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다시 마음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 3
'마음'이 뇌가 만드는 현상이라 믿는 우리 시대에는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질문 자체가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전히 그 질문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개발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이유
서양 철학의 전통에서 영혼은 주로 '사고 능력'의 발원지로 여겨졌다. 그 영향 때문인지 사람들은 인간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기계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쉽게 '기계가 마음을 갖게 되었다'거나 '마음에 관한 비밀이 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대철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고 역량'이 아니라 '인식 역량'이다. 기계와 인간의 차이를 가르는 것도 '사고 능력'이 아니라 '의식'이다.
마음은 지각, 감정, 생각, 의지 등 여러 기능을 포괄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각각의 기능을 떠나 마음의 정체를 밝히려면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마음이 일인칭으로 경험되는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꽃을 바라볼 때, 신경과학자들은 뇌를 관찰하여 어떤 세포가 활성화되는지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꽃을 볼 때 마음 안에 일어나는 느낌, 그 각자의 주관적인 느낌은 어떤 방법으로도 관찰할 수 없다.
마음에 관한 연구가 어려운 것은 이렇듯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 관찰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과학은 정신을 ‘뇌’와 ‘의식’의 문제로 나누어 다룬다. 그리고 최근 감각 과정, 사고 과정 등 정신의 작동에 필요한 뇌 기능에 관해서는 많은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왜 인간이 마음이라는 내적 풍경을 갖는지, 그것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합의된 바가 없다.
예를 들어, 뇌과학은 반사된 빛이 어떻게 망막에 맺히고, 그 신호가 어떻게 뇌로 전달되며, 전달된 신호가 어떤 세포를 자극하는지 알고 있다. 카메라의 기능을 이해하듯이 눈과 그에 관련된 뇌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시각을 온전히 이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각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본 것을 어떻게 ‘의식’할 수 있는지 밝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런 문제다.
카메라도 외부 풍경을 조리개 안으로 들여와 상(像)을 만든다. 그러나 카메라는 자신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에 반해 인간은 외부의 상을 내부로 가져올 뿐 아니라, ‘아! 아름답다!’는 느낌도 갖는다. 시각과 관련한 물리 과정이 신체 감각의 영역이라면 이 주관적 느낌은 의식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류는 어떻게 물질이 마음의 고유한 특징, 다시 말해 ‘내면의 의식’을 만드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고 최근에는 감정과 표정까지 흉내 내는 로봇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의식을 지닌 로봇은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의식’의 문제는 최근 분야를 막론하고 전 세계 지성의 최고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철학에서 다루던 ‘의식’을 과학과 첨단 기술 분야에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 컴퓨터와 로봇을 만들기 위해 의식을 이해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봇 개발 초기, 언어와 감각을 이해하는 데 집중되었던 노력은 이제 의식을 해명하는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감각과 달리 의식의 비밀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기계를 움직이는 것은 기계적인 과정으로 가능했지만, 기계가 의식을 갖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인류는 아직 모른다.
인류가 마음의 비밀을 풀지 못한 것도 바로 이 의식, 다시 말해 주관적으로만 경험되는 내면세계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내적 경험이 펼쳐지는 무대가 뇌인지 아닌지조차 명확히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의식 연구로 유명한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John Chalmers)는 이 문제를 아예 ‘난제(Hard Problem)’라 부른다. 그는 ‘어떤 생물학적 발견이나 수학적 진보도 두 세계의 간극을 넘지는 못할 것’이라 주장하는데, 불행히도 그를 설득한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마음이 신비로운 것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그 속삭임은 내 것이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때로 나를 설득하거나 저지하기도 한다. 하나인 듯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엔 둘이 되어 대화도 나눈다. 그래서 한때는 모든 결정을 내리는 작은 인간인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뇌 안에 살고 있다고 믿기도 했다. 물론 뇌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지금, 작은 인간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신비는 여전하다. 마음 안에서 말을 걸어오는 나, 의식에 떠오르는 다양한 느낌들, 그 내면 풍경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 짧은 요약
인공지능의 등장이 '마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뇌'가 아니라 '의식'이다.
※ 참고자료
크리스토프 코흐, 『의식-현대과학의 최전선에서 탐구한 의식의 기원과 본질』, 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