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적 마음 이해 방식의 한계

2장. 다시 마음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 4

by 어진 마음의 시선


앞에서 뇌와 의식이 별개의 연구 주제임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뇌와 의식이 별개로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런 생각이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낯설지만, 이것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2,500년 전에 플라톤이 주장한 이후, 최근 2~300년을 제외한 서양사 전 기간 동안 이런 인식이 주된 존재론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근대 이후 종교적 세계관이 약화되면서 '죽은 후에도 지속되는 불멸의 영혼' 개념이 점차 힘을 잃었고, 그래서 현재 서구의 자연과학자들은 '영혼'이 아니라 불멸 개념을 제거한 '의식'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한다. 그러니까 서구 학자들이 사용하는 '의식'은 살아있는 동안 우리에게 나타나는 내면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뇌는 의과학이 다루는 신체 기관이고, 의식은 철학이 다루는 정신 기관, 그리고 영혼은 종교의 관심인, 의식에 불멸성까지 더한 영적 기관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양철학의 전통에서는 '육체와 영혼'을 완전히 속성이 다른 별개의 실체라 여겼다. 다시 거칠게 표현하면, 물질과 정신을 서로 섞일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두 재료로 보았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서양철학에서는 내내 섞이지 않는 두 재료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밝혀야 하는 '심신(心身)문제'가 난제로 떠오르곤 했다.



즉, 그림처럼 정신과 물질, 육체와 영혼을 절대 만날 수 없는 각각의 원으로 가두다 보니, 둘이 만날 길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서양철학자들은 하나를 다른 하나의 하위 개념으로 둠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곤 했다. 즉, 존재하는 것은 오직 물질인데 거기서 의식이라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유물론적 시각, 혹은 존재하는 것은 오직 의식인데 그 중 일부가 우리에게 물질로 보일 뿐이라는 관념론적 시각 중 하나로 문제에 답하고자 했던 것이다.


서양철학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전통이 지금까지도 화해하지 못한 채 이어져 오는 것은 이렇듯이 그것이 태생적으로 절충되지 않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유물론과 관념론은 어느 한 쪽이 진실이면 다른 한 쪽은 진실이 아니게 되는 대립적 개념이다. 마음의 문제에 접근할 때 '뇌과학'과 '정신분석학'이라는 매우 다른 방식을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둘 중 어느 쪽도 아직 인간 실존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유물론의 손을 들어 주면, 물질계의 법칙은 잘 설명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물리법칙은 A라는 조건이 주어지면 반드시 B라는 결과가 나타나는 필연적 인과법칙을 근간으로 한다. 그래서 세계가 '물질 실체'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세계가 물리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작동되는 기계와 같다는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당연히 인간의 의지는 설 자리가 없다.


반면 관념론의 손을 들어주면 자유의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물체들의 질서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질서정연한 물리법칙도 의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념론은 유물론과 달리 물질이 무엇인지 규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최근 서구 철학자들 사이에서 '객체는 무엇인가, 의식은 무엇인가,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등의 주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아직 인간과 마음에 관한 온전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다. 일상 경험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마음의 의지'가 어디서 발현되는지도 우리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 마음의 의지야말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인 힘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겐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통증을 잠재우는 진통제가 아니라, 올바른 수술법과 치료법을 찾게해 줄 보다 완전한 '마음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짧은 요약

서구철학의 프레임으로는 마음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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