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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쉽게 우울해질까?

3장. 우울증과 에너지 - 1

by 어진 식 관점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한 증가 추세에 있는지는 '2030년이 되었을 때 선진국들이 GDP의 3퍼센트를 우울증 치료에 쓰게 될 것'*이라는 에드워드 불모어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의 말만 들어봐도 충분히 짐작이 된다. 또 굳이 통계를 인용하지 않아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분이 많을 것이다.


물론 우울증이 증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는 정신적 문제를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특정 그룹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이 증가한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떠나 사회‧경제‧문화적 요인이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근본적인 해결도 이런 거시적 문제들이 해결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만을 탓하며 해결을 기다리기엔 우리 개개인의 사정이 너무 딱하다. 코로나가 확산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전염병을 퇴치하려는 집단적 노력만큼이나, 스스로 면역력을 높여 코로나 확산에 저항하려는 개개인의 노력이 중요했다. 코로나만 탓하다가 병이 드는 것은 자신에게도, 집단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 내 건강을 지켜야 집단적 노력에도 힘을 보탤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첫 이야기는 우울증, 그 중에서도 우울증 극복을 위한 개인 차원의 해법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왜 나는 쉽게 우울해질까



지난 글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은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잘 이겨내는 데 반해, 어떤 사람은 쉽게 좌절하여 결국 우울증에 빠진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나 똑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일반적 믿음과 달리, 우리 각자가 지닌 심리적 힘의 크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널리 쓰이는 표현으로 바꾸면, '회복탄력성'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근육의 힘이 사람마다 다른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이야기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인간으로서 갖는 보편적 신체 구조 외에 저마다의 특성도 지니고 태어난다. 그래서 누구는 운동선수가 되고, 누구는 학자가 된다. 마음도 다르지 않다. 누구는 정보를 잘 흡수하고 감성에 예민한 물 같은 마음을 지니고 태어나고, 누구는 변화에 둔감한 대신 의지를 잘 지키는 바위 같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물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은 곧잘 예술가가 되고, 바위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은 운동선수가 되기에 유리하다.


마음을 추상적으로 다루었던 서구와 달리, 마음의 원리를 잘 알았던 우리 조상님들은 그래서 이를 '기질(氣質)'이라 불렀다. 즉, 마음을 이루는 재료인 기(氣)를 다루는 존재 구조가 저마다 달라서 이 질적 차이가 성향의 차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기(氣)가 무엇인지는 앞으로 더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일단은 현대물리학이 이야기하는 에너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에너지가 크면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에너지가 적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적다. 존재 구조가 수증기에 가까운 사람은 변화에 민감할 것이고 바위에 가까운 사람은 의지를 지키기에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을 이기고 싶다면, 먼저 이 '본질적 차이'부터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유난히 잘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모자라거나 약해서가 아니다. 단지 타고난 모습이 다를 뿐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략 분류한다면, 대개 물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우울증을 쉽게 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물은 쉽게 흔들리는 대신 세상 만물을 이어주고 자라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니 물로 태어난 사람이 바위가 되려 애쓰는 것은 소용 없는 일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물이 지닌 장점을 살리고 물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 절대적 기준에 맞추어 나를 재단하고 맞추려는 숱한 노력이 결국 우리를 불행으로 이끄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은 물로 살고, 바위는 바위로 살아야 한다. 게다가 조화로운 세계를 위해서는 물도 필요하고, 바위도 필요하다. 당연히 지금 내 모습대로 살면서도 세상에 기여하며 살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나는 이 단순한 사실만 깨달아도 우리가 겪는 우울함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리라고 생각한다. 이 단순한 진리는 인간에 대한 잘못된 규정을 바로잡아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교정해 준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올바른 방향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조금 애써 보다가 곧 좌절하고 실망해 더 큰 우울감에 빠지는 악순환을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차이를 아는 것이 훌륭한 출발점이 된다.


하지만 물론 개인차를 넘어 누구나 보편적으로 지니는 마음 구조도 존재한다. 또, 근육처럼 마음도 훈련하면 힘이 자란다. 그러니까 우리가 애써야 할 방향은 남과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다운 모습으로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활력과 의욕을 키우는 일이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마음의 힘'이라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구조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제법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 '나'가 무엇인지 규정하지 못하고 있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짧은 요약

우울증은, 남과 같아지려는 노력이 아니라 나다움을 지킬 힘을 기를 때 해결된다.


※ 인용자료

에드워드 불모어, 『염증에 걸린 마음』,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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