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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시아 Jul 25. 2024

재수 없는 계집아이

“아니, 이 우라질 년이 어디서 시어미한테 눈을 부라리면서 우리 영수를 다른 놈이랑 비교해?”


명선의 시어머니는 노발대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위아래도 없이 바락바락 대드는 건 어디서 배워먹었냐? 너희 친정엄마가 그리 가르치던? 보잘것없는 집안 딸년을 착한 거 하나 믿고 교수 안사람 자리에 앉혀놨더니 아주 싹수가 없는 년이었구먼? 어디 귀한 우리 영수를 네 친구년 남편 나부랭이 옆에 갖다 대, 갖다 대기를? 두고 봐라. 우리 영수가 얼마나 귀한 사람이 될지.”


명선은 태어나서 그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막말을 들으며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 날 이후로 시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명선을 호출했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사사건건 간섭을 했다. 특히 무조건 아들을 낳아야 한다며 곧 태어날 아이의 옷가지와 이불 등 모두 파란색으로 준비하라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명선은 출산 준비마저도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하지만 명선은 꿈속에서 커다란 분홍빛 복숭아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명선은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뱃속 아이가 딸임을 직감했다. 사실 명선은 딸이든 아들이던 건강하게만 태어나주길 바랐지만 순간 시어머니의 말이 떠올라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첫째는 무조건 사내를 낳아야지. 계집애는 못쓴다.’


몇 달 뒤 명선은 24시간의 진통 끝에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영수는 명선이 아이를 낳은 날에도 명선 곁에 없었다.

명선은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가 제대로 달려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었지만 불안한 목소리로 아이의 성별을 물었다.


“선생님… 아들인가요?”

“예쁜 공주님이에요~ 축하드려요.”


명선은 이제 막 첫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시어머니에게 어떤 대접을 받을지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다음날 명선의 출산소식을 들은 시어머니는 큰 시누이와 함께 병원으로 찾아왔다. 명선은 침대에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시댁식구를 맞이했다.


“어머님, 큰 형님, 오셨어요?”


큰 시누이는 명선을 본체만체하며 냉장고를 슬쩍 열어보았다. 시어머니는 매서운 눈빛으로 명선을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쯧쯧, 자식복 없는 년. 첫째는 사내를 낳았어야지, 재수 없게 계집아이를 낳으면 영수가 조상님들 앞에서 면이 서겠냐?”


명선은 큰 시누이 옆에서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재수 없게 계집아이를 낳았다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기가 찼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큰 시누이는 자기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지 관심도 없는 듯했다.

시어머니는 뒤돌아 병실을 나서며 명선에게 차갑게 말했다.


“올해 안으로 둘째 가져라. 사내 낳을 자신이 없으면 용한 무당이라도 찾아가 굿이라도 해. 절에 가서 새벽기도를 바치던지.”


명선은 6개월 후 둘째를 가졌고 시어머니가 시킨 대로 매일 새벽 절에 가서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이듬해 현아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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