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다시 마음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 2
우리의 목표는 마음의 문제와 고통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해결책을 찾으려면 먼저 고통이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지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구조에 대한 이해’와 ‘기능에 대한 이해’가 모두 필요하다.
예를 들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의사에게 '몸이 아파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위가 아파요, 장이 꼬인 것 같아요, 심장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아요' 등 구체적인 기관과 증상을 특정해 이야기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몸이 아프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디가 아프냐'이다. 다시 말해, '구조와 구조가 일으킨 증상'을 모두 알아야 문제에 올바로 대처할 수 있다. 똑같이 찌르는 듯한 통증도 위(胃)가 문제인지 심장이 문제인지에 따라 해법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유독 마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뇌'라거나 '의식'이라거나, 한 가지 구조 안으로 모든 기능을 욱여 넣는 방향으로 연구를 이어 왔다. 나는 마음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하지만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문제도 원인을 해결하고 싶다면 먼저 '구조'부터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소화가 안된다'는 사실 뿐 아니라, 소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위'라는 사실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뇌과학은 애초에 학문의 목적이 '마음이 발현되는 구조'를 찾는 데 있었고, 프로이트가 주창하여 발전하고 있는 정신분석학도 마음의 구조에 관심을 둔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육체와 정신'을 각각의 실체로 여겼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에 대응할 때도 각각이 전혀 다른 방향을 향했다.
유물론에 기반을 둔 신경생리학은 뇌에서 마음의 해법을 찾고자 하고, 그 결과 항정신성 약물을 개발해 마음의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반면, 마음이 드러내는 현상 자체에 관심을 갖는 정신분석학은 '심리 분석과 상담'이라는 전혀 다른 해법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마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찾아가는 '정신과'에 '약물과 상담'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해결책이 공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그 처방들이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한다면, 해결책이 이질적이냐 아니냐는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처방들이 아직 마음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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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는 2017년 기준, 세계적으로 거의 8억 명의 사람들이 정신 건강장애로 고통받고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열 명 중 한 명꼴에 해당한다. […] 미국에서는 이 비율이 더 높아서, 인구의 약 20퍼센트, 다시 말해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정신 질환 또는 물질사용장애 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 크리스토퍼 M. 팔머(하버드대학 정신의학과 교수)
심리치료에 접근하기는 점점 더 쉬워지고,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의 처방 건수는 점점 더 증가하고 한 알당 가격은 점점 더 낮아지는데도, 여전히 우울증은 203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문제를 안길 단 하나의 질환으로 꼽힌다. 선진국들에 국내총생산의 3퍼센트에 달하는 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하는 병은 암이나 심장병도, 류머티즘성관절염이나 결핵도, 그 어떤 신체질환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정신 건강상의 질환들, 그 중에서도 주로 우울증이다. / 에드워드 불모어(케임브리지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뇌과학과 정신분석학은 탄생한 지 백 년가량 된 비교적 신생학문이다. 이 새로운 학문의 탄생은 과학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겼던 마음의 문제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임으로써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동네마다 정신과가 들어설 만큼 성공 가도를 이어왔다.
그런데 초기의 실험실에서, 혹은 상담실에서 이루어졌던 혁혁한 성과와 달리, 그 처방이 현실 속으로 들어 온 지 몇십 년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는 오히려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버드대학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로 20년간 재직해 온 크리스토퍼 M. 팔머(Christopher M. Palmer)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아래와 같이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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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이자 신경과학 연구자로서 25년 이상 일하면서 나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유식하고 능력 있는 전문가처럼 보일 만한 기나긴 답변을 늘어놓곤 했다.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유전, 스트레스 따위에 관해 이야기하고, 환자에게 적용할 치료 방법을 설명하며, 이를 통해 환자에게 나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몇 년이 지나자 스스로 사기꾼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환자들은 보통 치료를 받고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때로는 몇 달, 어떨 때는 일이 년까지 효과를 보이다가도 대부분은 증상이 재발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나도 사람들에게 단순한 진실을 말해주게 되었다.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 위험 요인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 모두가 어떻게 어우러져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그 밖에도 다양한 치료 방법이 있으므로 하나씩 시도하다 보면 잘 맞는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환자들을 안심시키며 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애썼다. 그러나 슬프게도 내 환자들 중 상당수는 결국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는 현대인이 흔히 겪는 정신질환이 기존 약물 및 심리요법에 치료 저항성을 보이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제 새로운 각도에서 정신질환에 접근해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정신과 에너지 대사와의 관계'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찾아 정신질환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담은 저서의 첫 장을 열자마자 나타나는 아래 문구는, 그 성과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정신의학의 현주소에 더 오래 눈길이 머물게 한다.
어머니께
정신질환의 유린으로부터 어머니를 구하려고 했던 헛된 노력들이 제 안에 오늘날까지 꺼지지 않는 불을 지펴주었습니다. 제 때 밝혀내 어머니를 돕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편히 쉬세요.
정신의학계의 기대와 달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정신병동의 풍경은 마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어정쩡한 절충안을 택하고 있는 우리 문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는 것, 우리가 자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조차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일상을 떠받치는 믿음의 체계를 흔들어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안이 없다면, 이런 지적 자체가 매우 무책임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무지의 현주소'를 지적하며 글을 시작한 것은, 앞으로 이어질 우리의 탐구가 바로 이 지점, '마음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 밝혀진 뇌과학이나 심리학적 발견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어떤 면에서 옳다. 다만, 나는 그 지식들이 '구조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자리잡지 못해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가 아픈 환자에게 심장약을 처방하거나 심장에 문제가 생긴 환자에게 위장약을 처방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부작용까지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위장과 심장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힘으로써 우리 손에 놓인 해결책들이 더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길을 열고 싶다.
이 글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신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고 이를 통해 우울증, 번아웃, 양극성 정동 장애, 조현병 등 현대인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정신적 문제들의 해결을 돕는 데 있다. 그래서 차례로 이러한 문제들을 짚어보는 순서로 글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도대체 마음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 짧은 요약
기능과 증상 측면에서 접근해서는 마음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음의 구조'부터 밝혀야 한다.
※ 인용자료
크리스토퍼 M. 팔머, 『브레인 에너지』, 심심 / 에드워드 불모어, 『염증에 걸린 마음』, 심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