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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Aug 28. 2024

날파리를 관객 삼아

소설

                      

 목욕을 마친 나는 상쾌한 마음으로 거리를 나섰다. 5월 말 해질녘이었다. 

낮엔 한여름처럼 덥더니만 석양 무렵엔 다시 봄날의 따사로움으로 돌아왔다. 

날씨를 좀 더 즐기기 위해 근처 벤치에 앉았다. 가로수의 연두빛들은 점점 더 초록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게 석양의 붉은 빛과 어울려 제법 아름다운 대비를 만들어 냈다. 

넘어가는 해를 아쉬워하는 듯한 날파리들의 실루엣이 선명했다. 여기에 산들바람마저 불자 뭔가 완성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눈이 감겼다.        

‘참 괜찮은 한때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계속 살다가 지치고 힘들 때 오늘을 생각하면 위로가 될까? 그러기엔 좀 약한 건가?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눈을 뜨는 순간, 왼쪽 눈에 "퍽!" 하는 느낌이 덮쳐 왔다. 

날파리 한 마리에 눈에 들어간 것이다. 눈에 티가 들어간 적은 많아도 눈에 벌레가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벌레가 입에 들어간 적은 많아도 벌레가 눈에 들어간 것 역시 처음이었다. 

 그냥 넘기기엔 느낌이 너무나 묵직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눈을 깜박여봐도 소용없었다. 손으로 비비면 벌레가 뭉개지면서 안구 속으로 영원히 스며들까봐 겁이 났다. 엄밀히 말해 통증이라고 할 순 없었다. 하지만 미칠 듯이 불쾌했다. 일단 바람을 좀 불어넣었으면 좋겠는데 내 입으로 아무리 후후 불어도 각도가 맞지 않았다. 물로 씻어내는 게 방법이지만 화장실은 물론 반경 100여 미터 안에 수도꼭지는 없어보였다. 

 암담한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근처 벤치에 몇몇 사람들이 나처럼 앉아있었다. 벌떡 일어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달려갔다. 내가 다급하게 다가가자 벤치에 앉아있던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더 이상한 놈이 될 거 같아 그냥 침을 꿀꺽 삼킨 채 그녀를 지나쳤다. 그 다음 가까운 벤치엔 하필 또 젊은 여자 두 명이 날 보며 숙덕이고 있었다. ‘세상에 왜이리 여자가 많아?‘ 하고 탄식하며 역시 지나쳤다.  

멀리 혼자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보였다. 그 남자가 마치 아는 사람인양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젠 엄두가 났다. 날 변태로 보든 말든 더 이상 상관없었다.      


죄송한데요여기 좀 후 하고 불어 주실래요?”     


 나중에 느낀거지만 남자는 담배를 피우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던 듯 했다. 

초점이 없어보이는 눈이 그랬다. 뭔가 근원적인 고민을 하는 듯한.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들었고 멍하게 날 올려다봤다.      


그러니까눈에 벌레가 들어가서..”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내 왼쪽 어깨에 얹고 천천히 입술을 내밀었다. 난 엄지와 검지로 왼쪽 눈을 확장시켰고 그는 거기에 부드럽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조금 더 세게 불까요?”     


 남자가 물었고 난 고개를 끄덕였고 좀더 강한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한번만 더.."     


 내 말에 남자는 한층 강도를 높여 바람을 불었다. 악취까지 각오했지만 남자의 숨결은 쾌적하고 포근했다. 벌레가 빠져나가는 느낌은 없었는데 어느새 묵직한 이물감은 사라져 있었다.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을 닦아낸 뒤 주변을 둘러보니 조금 전의 여자들과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이 아낌없이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도 그 시선들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그는 내 어깨에 올린 손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뗀 뒤 계속 날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이제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 고맙습니다."     


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혹시 침이 튀진 않았죠?"     


하면서 방긋 웃는 남자의 얼굴에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끼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입에서 나온 세찬 바람 속에 침이 한 입자도 섞이지 않았음을 새삼 깨달았다. 세상에 이렇게 세심하고 깔끔한 남자가 있나. 

 이거 어떻게 사례를.. /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라도.. / 명함이라도 한 장 주시면.. 등등의 멘트를 떠올렸으나 하나같이 부적절하단 생각이 들어 그냥 말없이 어색하게 웃었다. 사람들은 다른 할 일이 없는지 아직도 하염없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 둘을 위해 시간이 기꺼이 멈춰주었다. 

하지만 난 눈에서 고통이 사라진 이후의 순간을 못 견뎌 했고 서둘러 관습적 마무리로 상황을 종료시키려고 이런저런 수단을 강구하다가 결국 공손히 인사 한번 더 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걷다가 뒤돌아보니 남자는 다시 벤치에 앉아 사람들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내고 있었다.      

