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에는 온기와 열기가 있다
[도쿄 50일 살이 2일차]
오늘은 본격, 처음으로 민박 일 배우는 날.
아침 일찍부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장님께 청소, 세탁, 비품수납 등 전반적인 민박관리를 배웠다. 민박의 방은 테마방과 일반방이 있고 총 7개의 방이 있다. 밑에 사진은 처음 청소한 토토로방(테마방)인데 아기자기하게 꾸며놔서 나름 감성있고 귀여웠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ㅎ.
처음이라 아직 서툴러서 방 세 군데를 치우는데 벌써 1시가 훌쩍 넘었다. 일을 다 마무리하고 밖에 나가니 밝은 햇살과 따뜻한 날씨가 나를 반겼다. 어젯밤부터 온종일 좁고 어두운 방안에만 있다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도쿄의 낮이었다.
맑은 하늘의 깨끗하고 쾌적한 도쿄의 거리 풍경은 나의 온 감각을 다시 깨우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기분이 상쾌했다. 도쿄라는 새로운 공간에 와서 나를 감싸는 햇살의 온기를 느끼며 수많은 다국적의 외국인들 사이를 걸어다니는 순간은 벅찬 설렘을 느끼기 충분했다.
민박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가면 신주쿠 시내 번화가가 나온다. 걸어가는 길에 건물 보는 것도 재밌지만 알록달록 자판기나 나무덩굴로 감싸진 버스정류장 등 개성있는 풍경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신주쿠역 근처인 시내 번화가로 도착했을 때는 사람으로 빽빽이 가득찬 미친듯한 인구밀도를 보여주는 광경이 펼쳐진다.
신주쿠에는 온기와 열기가 있다. 즐비해있는 유리빌딩 사이로 반사되는 빛들의 온기와 수많은 인파에서 느껴지는 열기. 그 기운들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여러가지 일들로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무기력하고 우울했는데 새로운 에너지를 받고 생기를 장착한다. 모든 불행과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생각에 있다. 환경을 바꾸고 외부의 자극을 받음으로써 고여있던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이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찾는 여정이 될 수도 있지만 시간만 버리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시간이 될지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힘들다고 과거에 매달린 채 후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고 새로운 공기를 들이 마시고 한껏 설렘을 느껴야 한다. 나는 도쿄에 아무런 연고도, 아는 사람도 한 명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 부딪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이때까지 부딪치면서 살아왔듯이 여기서도 똑같이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신주쿠 역 주변을 둘러보며 걷고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나이도 서른이 되었으니 앞으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어느새 이 큼지막한 신주쿠 번화가를 돌아다니고 나니 저녁시간이 거의 다돼서 민박으로 다시 돌아간다. 사장님이 카톡으로 한인타운에 있는 삼겹살 맛집에서 저녁을 사주신다고 해서 보자마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바로 가겠다고 답장하고 뛰어갔다.
삼겹살은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맛있었다. 도쿄에 정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왔는데 이렇게 친절한 사장님 만나서 챙김을 받으니 정말 감사했고 민박일도 내 민박인 것처럼 열심히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장님이랑 술먹으며 얘기를 좀 나눠보니 사장님도 도쿄에 온지 얼마 안돼서 많이 외로우셨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 늦은 나이에 도쿄에서 혼자 민박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본인도 많이 힘드실 텐데 혼자 와서 외롭지 않냐며 많이 챙겨주려고 하셔서 삼겹살 먹으면서 눈물 찔끔 흘렸다..ㅠ 이게 바로 한국인의 정, 한국인의 온기...!
사장님은 사실 한국의 한 여행플랫폼 회사에 소속돼있는 상태라서 내가 일하는 동안에 한국에서 일도 보고 병원치료도 받고 올 예정이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만 사장님께 일을 배우고 나머지 한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오로지 나 혼자 민박을 관리해야 한다. 나름 엄중한 임무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서 빈 자리를 채워야겠다고 다짐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おわ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