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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독 Oct 16. 2023

신촌은 12월이 가장 위험합니다

어수선화 인간

   사람들은 나와 외로움의 거리를 모른다. 반의반 세기라는 짧지만은 않은 시간에도 흘러가지 못하고 적연히 고여버린 의문이 있다. 타고난 외로움. 정말 내 외로움은 타고난 것일까? 우연찮은 다짐으로 떨어진 외지에서 3분의 1째 인생을 땜질해가는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냥 매일같이 혼자다. 너무 그 자체라서 단수형 수식어마저 붙이면 중복되고, 연락처 목록을 내리다 끝에 다다를 때쯤 느끼는 절망감마저 익숙하여 불쌍하기까지 하다. 어떠한 날에는 스치듯 방문한 블로그의 글이 방황한 시선을 멈추었다. 무지하게 비 내리던 여름날로부터 흐른 끄적임. 제목까지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책의 어느 구절이라고 하였다.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한 사람이 마실 물이 없어서 죽어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12월이 임박할수록 나의 심박수도 우쭐거린다. 사랑과 미움은 닮았다. 둘 다 유사한 결핍에서 묻어나는 거라 한 끗 차이라고 한다. 어릴 때만 해도 무채색 겨울은 손꼽아 기다리던 나의 계절이었다. 생일과 크리스마스, 차가운 밤공기와 눈부시게 내려앉은 고요. 하지만 지금은 한 장의 끝과 시작을 나누는 의미투성이인 이 계절이 무엇보다 두렵다. 올해는 또 어떻게 버티지. 옜다. 회피 뉴이어!

   고시원에 살 때였다. 내 생일은 통상 기말고사 기간이었고, 찾아온 크리스마스이브는 시허연 이산화탄소와 화려한 조명들로 가득했다. 신촌 길거리에는 연말 분위기에 알맞게 사람들 사이로 캐럴이 울려 퍼졌는데, 여전히 이 장면을 떠올릴 때면 약간의 공황이 스며들어 지그시 눈을 감는다. 광장 가운데 그득한 한숨과 잔상처럼 흘러가는 사람들. 나만 혼자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머리통만 한 창문조차 없는 2평짜리 고시원에 박혀있기에는 괜한 불안에 폐소 공포까지 섞여들었고, 반대로 나가도 할 게 없는 아이러니. 그때 이십 대 남자라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의무적인 21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문득 의경이 꿀이라는 군필자 말이 생각났고, 곧장 의경 사이트에 접속한 나는 오늘 처음으로 달콤한 반김을 받았다.

   ‘헐. 의경 홍보모델이? 이건 가야지.’

   유독 장이 넘어가는 이맘때면 몸이 시름시름 앓는다. 차라리 아프고 말겠다는 건지. 어수선한 액땜의 발단으로 귀납된 스무 살 마지막 날이었다. 엄마에게서 달갑지 않은 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민아. 영장 나왔다.”

   제길. 입대 영장이 나오면 의경은 지원조차 할 수 없는데. 다행히 내가 지원하던 날은 그로부터 일주일 전이었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에 면접까지 붙어 스물한 살 7월, 의경이 되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나를 찾는 주변 친구도 없었고, 동기들을 부러워하느라 외로움은 배로 커졌다. 여자친구가 없으니 훈련소에서도 편지를 몇 개 못 받았고, 가족이 멀리 있으니 경찰학교 면회도, 특히 경찰서는 서울 한복판에 일주일 내내 면회가 가능했지만, 나를 보러 올 사람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외출 나가면 뭐 할까.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고, 나도 없는 거 같은데.     


   결심했다. “전역하면 서울에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지!”

   웹서핑으로 대외활동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팔로워가 많으면 잘 뽑힌다는 말에 맞선임 승빈 형을 따라 SNS 사진 계정을 만들었다. 그날부터 팔로워를 늘리기 위한 고군분투에 돌입했다. 외출을 나가면 사진부터 찍고, 포토샵하고 해시태그 달고. 다만 검색해 보니 팔로워를 늘리려면 사람들 사진에 ‘좋아요’부터 눌러야 한다는데, 안 좋은 걸 좋다고 거짓말하기에는 좀 그랬다. 대신 지식인의 배움을 따랐다. ‘#맞팔’ 해시태그를 검색해서 팔로우 걸고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면 맞팔하실래요?” 민망하지만 메시지 전송. 휴.

   그렇게 전역 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동아리, 서포터즈, 축제 봉사, 기자단, 영상팀 등등 열 가지가 넘는 대외활동을 하면서 수두룩한 존재들과 부대껴왔다. 스크롤 몇 번이면 바닥을 내려찍는 연락처에도 천 명은 가뿐히 넘는 인원이 자리했다. 낯을 가리는 나는 먼저 다가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상대가 말을 걸면 최소 열 배로 갚아주는 사람이라 쉽게 가까워졌고, 날카로운 무쌍꺼풀 눈매에 반전되는 말본새와 헤픈 웃음 덕에 첫인상도 다음과 같이 갈렸다.