 남자를 떠난 뒤 남은 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누워서 나름 이색적이고도 묘한 경험을 곱씹었다. 남자가 아른거리는 걸 느끼며 피식 웃었다. 

 다음 날에도 그 남자가 생각났다. 짜릿한 기억도 아니었고, 잊고 싶은 기억도 아니었다. 그저그런 무의미한 경험이었는데도 간간히 쉬지 않고 그 남자가 떠올랐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난 뒤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의 일은 ‘강렬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그립다는 것을.  

 후회가 몰려왔다. 그렇게 도망치듯 벗어나는 건 아니었다. 예의도 아니었고 내 마음도 그게 아니었다. 다시 한번 그를 대면하고 그의 편안한 미소를 다시 겪고 싶었다. 그리고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따위 말들 말고 진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6월 초 어느날의 해질녘에 난 그가 앉아있던 벤치에 30분 정도 앉아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과 그 다음날도 비슷한 시간대에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그가 했던 대로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워 봤다. 목만 아팠고 그는 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의 옷차림이 떠올랐다. 말쑥한 정장에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가 이 동네에 살았다면 그런 차림이 아니었겠지. 아니지. 퇴근하는 길 혹은 귀가 직전에 거기에 들렀을 수도 있지. 그는 그때 뭘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뭐가 어쨌든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와의 재회를 포기한 후에도 해질 무렵에 그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소위 멍때리는 시간이 이전의 두세 배로 많아졌다.      


요즘 무슨 일 있어?”     


 그 무렵 여자 친구가 한 말이다.      


?”

그냥 사람이 멍해진 거 같아서.”

아무 일도 없어.”     


 사실상 솔직한 대답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

없다니까

늘 저런 식이라니까..”     


 마지막 말은 그녀의 혼잣말이지만 볼륨이 너무 컸다. 수습을 하던 되받아치던 내 차례였으나 난 의욕이 없었다. 그래서 침묵했지만 그건 되받아치는 것과 같은 효과라는 걸 그녀의 다음 혼잣말을 듣고 알았다.      


정말 지겹다 진짜.”

뭐가 그렇게 지겨운데?”

사람 안중에도 없는 그 태도.”     


 또다시 반박할 의욕이 없어 침묵했지만 이번 효과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은 못참겠어.”

헤어지자는 거야?”

.”     


 그렇게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오래 만났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설레던 시절도, 감정이 화산처럼 불을 뿜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식었다. 계속 관계를 이어갈 이유도 없고 굳이 헤어질 이유도 없는 상태로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그녀에게 만난 지 두 달쯤 된 남자가 있었고 그보다 한참 전부터 나랑 헤어지려고 했었다 한다. 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기 위한 교묘한 방식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혼자가 된 날 난 다시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그 무렵부터 건강이 악화됐다. 공교롭다는 생각을 하며 병원에 찾아가, 위암 2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위해 억지로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뒀다. 찬바람에 낙엽이 휘날리던 어느 가을날, 세상과 작별하는 심정으로 거리를 걸었고 문제의 벤치에 다시 앉았다. 앉아서 지난 인생을 골똘히 돌이켜 봤다. 특이사항 없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의식적으로 감정을 과장되게 키웠다. 다행히 속에서 뭔가 북받치더니 급기야 눈물이 흘렀다. 흐르는 눈물을 보자 더 슬퍼졌고 입을 막은 채 꺼이꺼이 소리도 조금 냈다. 눈물이 마를 때쯤 지난 5월, 날파리가 눈에 들어가기 직전의 그 상쾌한 세상을 떠올렸다. 추억도 아닌 그때가 그리워졌다. 흐릿한 시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여전히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싱겁게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위의 일부를 절제했고 항암치료를 받았고 완치를 했다. 

건강을 회복했지만 그걸 계기로 제 2의 인생을 힘차게 시작한 건 아니었다. 한번 된통 당한 자의 조심스러움, 그리고 이전부터 날 따라다니던 지독한 외로움과 함께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와 무관한 건지 시간이 빨리 흘렀다.      

 도대체 몇 번의 사계절이 돌았는지 모를 어느 해 봄날, 우연히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그녀는 말수가 적고 미소는 잔잔했다. 봄날의 풍경같은 여자였다. 난 그동안의 지긋지긋한 외로움을 단번에 만회하듯 노골적이고도 집요하게 다가갔다. 마음을 지나치게 열었고 부적절하게 나를 던졌다. 하지만 그녀는 질려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받아줬다. 기적이었다. 

