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정신의 구조 - 3 : 의식의 감각질 문제 해결하기
이전 글에 소개했던 테일러 박사의 사례는 '뇌'와 별개로 '의식'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는 '몸의 감각'과 '마음의 감각'을 매우 다르게 느낀다. 이것은 심장의 통증과 가슴 아픈 느낌이 전혀 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장의 통증은 심장에서 온다. 그러면 마음이 아프다는 느낌은 어디서 올까.
의식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몸과 다른 마음의 감각을 '의식의 감각질' 혹은 더 전문적으로 '퀄리아(qualia)'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꽃 향기를 맡았을 때 우리는 '흐음.. 향 성분이 나의 코 점막을 자극하는군'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대신 '달달하고 상큼한 향'을 느낀다. 이 향기, 다시 말해 마음에 느껴지는 느낌의 질감이 감각질이다.
감각질은 시각, 청각 등 다른 감각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시각을 일으키는 정보의 원천은 전자기파의 특정 파장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전자기파의 파장이지 색깔이 아니다. 그런데도 전자기파의 파장이 우리에게는 특정한 '색色'이라는 감각질로 경험된다. 게다가 가시광선을 넘어서는 전자기파는 '열'로 감각되거나 아예 감지되지 않는 데 반해, 유독 가시광선에 해당하는 좁은 대역만 색깔로 감각된다. 왜 그래야 했던 걸까. 혹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학자들이 연구하는 '의식의 감각질' 문제는 바로 이 의문을 밝히려는 노력이다. 다시 요약하면, '외부의 물리적 자극이 어떻게 마음의 느낌으로 전환되는가?'를 밝히려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마음이 아프다는 느낌도 의식의 감각질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이유가 합의되지 않은 상태다.
물론 어떤 분은 특정 뇌 세포의 발화가 원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A라는 조건이 주어질 때 B라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반드시 A가 B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원 버튼을 눌러야 TV가 켜지지만, 전원 버튼이 TV 방송의 원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특정 신경 세포가 발화되면 마음에 느낌이 일어난다. 하지만 '신경 세포가 왜, 어떻게 감각적 느낌을 마음에 일으키는가'라고 질문하면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최고의 석학들이 이 문제에 매달리고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것이, 수천 년간 마음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도 합의된 결론에 이르지 못한 것이 바로 이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 '몸'과 '의식'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방향芳香 화합물의 자극이 몸에는 분자 간의 화학 반응으로, 마음에는 향이라는 감각질로 느껴진다고 하면 간단하게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의식에 주어지는 감각질은 뇌와 육체가 아니라 의식 자체에 직접 주어지는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도 가지고 있다. 수술 중 의식이 돌아온 환자들의 경험담이다.
의식을 지닌 채 수술 받는 사람들
만약 의식이 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전신마취와 동시에 의식이 사라져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러하다. 우리가 마음 놓고 수술대에 오를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데 뇌가 완전히 마취된 상태에서도 의식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것은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인지과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두 사람이 쓴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라는 책에 이를 경험한 환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전신마취 환자 천 명당 한 명이 이런 경험을 한다고 한다.
" ... 회색이며 아무 소리도 없는 심연이 갑자기 컬러 영상이 돼 처음에는 희미한 녹색이었지만 점점 분명한 풍경으로 보였다. 동시에 멀리서 어렴풋한 소리가 들려왔으며, 그것이 차츰 가까워지고 분명해졌다.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 그래, 수술을 받는 중이다. 겨우 그런 생각이 정리된다.
... 나 자신의 것이라고는 하늘에 떠다니는 뇌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어딘가에 입이 있겠지만, 입을 움직여 소리치는 것을 막는 듯한 뭔가에 억제되고 있었다. 그 밖에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녹아버린 것이다! ...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하지만 화가 치밀 정도로 의식이 있다. 이제 공황 상태에 놓였다. 하지만 그것은 기묘한 것, 이치로 따지는 냉철한 공황 상태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인용한 부분은 한 학술 논문지에 게재된, 외과수술 중 의식이 돌아오는 사고를 당했던 환자의 체험기다. 수술 중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은 마취가 일찍 깨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충분히 마취되어 있는데도 의식이 돌아옴을 의미한다. 물론 그들은 마취가 되어 있어 통증은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의식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의료진에게 알릴 수 없기 때문에, 그 상태로 수술을 받고 나면 여러 해 동안, 심지어 평생 심각한 ‘정신적 외상 후유 장애(PTSD)’를 겪게 된다고 한다.
뇌의 정상적인 기능이 멈춘 상태에서도 의식이 돌아온 환자들의 사례는 의식이 뇌와 관계없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그 상태에서도 색깔을 구분할 수 있었다는 증언은 우리 의식에 나타나는 '색色이라는 느낌'이 뇌가 아니라 의식 자체가 경험하는 현상임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환자는 "회색이며 아무 소리도 없는 심연이 갑자기 컬러 영상이 돼 처음에는 희미한 녹색이었지만 점점 분명한 풍경으로 보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화가 나는 것도 느끼고, 생각도 하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다만, 그는 몸을 써서 분노를 표현하거나, 말로 의도를 표현할 수 없었다. 뇌와 몸의 기능이 정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를 토대로 아래와 같은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 같다.
[1] 뇌와 의식은 별개로 존재한다.
[2] 마음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다.
[3] 의식의 의도는 뇌와 몸을 통해 실현된다.
이 가설은 4장을 시작하면서 제기했던 주장, 즉 의식이라는 마음 기관이 뇌 밖에 실재하고, 그 덕분에 우리가 몸과 뇌를 제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 주장이 참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밝혀져야 한다. 즉,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이 어떻게 물질인 뇌와 몸을 움직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제 이 의문을 해결할 차례다.
※ 짧은 요약
마음의 느낌은 의식에 직접 주어지고, 몸은 의식의 의도를 수행하는 실행기관이다.
※ 인용 자료
마르첼로 마시미니, 줄리오 토노니,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 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