   “무표정일 때는 차가운 줄 알았는데, 의외더라.”

   “그래? 처음부터 실실 웃고 있길래, 원래 그런 앤 줄.”

   그로 인한 이슈도 간간이 있었다. 친하게 지내면 엮이고 엮이는 그런 사이? 사람들은 어떤 관계가 남녀라면 왜 무조건 엮는 걸까? 대외활동에는 자연스레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고, 나는 그들을 이성으로서 대한 적이 없었다. 남녀노소, 심지어 강아지까지 똑같이 대했는데, 왜 그러는 걸까. 단순히 연애를 안 한다는 이유로 비정상적인 취급을 받기도 했었다. 아니라고 부정해도 강한 부정이라면서 어느새 진실이 되어버리는. 결국에 겹겹이 쌓여가는 알 수 없는 시선들에 질려 얼떨결에 한 아이를 좋아하는 척하게 된 적도 있었다.

   “너 걔랑 무슨 사이냐?”

   “아무 사이 아닌데.”

   “에이- 맞으면서.”

   몇 달간 반복된 후였다.

   “너 걔 좋아하지?”

   “어? 아니…… 어어- 그래…”

   당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한 명과 엮이면 더는 없을 거라는 착각이었다. 변함없이 엮을 사람은 엮고, 떠들 사람은 떠들고. 그래. 이것도 내가 연애하면 다 해결되는 일일 텐데. 하지만 그들을 신경 쓰다 보면 그마저 쉽지 않았다. 애초에 연애라는 게 우선순위에 있었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회피를 택했다. 언제부턴가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는 이성과 단둘이서 만날만한 자리는 극구 지양하였다.     


   스무 살 이전에는 정신적 외로움, 이후에는 물리적 외로움까지. 쉼 없어 보이는 각종 활동이, 한없이 감싸내는 주위 잔상들이 외로움의 본질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그 덕에 찾아온 사건들이 넘나들수록 그림자와의 대비와 괴리는 더욱 깊어갔고, 어디에도 속하는 것 같은 교집합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애매함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와중에 그런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은 급급히 불어났다.

   “너 인싸잖아. 그렇게 보이면 좋은 거 아니야?” 

   그들은 당연하게 나를 ‘그런 사람’으로 단정 지었고, 아니래도 믿지 않았다. 각자 프레이밍 된 의미로 판단하느라 한 사람이 가진 서사와 맥락에는 관심이 없었다. 도리어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까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상했다. 이러한 나날들을 모두 마친 후에야 넌지시 등장한 소원의 계절은 형형색색 모든 불이 일정표에 들이찰 정도로 가쁜 날의 연속이었지만, 낯선 실패의 되풀이였지만 은근한 안정으로 남았다. 아무것도 관찰되지 않는 어둠 가득한 자취방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무거운 공기는 감히 나를 가라앉히지 못했으며, 지난 우연에 헝클어진 빈칸들 사이로 그만한 빛깔들을 채워갔다. 뭘까? 거의 삶 전체라도 해도 될 만큼 오랜 시간 지속되던 혼자 남겨진 듯한 외로움이, 수많은 활동에도 충족될 의지가 보이지 않던 공허함이 어떻게 한순간에 없던 일마냥 종적을 감춘 걸까. 날이 갈수록 행복의 작용만큼이나 두려움도 커졌다. 돌이켜보면 소원은 꾸준한 물음표를 던졌고, 맑은 미소로 보답했고, 한결같이 곁에서 시간을 보내주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엇갈린 시곗바늘 따라 우리 얘기도 틈을 넓혔다. 남겨진 나와 함께 풀리지 않는 의문도 남겼다. 지난 소원도 홀로 감싸온 시간에 대적하고픈 투정 어린 이상에 불과했을까. 그제야 찰나 묻어났던 소원의 이유를 조금씩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 한 단락이 매듭지어졌대도 다음 이야기는 흘러간다. 우연히 머물다 간 쌍무지개처럼. 수선의 꽃말처럼. 습관적 의미부여자에게 스쳐 간 하나의 우연으로 남았다. 이어진 선택은 그 우연을 필수 불가결한 필연으로 뒤바꾸었다. 현시점 소원에 무사히 도착한 나라서 가능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잠깐이었대도 마주할 수 있었기에 충만했고 벅찼으며, 어떤 순간에 내가 완전한지 깨달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충족된 찰나를 기억하고 믿으며, 영원해질 날을 고대한다. 이것마저 충족되었던 한 날에서 비롯된 유구한 사랑의 메커니즘일지도. 그 옆에 넘치는 감정을 두고 온 나라서 자꾸만 회귀하지만, 그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런 나는 되뇐다.

   “틀림없이 운이 좋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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