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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 손상으로 알게 된 마음의 존재 방식

4장. 정신의 구조 - 2.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by 어진 식 관점


의식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산은, 과연 '뇌'만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생기느냐, 아니면 '마음'이 따로 실재하느냐의 문제를 푸는 것이다.


철학에 관심이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의식'이 무엇이냐는 21세기 철학의 가장 뜨거운 화두다. 의식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 곧 마음의 세계에 진입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가 다양한 논변과 이론으로 저마다의 주장을 편다. 누구는 뇌에서 의식이 나온다고 하고, 누구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주장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경험이다.


모든 이론은 자연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면, 이론도 수정된다. 마음이 뇌냐 아니냐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인 인간의 경험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실 이 문제는 논증 거리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의식이 뇌를 떠나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증거를 이미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실물 뇌를 보여주며 좌뇌와 우뇌의 차이를 설명하는 테일러 박사의 모습


TED의 '많이 시청한 동영상 목록'에는 지금도 2008년 소개된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 Taylor) 박사의 동영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녀는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뇌 신경해부학자였는데, 어느 날, 뇌졸중으로 좌뇌의 기능을 모두 상실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의 증언이 의식 연구에 귀한 자료가 되는 것은, 그녀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의식 상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뇌졸중이 일어나던 날 아침, 그녀는 '뇌가 문제 없이 작동하는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곧 좌뇌의 기능이 하나하나 멈추었고, 결국 우뇌의 기능만 남은 의식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뇌 수술 후에는 아예 뇌 기능이 멈춘 상태의 의식을 경험한다.


평소에 우리는 뇌와 모든 정신 기관이 동시에 작동하는 상태의 의식을 경험하기 때문에 '정신 현상'이 어떤 기관으로 어떻게 분화되어 작용하는지 인식하기 어렵다. 그래서 의식 연구를 위해서는 그 마음 기관 중 한 요소가 기능을 멈춘 사례를 조사하는 것이 필요한데, 테일러 박사의 경험이 바로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그녀는 그 경험으로 고통받았지만, 덕분에 우리는 의식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귀한 실마리를 얻은 셈이다.


그럼 이제 그녀가 무엇을 경험했는지 살펴 보자. 먼저 좌뇌의 기능이 멈추고 우뇌의 기능만 남았을 때에 관한 증언이다.


***

"내 팔을 내려다 보며, 내가 더 이상 내 몸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었어요. 내 팔의 원자들과 분자들이 벽의 원자들과 분자들에 섞여 버렸거든요. 내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 뿐이었어요. 에너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어요. "뭐가 잘못된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 순간, 뇌 수다장이가, 내 왼쪽 뇌 수다장이가 완전히 침묵해 버렸어요. 리모컨을 가진 사람이 음 소거 단추를 눌러버린 것처럼, 완전한 침묵. 처음에는 조용한 상태 속에 있는 저를 깨닫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즉시 저를 둘러싼 에너지의 장려함에 사로잡혔어요. 더 이상 내 몸의 경계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거대하고 광대한 것 같이 느껴졌어요. 모든 에너지가 하나로 느껴졌고, 그렇게 아름다웠습니다."*


먼저 눈에 띄는 표현은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다'는 것과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에너지 뿐'이었다는 표현이다. 이는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가 더 근원적이라는 물리학의 발견을 지지해 준다. 또, 언어가 좌뇌의 작용이라는 것, 그리고 좌뇌가 기능하지 않아도 '내가 존재한다'는 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의 느낌은 어떠했는지 들어 보자.


***

"조금 뒤에 저는 병원에서 온 구급차를 타고 보스턴에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으로 건너가고 있었죠. 저는 태아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았어요. 그리고 마지막 공기를 불어 넣은 풍선처럼, 막 풍선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저의 에너지가 고양되는 것을 느꼈고, 저의 영혼이 내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


그날 오후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저는 제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제 영혼이 내어지는 것을 느꼈을 때, 저는 제 삶에 작별 인사를 했거든요. 제 정신은 이제 아주 정반대인 현실의 두 가지 면 사이에 매달려 있었어요. 감각 시스템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은 순전한 고통처럼 느껴졌어요. 빛은 번갯불처럼 뇌를 태웠고, 소리는 너무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서 배경음과 목소리를 구분해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도망치고 싶었어요. 공중에서 제 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거대하고 광대하게 느껴졌어요. 호리병에서 막 자유의 몸이 된 요정 지니처럼 제 영혼은 거대한 고래처럼 자유롭게 솟구쳐 올랐고, 고요한 행복감의 바다를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있었죠. ... 제가 이렇게 생각한 기억이 나요. 나 자신의 광대함을 다시 이 조그만 몸 안으로 구겨 넣을 방법이 없다고."


그녀는 구급차를 타고 가는 사이에 '영혼이 내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증언한다. 이는 의식이 육체와 별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 한 가지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표현은 '공중에서 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광대하게 느껴졌다'는 말과, '나 자신의 광대함을 다시 몸 안으로 구겨 넣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 증언은 우리 의식이 육체와 달리 광대하게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형태와 경계가 고정된 육체와 달리 우리의 의식은 형태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자유롭다.




아마도 뇌과학자들은 이런 경험 또한 뇌의 기능 이상으로 믿고 싶어 할 것이다. 실제로 어떤 신경과학자는 유체 이탈 경험이 신체 경계를 인지하는 뇌 영역의 정보 처리 오류로 발생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현상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해 찾아낸 고육지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의식이 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뇌가 기능을 멈추었을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듯이 암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죽음과 동시에 나의 존재가 사라질 것이라 믿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테일러 박사의 증언은 뇌 기능이 멈추었을 때 암전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짐을 보여준다. 이런 경험은 유체이탈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에도 흔히 등장한다. 또, 전신 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다가, 혹은 명상을 하거나 길을 가다가도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경험하는 일이다.


과학이 맹위를 떨치는 21세기에도 종교가 힘을 잃지 않는 것은 이렇듯이 '뇌'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정신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덕을 강조하는 제도권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되는 반면, 신비 현상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이비 종교의 위세는 오히려 드높아지고 있다. 그러니 그에 현혹되어 희생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면, 이런 현상을 무작정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과학이 정신적 경험의 다양성을 외면함으로써 현대인의 정신이 병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세 시대에 물질계를 부정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육체적으로 고통 받았듯이, 지금 우리는 정신계를 부정하는 바람에 정신적 혼란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의 부정'이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다. 우리에게 새롭고 합리적인 마음 모형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는 테일러 박사가 겪은 일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첫 걸음으로 오늘은 '뇌'와 '의식'이 별개로 존재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 짧은 요약

의식(마음)은 '뇌'와 별개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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