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
캐나다에서 1년 정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한 학부모님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저학년 학부모들은 등하굣길마다 선생님과 직접 인사하며 아이를 픽업해야 해서, 같은 시간대에 마주치는 부모님들과 스몰톡을 나누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몇몇 학부모님들과 친해졌고요.
저는 아이와 조금 더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학교에서 부모가 참여하는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캐나다 학교는 학부모 중심의 행사들이 정말 많고, 마음만 먹으면 봉사활동만으로도 하루가 꽉 찰 정도입니다.
캐나다에도 우리나라처럼 스승의 날이 있고, 행사가 있습니다. 이 행사 역시 학부모님들이 중심이 되어 선생님들께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는데요. 학부모회에서 음식 준비를 맡고, 비용 절감을 위해 몇몇 부모님들이 한 집에 모여 직접 음식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지원했죠.
그런데 학부모회 회장이 지나가시면서 슬쩍 한마디를 던지더라고요.
"너는 곧 한국에 가니까 이번 음식 준비는 참여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번에는 다 같이 모여서 Teddy가 Madison 집에서 요리를 가르쳐줄 계획이라, 인원이 너무 많으면 부담스럽기도 하고 계속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게 맞을 것 같아."
회의 후 공식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행사 준비 명단을 확인해 보니… 저만 쏙 빠지고, 다른 네 명이 행사 준비를 맡기로 되어 있는 게 아닌가요?!
처음에는 ‘뭐,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봉사활동인데 그냥 넘어가자’ 싶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은근히 기분이 나빠지는 거예요. 이 봉사는 힘들긴 해도 선생님들께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기회인데, 왜 유독 저만 빠졌을까요?
게다가 사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 저를 제외한 것도 찜찜했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봉사활동은 아무 문제 없이 참여했는데, 유독 스승의 날 행사에서만 나를 배제한 이유는 뭘까요?
고민 끝에 학부모회 회장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스승의 날 행사 준비에서 나를 제외한다는 이야기를 미리 명확히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예전에 비슷한 얘기 했던 기억은 있지만, 명확히 결론 내지 않았고, 난 다른 행사 때 그랬던 것처럼 그냥 봉사하려던 건데 뭔가 따돌림을 받거나 내 좋은 의도가 무시당한 느낌이다. 네가 일부러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거 잘 안다. 이런 이야기하는 이유는 너도 잘 아는 것처럼 내가 너를 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불필요한 오해를 하고 싶지 않아서다”
잠시 후 답장이 왔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미안해. 내가 깜빡하고 미리 얘기하지 못했어. 학부모들끼리 ‘너는 한국에 돌아가니까 이번 스승의 날 봉사는 참석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미리 알려주질 못했어. 정말 미안해!"
결국 나는 "괜찮다~", 저쪽은 "미안하다~" 하며 훈훈하게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이 여전히 찝찝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리치먼드는 중국인이 90%를 차지하는 지역인데, 희한하게도 학교 학부모회는 대부분 백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행사에 참여한 네 명의 학부모도 모두 백인이었습니다.
이게 단순한 실수였을까요? 아니면 제 인종이 이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걸까요?
캐나다에 살면서 미묘한 인종차별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다고들 합니다. 물론 미국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이런 차별은 대놓고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딱히 "이거다!" 하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직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인종차별은 당해보지 않으면 그 기분을 모릅니다. 사실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제 성격상 굳이 학부모회장에게 짚고 넘어가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미묘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어요.
인종차별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문제이거든요. 이런 경우 꼭 사과받고 넘어가야 해요. 물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는 아니겠지만 그래야 사과하기 귀찮아서라도 다시 이런 행동을 반복하지 않겠죠.
"인종차별, 모르면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사과는 꼭 받아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