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이어질 이야기들 -2
앞 글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정신과 진단명들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을 중심으로 문제를 분류한 용어들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진단명이 늘어나 이것이 환자에게 혼란을 줄 뿐 아니라, 진단해야 하는 의사들에게도 부담이 된다.
그러나 바이러스라는 원인을 알면, 코감기, 목감기, 두통, 발열 등의 증상이 모두 '감기'라는 용어로 통합될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문제도 원인을 제대로 알면 몇 가지 분류체계로 간략하게 통일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연재를 통해 각 증상을 대표하는 몇 가지 진단명을 바탕으로 마음에 문제가 생기는 대표적인 원인 몇 가지를 살펴볼 계획이다.
이 연재의 차례를 구성하게 될 번아웃, 우울증, 양극성정동장애, 조현병, 경계성인격장애 등은 그러니까 진단명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기 보다, 각 원인을 대표하는 증상의 예시라 할 수 있다. 물론 자세한 이야기는 세부적인 문제를 포함하므로 한두 편의 글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략적인 구도를 그려보면 이 의미가 훨씬 와 닿을 것이다.
나는 최소 네 차원을 설정해야 마음의 문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도식으로 정리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즉, 인간은 물질 차원의 육체 뿐 아니라 에너지 차원, 의식 차원, 영혼 차원까지 뻗어 있어서 이를 이해해야 인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구도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매우 낯설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분한 이유는 앞으로 밝힐 것이므로, 오늘은 구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만 간단히 생각해 보자.
도표를 보면, '물질 감각 및 실행 기관인 육체'와 '상상 기관인 영혼'이 구분되어 있다. 우리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우리는 일상에서 두 기관을 동시에 활용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현실 차원과 상상 차원을 오가며 조화롭게 살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조화가 깨져서 뇌가 상상을 현실로 믿게 되면 어떻게 될까.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처음에는 상상의 세계에 오래 머무는 것으로 시작될 이 현상은(유명한 예술가 중에도 조현성 경향을 보인 사람이 많았다) 잘못 진행되면 현실과의 괴리로 발전한다. 우리는 이를 흔히 '조현병'이라 부르지만, 원인을 이렇게 설정하고 보면 조현병 뿐 아니라 리플리 증후군(자신이 만든 거짓 세계를 진실로 믿는 심리적 상태), 각종 환청과 환시가 모두 같은 원인에서 발생할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내가 설정한 다섯 가지의 증후군은 이렇듯, 위의 구도를 바탕으로 인간을 이해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의 대표 사례를 지칭한다. 그러니까 '조현병' 항목은 중증 조현증 환자 뿐 아니라 '멍하니 생각에 잠겨 할 일을 놓치기 일쑤인 아이들'의 문제까지를 포함한다. 즉, 특별히 문제를 겪지 않는 사람도 예방을 위해 알아 두어야 할 마음의 구조와 작용 원리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찾으면 해결법도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상상의 세계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 '뇌'라는 실행기관이 상상 기관이 발신하는 전파를 주로 수신하기 시작했다면, 반대로 해결책은 상상에 머무는 대신 현실에 오래 머무르며 뇌가 다시 현실에서 정보를 수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일 것이다. 흔히 대가로 불리는 예술가들이 일정 시간을 몸을 쓰는 데 쏟은 것도 이러한 원리를 몸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하루키는 마라톤을 하고, 헤세는 정원을 가꾸었으며, 괴테는 그림을 그렸다(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현실 관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원리를 알지 못해 현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상상의 세계에만 머물며 기괴한 세계를 창조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대단한 예술이라도 되는 양 찾아 다니며 기괴한 정신세계에 동화되어 간다. 그러니 현대인의 정신이 건강할 수가 없다. 몸을 쓰는 사람은 몸만 써서 몸이 병들고, 마음을 쓰는 사람은 마음만 써서 마음이 병드는 양극단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쓰는 법은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다.
잘못된 건강 상식이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잘못된 형이상학은 사람들의 마음을 해치고 문명을 병들게 한다. 그러니 무작정 달리기에 앞서, 어느 방향으로 달려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을지 살피며 가야 하지 않을까?
지구가 대기와 중력장을 포함하는 통합 시스템이라는 것을 산업혁명 전에 알았다면, 우리가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를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신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 마음이 뇌만이 아니라 각기 다른 네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과학이 밝혀냈을 때는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자. 그래야 남은 날을 모두가 덜 고통받으며 살 수 있다.
※ 짧은 요약
마음의 구조를 알면 마음이 병 드는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원인을 알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 연재의 목적은 정신적 문제를 구조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해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