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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힘겹게 하는 네 가지 요인

2장. 이어질 이야기들 - 3

by 어진 식 관점


마음의 문제가 개인에게 맡겨두기 어려울 만큼 증가하면서, 최근 이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노력도 뜨겁다. 특히 서양 정신의학은 마음의 문제를 '몸'이라는 한 가지 원인으로 환원해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그 핵심에는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연구가 자리하고 있다. 간략히 요약하면, 몸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 문제의 원인이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면 마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의 기본 방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개발된 항정신성 약품들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보이지만,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하버드대학 정신의학과에서 20년 이상 근무해 온 크리스토퍼 M. 팔머 교수에 의하면, 항정신성 약물이 마음을 치유하지 못하는 것은 타이레놀이 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라 한다.


박테리아 감염증 환자의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타이레놀이 아니라 항생제 처방이 필요하다. 타이레놀은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일 뿐이다.


"대증요법은 고통을 줄여주며 환자가 정상적으로 일하고 기능하게 해줄 수 있지만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결국 타이레놀 복용 여부와 관계없이 신체가 스스로 감염원과 싸워 이기거나 항생제 치료를 받지 않으면 감염이 계속 진행되어 환자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타이레놀은 환자가 맞이하는 결말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타이레놀도 필요하다. 당장 고통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지는데도 진통제를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미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타이레놀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라는 '고통'의 메시지를 망각하는 데 쓰인다면 오히려 타이레놀 복용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팔머 교수가 약물을 처방했던 많은 환자가 일시적으로 효과를 보이다가도 결국 재발하거나 오히려 악화되곤 했다.


그래서 팔머 교수는 타이레놀이 아니라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해 현재 ‘뇌'가 아니라 '뇌 에너지'에 주목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뇌 세포 안에서 에너지 대사를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우울증 뿐 아니라 모든 정신적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 이 이론을 바탕으로 치료책을 찾고 실험을 이어가기 위해 주변 학자들을 설득하는 데 공을 들인다.




정신의학계가 '뇌'를 넘어 '몸'으로 관심을 확대하며 진보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치료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 당장 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정신의학이 이제 겨우 '뇌'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기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뇌 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우리는 '뇌'의 문제-예를 들어 사고를 당해서 뇌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보다, 살면서 겪는 어려움과 스트레스로 뇌가 망가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또 아무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도, 여러 이유로 언제든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건강이 나빠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래서 위생, 음식 섭취 등 다양한 요인에 마음을 쓰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마음도 그래야 할 것이다. 병원을 찾아야 할 만큼 나빠지기 전에 마음의 문제에 어떤 요인이 영향을 주는지, 문제를 예방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 또, 그 요인을 명확하게 알아야 역으로 치료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요소가 네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마음을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이해



우리가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 즉 마음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우울감을 느끼는 반면, 어떤 사람은 우울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먼저 내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즉, 나 자신과 마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마음의 힘을 기르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는 현실이다. 현실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곧잘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사건이 어떻게 내 몸과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스트레스를 호르몬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 마주하는 원인 단계부터 이해하려면 세계와 내가 만나는 접점,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피할 것은 피하고, 접할 것은 접하면서 마음의 건강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마음을 위해 알아야 할 세 번째는 바로 우리 '몸'이다. 일반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구분해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순간에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우리가 우울해지는지 생각해 보면,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이유, 그것은 다시 표현하면 뇌가 말을 듣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므로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의 문제를 논하기는 어렵다.


마지막 네 번째는 '나를 바라보는 나'에 관한 이해이다. 우리는 대개 외부를 바라보며 살기 때문에 내부에 존재하는 우울의 원인에 잘 주목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네 번째 요인이 오히려 마음이 병 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고 여긴다. 생각해 보자. 내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는데 마음이 우울하거나 무기력할 수는 없다. 반대로 외부 조건에 문제가 없어도 내가 끊임없이 나를 하찮게 여겨 괴롭힌다면 하루도 우울하지 않은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존재 안에서 이 '평가하는 나'와 '평가 받는 나'가 어떤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이 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간략히만 살펴 보아도,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근본적인 이해 없이 물결치는 대로 흘러 다닌다면, 바위에 부딪치고 좌초 당하여 상처를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도, 본질적으로 보면, 이렇듯 우리가 우리 자신과 삶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2,500년 전에 석가모니가, 그리고 수많은 성현과 학자들이 이미 이에 대한 답을 모두 밝혀 놓았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 급급해 정작 중요한 공부에 시간을 쏟지 않을 뿐이다.


30년 전에, 나도 그렇게 물결치는 대로, 남들이 가는 대로 우왕좌왕하며 살았다. 그러다 난파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어쩔 수 없이 해법을 찾는 일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은 아주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서적이 알려주는 실천 요령이나 방법론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이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우리는 앞으로 몇 가지 정신질환의 증상과, 앞 글에서 이야기한 존재의 구조, 그리고 오늘 이야기한 연관 요인들을 필요에 따라 연결하면서, 하나하나 마음과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에 오를 것이다. 짧은 여행도, 쉬운 여행도 아니겠지만, 힘들여 오른다면 정상에서 보이는 삶의 풍경이 지금과 매우 다를 것이라는 점만은 약속할 수 있다.



※ 짧은 요약

타이레놀이 감기를 치료하지 못하는 것처럼, 뇌와 신경전달물질 만으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낡은 생각이다. 이 연재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 인용자료

크리스토퍼 M. 팔머, 『브레인 에너지』,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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