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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시아 Aug 02. 2024

부재(不在)

현아는 그날 이후로 아빠를 볼 수 없었다.


아빠가 사라진 이후로 엄마는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아빠를 찾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엄마는 아빠와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고 싶어 했다.

서류상 아직 부부의 관계로 남아있는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도록 아빠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친가도 아빠가 사라진 이후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현아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슬펐다. 아니, 서글펐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현아가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는 늘 자고 있었고,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이미 출근해 버린 아빠를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빠와 가족여행을 가 본 적도, 단 둘이 놀러 가본 적도 없었다.

특히 잠귀가 밝았던 현아는 새벽마다 술 마시고 들어오는 아빠의 현관문 여는 소리, 아빠가 늘어놓은 옷가지를 치우고 아빠를 작은방으로 데려가 뉘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면 다른 집 아빠들처럼 가정적이지 않은 아빠가 밉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건 두려웠다. 엄마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걸 들을 때면 현아는 그게 현실이 될까 봐 불안했는지 밤에 아빠가 사고로 죽는 악몽을 자주 꾸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당장 아빠를 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하지만 왠지 엄마 앞에서 내색하는 것이 미안했다. 현아는 아빠가 생각날 때마다 울컥하고 올라오는 눈물을 삼키고 또 삼켰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밤 침대에 누워 소리도 내지 못하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며칠 동안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몇 장 있지도 않은 가족사진 속 아빠 얼굴을 가위로 오려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아빠에게 받은 유일한 선물이 기억났다. 초등학교 입학 선물이라며 포장도 없이 무심하게 식탁 위에 던져두고 간 손목시계. 까만 케이스 안에 활짝 웃고 있는 스누피가 그려진 와인색 가죽 손목시계가 들어있었다. 현아는 스누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빠가 준 시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차고 다니다 혹시나 잃어버리거나 망가질까 봐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해두고 있던 그 손목시계를 꺼냈다. 아빠와 관련된 것은 모두 버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왠지 이 시계는 버릴 수가 없었다. 이 시계마저 버리면 아빠와의 연결고리가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만 같았다. 현아는 다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손목시계를 다시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아빠가 사라진 지 이 년 정도 되었을 때 캐나다에 사는 엄마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는 한 시간이 넘는 긴 통화를 마친 후 창백해진 낯빛으로 자매를 불렀다. 식탁에 둘러앉은 세 모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의 정적 후, 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까 전화 온 사람은 누구야?”


엄마는 긴 통화 때문인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캐나다에 사는 엄마 친군데, 너희 아빠 지금 캐나다에 있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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