 믿을 수 없이 이어지는 기쁨의 나날 속에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그녀는 연인이라기보단 무슨 자원봉사자 같았다. 혹은 뭐든 용서하고 이해해주는 유치원 선생님 혹은 자상한 정신과 의사. 언제나 내 얘기를 들어줬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내가 원할 땐 언제나 몸과 마음과 시간을 허락했다. 이건 인과관계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날 그녀를 다그쳤다. 내 얘기만 듣지 말고 당신의 얘기를 해보라고, 당신의 욕망과 당신의 과거와 당신에게 있어 나란 존재에 대해서. 솔직하고 찌질하게 재잘재잘 떠들어 보라고. 

 그때도 그녀는 잔잔히 미소만 지었다. 순간 난 폭발했다. 그녀의 미소를 고함으로 돌려준 것이다. 거기다 감히 해서는 말까지 했다. 지겹다고. 

 이에 그녀는 미소를 지웠다. 처음 보는 그녀의 무표정은 무시무시했다. 사과할 새도 없이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떴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난 그날 밤 잠들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실제 그날 밤에 밀려온 후회는 상상보다 훨씬 거대했다. 나 자신이 이토록 혐오스러운 적은 없었다. 자정부터 새벽녘까진 스스로를 학대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새벽부터 아침까진 그녀에게 빌고 애원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로부터 한동안, 그녀로부터 연락이 없었고 나도 감히 연락하지 못했다. 스스로 학대하는 방법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었고 그녀에게 용서를 빌 방법은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별일 아니었지만 사실 별일 아닌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실연보다 무거웠다. 심지어 나의 암 투병기보다 무거웠다. 밥을 먹지 못했고 잠을 자지 못했다. 따라서 내 몸은 암 환자처럼 말라갔다. 용서를 빌 적절한 방법 따윈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그녀의 첫마디였다. 심장이 대추알처럼 쪼그라든 나는 그 말마저도 위협적으로 들렸다. 만나서 얘기하자는 그녀의 말에 전화를 끊고 유례없이 정성들여 목욕을 했다. 

 목욕을 마친 나는 상쾌한 몸과 극도로 불안한 마음을 동시에 지니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5월말 해질녘이었다. 낮엔 한여름처럼 덥더니만 이제 다시 봄날의 따사로움으로 돌아왔다. 

넘어가는 해가 아쉬운 듯 날파리들이 웅웅거렸다. 벤치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약속 시간에 맞춰 나타났고 난 가슴이 울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와 내 옆에 앉았고, 날 가만히 바라봤다. 내 심장은 대추알을 넘어 이제 콩알이 되어가고 있었다.      


왜 바로 연락 안했어?”     


 내가 용서를 빌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한 말이었다.      


혹시.. 나랑 헤어지려고 했어?”     


 난 두통이 올 정도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럼 됐어다행이다..”     


하면서 그녀는 방긋 웃었다. 다시 만나는 봄날의 풍경같은 미소였다. 결국 난 한 마디도 하지 못했고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그 말들은 모두 액체가 되어 눈에서 줄줄 쏟아졌다. 그녀에게 감격해서 울었고 이깟 일로 가슴 졸인 스스로가 한심해서 울었고 버림받았으면 과연 어땠을까 상상하며 울었다. 그런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기만 하던 그녀는 내가 어지간히 울었다 싶을 때 오른손을 뻗어 내 왼쪽 어깨에 올렸다.       

 순간 내 오열의 감정은 그 어떤 무언가로 빠르게 변해갔다.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을 향해 다가왔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멈췄다. 그리고 동그랗게 오므려진 그녀의 입술에서 한줄기 의식적인 바람이 흘러나왔다.      


........................................................”     


 그 바람의 종착지가 내 눈이라는 걸 느끼며 기시감이 완성됐다. 난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바람을 온전히 받아들였고 주변 사람들은 우는 남자와 달래는 여자가 신선한 듯 아까부터 우릴 구경하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간 후에도 난 그녀를 계속 멍하니 응시했다. 그녀 역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 숨막히는 정적을 참을 수 없어 내가 입을 열었다.      


젖은 눈 말려주려고...?”     


 그녀는 동문서답을 했다.      


오랜만이에요.”     


 그리고는 날 보며 그녀는 방긋 웃었고 난 얼어붙었다. 

그녀는 평소 내게 존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한 것이 동문서답이 아니라 우문현답이란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 받아들이지 못할 일 따윈 없다는 생각도 했다. 

이 여자를 놓치면 절대로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침묵은 계속 흘렀다. 

날파리들도 계속 웅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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