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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Nov 25. 2023

나의 처음이자 영원한 뮤즈(Muse)  "Vicky"

천상의 목소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White House"

1.  비키와의 첫만남


이북에서 단신 월남하신 내 아버님께서는 사고무친한 남쪽에서 그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 당신의 삶을 일구어 우리 5남매를 키워내셨다. 그러니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돌이켜 보면 내가 초중고 12년 동안 무려 10번 씩이나 이사를 해야 했던 것, 그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1968년의 어느날,  틀림없이 넉넉지 못한 삶이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아버님께서 턴테이블과 스피커가 하나의 몸체 속에 들어가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전축을 집에 들이셨다.  지금이야 내가 '전축'이란 말을 쓰고 있지만, 당시는 그저 보도 듣도 못한 영양가 없어 보이는 물건에 불과한 전축이 안방 웃목에 떡하니 자리를 한것이다. 그런데 전축이란 놈이 우리집에 들어온 몇일 후, 7살 위의 형이 역시 처음 보는 요상한 물건을 하나 갖고 들어왔다(그걸 LP판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안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다). 용돈이 박하던 시절이었을텐데 무슨 돈으로 형이 그것을 사들인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아버님이 들이신 전축 + 형이 날라 온 LP.  이 둘의 시너지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글쎄 대한민국의 9살 짜리 사내놈이 그리스 출신의 비키 레안드로스(Vicky Leandros, 1949~)라는 이름의 미녀 가수에 푹 빠져 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와 형이 귀가하기 전까지, 나홀로 만나던 비키. 그녀는 말 그대로 천사였다. 인터넷에는 수없이 많은 그녀의 이미지가 올라 있는데, 내가 처음 만났던 비키의 모습과 제일 유사한 것으로는 이것이 있다.


2. 비키, 그리고 그녀의 음악


(1) White House


그렇게 처음 만난 그녀의  노래, 그것이 바로 "White House"였다. 1960년대 노래이건만, 지금 들어봐도 여전히 세련됨을 만끽할 수 있는 White House를 19세의 어린 비키의 노래로 들어 보자.

사실 White House는 비키에 앞서 마리사 산니아(Marisa Sannia, 1947~2008)가 1968년 제18회 산레모 가요제에서 "Casa Bianca"라는 제목으로 불러 2위로 입상하면서 트했던 곡인데, 이곡의 원곡은 싱어송라이터였던 돈 백키(Don Backy, 1939~)가 1967년에 발표한 같은 제목의 노래이다. 유트브에 올라 있는 이들 두 버젼을 차례대로 들어 보면 비키가 부르는 White House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한편, 비키가 얼마나 이 노래를 맛갈지게 불렀는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 원제목인 이태리어의 "Casa Bianca"는 하얀 집(White House)이란 뜻이다.


마리사 산니아가 부르는 Casa Bianca이고,

돈 백키가 부르는 Casa Bianca이다.

돈 백키는 1967년에 스스로 L'immensita라는 곡을 들고 제17회 산레모 가요제에 출전해서 당당히 입상하기도 했다. 다만 내가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이 동갑내기 이태리 여가수 밀바(Milva, 1939~)를 통해서였으니, 여기서는 밀바의 노래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아,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는 "눈물 속에 피는 꽂"이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2) Love is Blue


내가 비키를 만난 것이 "White House"였기 때문에 그를 먼저 소개했지만, 사실 비키가 세계 가요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주목을 받게 된것은 그보다 한 해 전인 1967년 제12회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L'amour est bleu(Love is Blue)"를 가지고 출전해서 4위로 입상하면서부터이다.


겨우 4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가 생각보다 보수적이어서 어린 소녀들의 입상을 거의 허락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4위도 대단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18세 앳된 모습의 비키가 부르는 L'amour est bleu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 비록 56년전의 노래이지만, 단언컨대 이 곡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제12회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 이후 막상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 끈 것은 비키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폴 모리아(Paul Mauriat, 1925~2006)가 이를 화려한 현악기 멜로디와 빠른 비트로 버무려 편곡하여 Love is Blue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곡이 미국에서 연속하여 5주나 탑을 차지하는 엄청난 행운이 작용하기는 했다. 어쨌거나 비키에게도, 또 폴 모리아에게도 럭키 넘버였던 폴 모리아의 편곡 버젼으로 Love is Blue를 들어보자.

이 글을 쓰려고 준비하면서 전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그것은 비키가 1972년 제17회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한층 성숙한 모습과 목소리로 무장하고 "Apres Toi(너의 뒤에)"라는 곡을 들고 다시 나타나 그랑프리를 접수했다는 것이다. 사실 내 마음 속의 비키는 1968년, "White House"를 부른 가수면 충분하지만, 그래도 성숙한 비키를 만나보는 것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3. 비키와의 재회


비키와의 첫만남의 기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한동안 비키를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비키가 2002년, 세월이 흘러 40줄에 들어선 내 앞에  거짓말같이 다시 나타났다. 'Mit Offenen Armen(팔을 벌리고)'이란 이름의 CD앨범에 실린 "Goodbye My Love Goodbye"라는 곡을 들고 말이다. 40줄에 들어선 나를 다시 30년전으로 돌아가게 하여 비키를 추억하게 만들었던 그 노래, "Goodbye My Love Goodbye"이다.

알고 봤더니 이 CD앨범은 유명했던 팝송들을 독일어 버전으로 노래한 곡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Goodbye My Love Goodby"의 원곡은 영어가사로 되어 있다. 느릿느릿 이어지면서 진한 바이브레이션이 일품이었던 그 노래를 부른 이는, 이집트 출신의 그리스 남성 가수 데미스 루소스(Demis Roussos, 1946~2015)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비키의 버전보다 더 친숙할 수도 있는 데미스 루소스 버젼의 Good bye my love goodbye이다.

데미스 루소스의 "Good bye my love goodbye"는 내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노래를 통해 비키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라고 하는 이유는, 독일어로 흘러 나오는 노래를 부른 여가수가 비키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까지 독일어로 노랫말이 이루어져 있는 것은 독일 출신 6인조 혼성그룹 징기스칸(Dschinghis Khan)의 Rom 정도가 전부였는데, 독일어 가사의 노래가 들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비키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비키의 언어능력을 이야기하며 이 글을 맺도록 하겠다. 비키의 노래를 들어 보면, 영어는 물론이고 불어, 독어, 이태리어, 그리스어가 모두  출동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녀의 언어능력이 가사를 간신히 외워 부르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녀의 이같은 완벽한 외국어 실력은 그녀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 본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가수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외국어 하드 트레이닝을 시킨 결과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럼 SM의 이수만이 비키의 아버지를 벤치 마킹한 것이 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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