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이어질 이야기들 - 1
우리의 이야기는 먼저 우울증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첫 주제로 우울증을 택한 것은 그것이 마음의 문제가 유발되는 시발점이라서 우울증부터 극복해야 마음의 병이 깊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우울증부터 해결해야 이미 진행된 정신적 문제에도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울증은 감기에 비유된다. 일상에서 경험하듯이 감기와 우울감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리고 대부분은 저절로 해결된다. 신체는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면역력을 갖추고 있어서 감기 정도는 쉬어주기만 해도 낫는다. 어지간한 우울감도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된다.
그런데 이 '저절로'가 작동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감기는 폐렴으로 진행돼 목숨을 앗아가고, 우울증도 다양한 정신적 문제로 발전해 급기야 자살에 이르는 비극으로 마무리 된다. 그러니 이 '심각함으로의 이행'을 겪지 않으려면 먼저 '저절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바꾸어 말하면 왜 어떤 사람은 '저절로'가 되지 않는지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주목할 주제도 바로 이 '저절로'의 구조와 작동 체계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먼저 짚고 가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
정신 질환 진단명, 바르게 이해하기
마음의 문제를 겪는 사람이 늘면서 최근 그에 관한 진단명도 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우울증, 번아웃증후군, 자폐 증후군, 주의력결핍장애, 경계성인격장애, 양극성정동장애, 조현병 등 정신적 문제를 지칭하는 용어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리고 병명이 붙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마침내 그 병에 관해 전문가들이 잘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확실한 치료법도 갖고 있으리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진단명의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 용어들은 정신적 문제를 겪는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연구자들이 문제를 증상별로 분류하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비유컨대 콧물 환자, 기침 환자, 발열 환자처럼 '원인'이 아니라 '증상'을 나타낸다. 먼저 증상을 분류해야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분류를 바탕으로 원인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진단명들은 어떤 사람은 무기력하고, 어떤 사람은 기분을 조절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환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등의 증상을 겪고 있음을 표현하는 말일 뿐이다. 원인이나 진행 정도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해, 그 진단명을 확정적인 원인과 진행 정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오해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고 하면, 가벼운 증상일지라도 뉴스에서 접했던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의 중증 환자를 떠올려 거리를 두려 한다. 반대로 누가 우울하다고 하면, 당장 주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만큼 심각한 상태여도 그저 '누구나 우울하니까'라며 가벼이 넘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잘못된 인식이 환자 본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가볍고 일시적인 증상을 겪는 사람인데도 단지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는 이유로 갑자기 인생의 낙오자가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이것이 주변의 경계하는 시선과 맞물리면서 오히려 가볍던 병이 심각해지는 불운을 겪게 된다.
이렇듯 잘못된 인식 하나는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의 날개짓처럼, 겪지 않아도 될 수많은 문제와 혼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의학적 상식들이 오히려 이런 소란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으로도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론에 앞서, 먼저 앞으로 우리가 사용할 진단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왜 그 중 특정한 몇 가지 진단명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지부터 적어 보려 한다.
※ 짧은 요약
잘못된 정신의학 상식은 오히려 마음의 병을 악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