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에서 기대로
[도쿄 50일 살이 1일차]
도쿄로 가는 첫날, 출국 당일임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 갑자기 결정을 하고 가게 된 거라 그런 걸까, 당장 두 달 가까이 외국에서 산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사는 청주에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국제공항이 있어서 해외로 떠나기 되게 편한 조건이다. 나는 극P라서 장기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당일에 짐을 쌌다.. 하물며 청주공항은 버스터미널처럼 작은 공항이기 때문에 사실 인천공항처럼 긴장감이 별로 들지도 않고 수속 1시간 전에만 도착하면 탈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안심하고 너무 늑장을 부렸는지 진짜 탑승수속 딱 1시간 전에 도착해서 못 탈 뻔했다.. 승무원이 왜 마감할 때 오냐는 거의 혼내는 듯한 따가운 눈초리로 보는데 되게 눈치 보였다. 집 가까운 학생이 지각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ㅎ
나는 이번에 '에어로케이'라는 항공사를 이용했는데 착륙하기 직전에 인생의 회전목마를 비롯한 지브리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 비행기 조명마저 꺼지니 더욱 몽환적이어서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부터 내 감성을 자극했다. 이 항공사, 가격도 저렴한 데다가 이런 사소한 이벤트마저 참 맘에 든다. (항공사 광고 아님)
그렇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도쿄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일본직원들과 일본어로 쓰인 각종 표지판과 안내판들을 보며 내가 일본에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내가 일하며 머물게 될 곳은 '신주쿠'라는 세계구급 번화가인데, 사실 기대가 되면서도 하루에 유동인구가 200만 명이나 되는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공항에서 나와 스카이라이너라는 특급기차를 타고 밤 10시 다돼서 신주쿠에 도착했는데 수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역시나 사람이 정말 많고 번잡했다. 관광지라 그런지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았고 특히 내가 일하는 곳은 한인타운과 가까워서 한글로 된 간판도 많이 보였다.
신주쿠에는 몇몇 유명한 구역이 있는데 그중에 가부키초라는 환락가와 신오쿠보라는 한인타운이 유명하다. 가부키초는 치안이 좋진 않지만 웃기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거기서 겪었던 재미난 일화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신오쿠보역 근처에 있는 한인타운인데 역에서 내린 뒤 28인치짜리 캐리어를 이끌고 길거리에 즐비해있는 한국 간판을 구경하며 숙소로 향해 걸었다. 여기가 홍대인지 신주쿠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정말 작은 한국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민박에 도착했을 때 사장님이 1층 현관으로 내려와 날 마중해 주셨고 배고프지 않냐며 짜파게티+불닭볶음면과 삿포로 맥주를 제공해 주셨다. 타지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극진한 환대를 받다니 나 너무 럭키비키잖아! 사실 sns로 연락만 하다가 사장님을 실제로 뵌 건 처음이었는데 텍스트로 얘기할 때보다 너무 친절하셨고 동네형처럼 편하게 대해주셔서 긴장도 많이 풀렸고 일하는 동안 묵을 방도 너무 컨디션이 좋았다. 앞으로의 일본 생활이 걱정에서 기대로 바뀌어 가는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많은 걸 얻고 돌아가길 기대하며 잠에 든다. おわ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