집을 처음 찾은 것도 그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멜란히톤의 집을 찾았던 진짜 이유는 관광안내 책자에 나와 있는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16세기부터 잘 보존되어 있는 집으로 서재나 생의 마지막을 보낸 방들의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라는말에 이끌려서였다. 그런데 이런 이유때문에 2011년에 멜란히톤의 집을 찾았을 때는 멜란히톤의 집은 보수가 한창 진행중이어서 내부 관람이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공사중인 집의 외관만 하릴없이 바라보다 겨우 한장의 사진을 남기고 돌아섰었지다.

Screenshot%EF%BC%BF20230730%EF%BC%BF131641%EF%BC%BFNaver_Blog.jpg?type=w1 2011년, 보수중인 멜란히톤의 집

그리고 12년만에 다시 멜란히톤의 집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보수가 모두 끝나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20230627%EF%BC%BF183201.jpg?type=w1 2023년의 멜란히톤의 집

우리식으로 말하면 2층과 3층 사이에 "이곳에서 멜란히톤이 살았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죽었다"라고 쓰여 있다.


아, 독일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1층을 0층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1층, 2층... 이렇게 세어 나간다는. 이것을 이해하면 내가 위에서 왜 '우리식으로 말하면'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2년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멜란히톤의 집 옆의 건물을 사들여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그 공간에 많은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멜란히톤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이 건물은 물론 멜란히톤의 집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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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버금가는 역할을 하는 건물 앞의 보도에 이런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하나의 도로상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이 무려 4개씩이나 들어서 있는 경우는 전무후무하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 4개의 건물은 앞에서부터 루터의 집(Lutherhaus), 멜란히톤의 집, 시교회(市敎會, Stadtkirche) 그리고 성교회(城敎會, Schlosskirche)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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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 앞에는 멜란히톤의 집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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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서면 매표소와 인포메이션 그리고 기념품샵 등 복합적 기능을 하는 곳이 나오는데, 개관시간과 입장료를 게시하고 있다. 입장료는 5유로(2023년, 성인 개인을 기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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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란히톤 집의 원래 주된 출입문(Haupteingang)을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지금은 박물관의기능을 하는 건물의 출입구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더 이상 이 문을 통해 출입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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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바라본 문의 모습을 얻기 위해 틀림없이 사진을 찍어 놓았는데, 사진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그만 "삭제"버튼을 누른는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여, 그만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하여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한 장 가져 왔다.


이 출입문(현관)현관은 인근 피르나(Pirna) 지방의 사암(沙岩)으로 만들어졌는데, 사진 속에 보이는 이같은 현관 형식은 당시 상류층 집 현관의 전형적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 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래 사진 속의 글을 읽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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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속의 문을 지나치면 16세기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멜란히톤의 집으로 들어가는데, 제일 먼저 우리르르 맞이 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는데 멜란히톤이 걸쳤던 - 또는 그와 유사한 - 학위복 + 두건 + 신발 3종세트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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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놓여있는 이것은 위 사진 속의 학위복 3종 세트를 착용한 멜란히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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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주방과 식당이 나오는데, 일단 공간이 꽤 넓다. 당시 상류층 사람들이 기거했던 주거의 식당이 이정도는 되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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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지나 한 층을 오르면, 서재로 추측되는 곳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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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상당히 의미있는 전시로 여겨지는데, 어디에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간 부분에 멜란히톤이라고 크게 쓰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멜란히톤에 관한 축약적 설명으로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영어나 독일어로 쓰여 있지 않아서 내용을 전혀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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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란히톤이란 사람, - 우리의 다산 정약용(茶山丁若鏞, 1762~1836) 선생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 참으로 다방면에 관심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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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지리는 기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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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과 점성술. 그리고 나아가서 시간계측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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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의학과 식물에 대한 관심 또한 보통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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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란히톤의 얼굴을 표현한 조각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놓았는데, 그 뒤쪽에 보이는 것이 멜란히톤의 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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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만 따로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현대식 서가에 고서들이 가지런히 꽃혀 있다. 펼쳐져 있는 책도 있는데, 이나저나 읽어 보지 못하니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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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방은 이렇게 꾸며져 있는데, 벽과 바닥이 온통 글씨로 뒤덮여 있다. 멜란히톤의 글씨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영어나 독일어는 아니다. 멜란히톤이 그리이스어를 강의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스어일 수도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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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란히톤의 집 안에서 나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던 전시물은 " 멜란히톤의 보물"이란 제하에 쓰여져 있는 이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멜란히톤은 물질적 부(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검소한 삶으로 족했다고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 진정한 보물은 '영혼의 고귀함(Kostenbarkeiten des Geistes)'이었다는 것이다. 돈을 벌 재주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돈에 무관심한 척하며 살아가는 나와는 참 많이 대비되는 멜란히톤의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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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층에서 바라본 멜란히톤의 정원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멜란히톤이 식물에 관심이 많았고, 또 자연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라고 설파했음을 생각할 때 멜란히톤이 정원을 가꾸는 일에 남다른 정성을 보였을 것이란 점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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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원을 바라보고 아랫층으로 내려왔는데, 어느 문 앞에 정원(Garten)이라고 쓰여진 화살표가 보인다. 해서 다가가 손잡이를 돌려보았더니, 문이 열린다. 그래, 이 곳이 정원으로 나가는 출입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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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원으로 나섰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사진첩에는 정원 사진이라고는 단 한 장도 보이지 앟는다. 있는 것이라고는 정원 구조에 관한 그림과 설명이 적힌 안내판 사진 뿐.


안내판에 따르면 멜란히톤의 정원은 1860년에 둘로 갈리워졌고, 그 가운데 핵심적인 영역은 옛 비텐베르크 대학인 LEUCOREA에 팔렸다고 한다. 그런 상태가 오래 이어지다가 2010년 이후에 다시 LEUCOREA측으로부터 소유권을 완전히 넘겨받았고, 2016년에 원래의 경계 안에 새로이 정원을 꾸미게 되었다고 한다.


아, LEUCOREA에 관해서는 다음 들에서 따로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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