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정신의 구조 - 4 : 심신문제의 동아시아적 해법
데카르트의 영향으로 서구에서는 의식을 '비물질'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물질도 아닌 정신이 어떻게 물질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몇백 년간 논쟁을 이어왔다. 그리고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서구철학의 이 오랜 숙제를 해결할 유용한 실마리가 실은 우리 전통 안에 있다.
우리는 곧잘 서양 철학은 실질적이고 동아시아 철학은 뜬구름 잡는 사변이라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동아시아 철학이 훨씬 실질적이고 실용적이다.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서양 과학은 수학이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자연을 해석한다. 그래서 이론이 바뀌면 자연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해법도 달라진다. 세계를 이해하는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를 겪는 것이다.
이와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이론보다 실제적인 경험을 중시했다. 그래서 2,500년 전에 출간된 황제내경이 지금도 한의대생들의 교재로 쓰인다. 2,5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그 철학이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상적 토대가 인위적 기획이 아니라 자연과 경험에서 얻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다. 서양 물리학은 수학을 도구로 삼아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론하고 예측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론 대신 실제로 그 세계가 어떤 곳이며 어떻게 운용되는지 경험하는 데 탐구의 목표를 두었다. 기 수련이나 참선 등의 전통이 이어져 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론을 논하기 전에, 먼저 그 세계를 몸으로 직접 느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론은 변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 경험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세계관을 변화시킨 일 분
한 때는 나도 우리 철학이나 전통을 매우 비합리적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바꾸어 준 사람이 있었다. 젊은 시절 만났던 그 친구는 기 수련에 심취해 있었다. 왜 젊은 사람이 그런 구닥다리 문화에 심취하는지 의아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간단한 기氣 감각법 한 가지를 알려주며 시도해 볼 것을 권했는데, 그 일 분 후, 나의 세계관이 변했다.
지금 소개하려는 간단한 기감氣感 훈련이 바로 그 때 배운 방법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달리기 능력이 다르듯이 지금부터 소개할 기감 훈련도 재능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재능을 지닌 분이라면, 곧바로 이 훈련이 의미하는 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간단한 테스트지만 깊은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먼저 전체를 읽으신 후에 마음을 집중해 아래 과정을 실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1. 손바닥을 마치 공을 감싸 쥔 것처럼 나란히 둔 후, 손바닥에서 에너지가 나와서 두 손 사이에 모인다고 생각한다. 그 의념에 집중하면서 손을 천천히 안팎으로 움직인다.
2. 집중이 잘 이루어졌다면, 손바닥 사이에 탄력 있는 에너지 공이 놓인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천천히 과정을 반복하면서 공을 점점 더 크고 탄력 있게 키워간다.
3. 에너지 구球가 어느 정도 키워졌다 싶으면, 손을 그대로 둔 채 마음으로만 에너지 공이 앞에서 뒤로 회전한다고 생각한다. 손은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흐름에 맡긴다.
4. 집중이 잘 되었다면, 에너지 공이 회전하면서 왼손과 오른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왼손과 오른손이 교차하면서 앞뒤로 움직이게 된다).
5. 그것이 느껴지면 이번에는 공이 반대쪽으로, 밖에서 안으로 회전한다고 마음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면 생각과 동시에 에너지 구의 회전 방향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손의 움직임도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기까지 읽고 전체 과정이 숙지되었다면, 이제 글읽기를 멈추고 직접 체험해 보세요).
기감이 발달한 분이라면, 아마 의식이 에너지 공의 회전을 명하는 순간, 곧바로 공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느끼셨을 것이다. 이 간단한 실험은 '의식한 대로 에너지가 움직이고, 에너지가 움직이는 대로 손이 움직임'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이를 경험한 분이라면 이제 '의식이 에너지를 움직일 수 있는 실질적인 정신 기관'임을 몸으로 실감하셨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수천 년간 '기 수련과 마음 수행'의 전통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 수련 체계 안에는 이 간단한 실험을 능가하는 다양한 경험과 이론 체계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의식이 에너지를 움직이고 에너지가 현실을 만든다'는 진실을 깨닫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뇌를 제어할 수 있는 것도 '기氣'라는 에너지를 매개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긴 이야기가 되어야 하니, 이 주제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제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새로운 정신 모형을 만나보자.
※ 짧은 요약
의식은 에너지를 움직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정신 기관이다. 우리는 이 기관을 이용해 뇌와 몸에 영향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