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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숙현 Jul 15. 2023

6. 하늘을 나는 배

 "자, 여기 강바닥으로 내려와서 칼끝을 대봐. 뭔가 끌어당긴다 싶으면 죽을힘을 다해 힘껏 잡아당기라고. 알았지?"

 비도의 말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에서 불을 뿜는 듯했다. 무길은 군소리 없이 강바닥으로 내려갔다. 바닥에 닿자마자 물컹하고 끈적한 느낌이 발목을 감쌌다. 칼을 들고 발을 떼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길은 비틀거리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뒤를 돌아보니, 비도는 여전히 주문을 외우고 있는 중이었다. 


 "뭘 찾고 있는지나 알아야지 원."

 무길은 중얼중얼 거리며 칼을 내밀었다. 그때 갑자기 무길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끄덕끄덕 움직이던 칼이 강 중심을 향해 일직선으로 당겨졌기 때문이었다. 무길의 몸은 순식간에 강 중심부로 딸려갔다. 끈적한 강바닥에 무길의 발자국이 뚜렷하게 남았다. 

 무길은 칼을 놓치지 않으려고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칼이 움찔하며 멈춰 섰다. 뭔가 강력한 힘이 칼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무길은 칼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안간힘을 써야 했다. 

 "어, 어. 이게 뭐야. 이 속에 뭐가 있어."

 "이 멍청아, 힘껏 잡아당기라고."

 비도가 소리를 꽥 질렀다. 무길은 칼을 힘껏 잡아당겼다. 무길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선계의 대장간에는 힘깨나 쓴다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무길의 힘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팔뚝의 근육이 불뚝불뚝 튀어나왔다. 강바닥에 쩍쩍 금이 가기 시작했다. 두 팔이 끊어질 것처럼 당겨졌다. 무길은 두 발을 버티고 힘껏 칼을 당겼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칼을 들어 올렸다.

 "이얍."

 드디어 뭔가가 강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무길은 강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무길은 숨을 헉헉 몰아쉬며 자신이 끌어올린 물건이 무엇인지 바라보았다. 진흙을 잔뜩 뒤집어쓴 모습이지만 그것은 분명 한 척의 배였다. 

 "클클클. 드디어 비선을 찾았다. 찾았어."


 주문을 외던 비도가 바람처럼 달려 내려왔다. 배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찬찬히 살펴보는 눈치였다. 그림자 비도는 헛손질을 하며 배를 만지려고 했지만 그뿐이었다. 지난 50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비도의 손에 잡히는 것은 허공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일이었다. 이 배를 타고 인간계로 가면 육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어서 진흙을 털어내 봐라. 어서어서."

 비도의 말이 빨라졌다. 무길은 끙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이 배는 무슨 배야? 배가 왜 강바닥에 묻혀 있었건 거야?"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시간 없으니깐 어서 흙이나 털어!"


 비도의 눈빛이 이상하게 번들거렸다. 무길은 두 손으로 배에 묻은 진흙을 털어냈다. 나무로 만들어진 배는 가운데 부분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두어 명 남짓 탈만한 작은 배였지만 장식이 달린 돛이며 날렵하게 깎은 고물이며, 한눈에도 정성을 들여 만든 배임이 분명했다. 

 무길은 배 앞머리에 달린 돌을 이리저리 만져 보았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위로 향했다. 그러자 강바닥에 떨어져 있던 무길의 칼이 휙 하고 날아와 돌에 들러붙었다. 무길은 움찔하고 놀라며 몸을 피했다. 

 "이게 뭐야? 하마터면 내 칼에 내가 찔릴 뻔했잖아."

 무길이 소리를 꽥 질렀다. 비도가 한쪽 입가를 삐죽이며 말했다.  

 "그러니깐 빨리 움직이라고 했잖아. 클클클. 대장간에 있을 때는 안 그런 것 같더니. 생각보다 겁이 꽤 많군."

 "지금 날 놀리는 거야?" 

 "놀리다니? 그럴 리가.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어."


 무길은 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대장간 화덕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칼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무길은 조심스럽게 칼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찌릿한 느낌이 감쌌다. 

 "앗 뜨거워.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내 칼이 왜 이래?"

 "아무래도 이 부석이 네 칼을 더 단단하게 단련시킨 것 같군."

 "이 돌이 부석이라고?" 

 "그래, 부석. 공중에 뜨는 돌이지. 선인들은 학을 타고 다니지만, 선인이 아닌 자는 학을 탈 수가 없지. 대신 이 부석을 달아서 하늘을 나는 거야."

" 그런데 그 부석이라는 게 내 칼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클클클. 이제 '내 칼'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군. 잘 들어. 쇠붙이가 부석에 닿는 순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막 같은 것이 생긴다고 했어. 네 칼은 네 놈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해졌지. 이제 선인군의 그물쯤은 단번에 끊어버릴 수 있을 걸."

"말도 안 돼."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좀 있다 보면 알 수 있겠지. 일단 어서 배에 타기나 해."

비도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배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오랜 세월 강바닥에 묻혀 있었지만, 돛대는 상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것은 상제가 인간들을 위해 마련해 둔 비선이었다.

 "상제가 이곳에 배를 숨겨둔 것을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 비도는 들었지. 더러운   땅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말이야."

 비도의 목소리에 회한이 묻어 있었다. 비도가 휘파람이 불자 돛이 서서히 펼쳐졌다. 부석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잠시 방향을 잡는가 싶더니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돛이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가 배 안에서 키를 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오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배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무길의 몸이 한쪽으로 쏠리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만 같았다. 솟구쳐 있던 북쪽 강물도 쏴아 하며 한꺼번에 강바닥으로 쏟아졌다. 여기저기 물이 튀어 오르자 배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날아갔다. 


 무길은 뱃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선계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상제가 산다는 궁전도 멀리 보였다. 가끔 대장간 마을에 들른 선인들이 학을 타는 모습을 보기는 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것은 선인들에게만 허락된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야! 나는 무길이다."

 무길은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배가 위로 올라갈수록 한기가 느껴졌다. 찬바람이 불어오자 옷자락이 몸에 딱 달라붙었다. 무길은 얼얼해진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저기 보이는 게 선계를 빠져나갈 마지막 문이야. 인간들의 세상으로 가려면 저길 지키고 있는 선인군들을 다 해 치워야 하지. 각오 단단히 해. 여기서부터는 네 몫이니까."

 무길은 긴장을 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하게 큰 두 개의 기둥이 보였다. 기둥 너머에는 흰구름 사이로 푸른 바다가 넘실댔다. 

 "저 바다를 건너 가면 인간들의 세상이란 말이지?"

 무길은 이제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다면, 이제 남은 것은 선인군들을 뚫고 나아가는 길 뿐이었다.  


 무길은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칼은 무길에게 힘을 주었다. 한 치의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었다. 

 "부석을 떼면 배가 저 밑으로 내려갈 거야." 

 무길은 비도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늘 위에 서 있던 배가 서서히 내려서자 '와' 하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선인군들이 배를 향해 달려오며 내지르는 소리였다. 


 무길은 훌쩍 배에서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선인군이 무길을 빙 둘러쌌다. 뒤쪽으로 또 한 무리의 선인군들이 열을 지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무리 속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무길, 감히 정령 주제에 선인을 해쳐?"

 무길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했다. 검술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무길의 몸은 칼과 하나가 된 듯했다. 

 선인군들이 무길을 향해 그물을 던졌으나 허사였다. 무길의 칼은 그물을 단칼에 끊어버렸다. 

 "아니, 이럴 수가."

 선인군들이 당황하며 허둥대고 시작했다. 무길의 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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