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6년 차, 이제는 익숙할 법도 한데 여전히 저는 갖가지 불안에 휩싸였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때로 풍선처럼 부풀려져 남편조차 이해 못 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이따금씩 발현되는 저의 이런 행동들은 남편을 더욱 답답하게 했고 점점 자라고 있는 딸아이마저 힘들게 했습니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소중한 가족인데 오히려 저의 이 불안들은 모든 것을 망쳐놓고 있었습니다.
숨길 수가 없었고 이제는 인정해야 할 타이밍이 왔구나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남편에게 용기 내어 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신의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행동들의 해석까지 말입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뒤로한 채 이제는 병원에 다녀보겠다는 말까지 덧붙이고는 남편의 동의 여부를 물었습니다.
사실 남편은 제가 오래전 정신과치료를 받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정확한 병명과 왜 치료를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었기에 잘 모르고 있었을뿐였습니다.(대충 둘러 말했던 기억만 있습니다) 또 연애 때 처음 언급했던 거라 지금처럼 같이 살고 있는 입장에서만큼 비중 있게 다룬 대화주제도 아녔습니다. 어쩌면 결혼을 앞두고선 함께 얘기 나눠 볼 주제였을텐데 그땐 왜 그러지 않았을까 의문도 들었습니다. 과거는 잠시 접어두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아쉬움보단 이제라도 진지하게 대화해 보자라고 운을 띄웠습니다. 한 마디로 앞으로의 일들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우린 이전과 다른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서로를 속일 필요가 없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서 또 자신을 바라봤던 남편의 생각까지 저희는 이야기 끝에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어쩌면 우리 부부에게 꼭 필요했던 대화 같았습니다. 중간중간 침묵이 흘렀고 자신의 떨리는 목소리와 울음이 뒤섞여 입 밖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경직되면서도 필터 없이 거르지 않아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며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날 것의 이야기들을 쏟아냈습니다. 둘 다 생각을 내뱉는데 거침이 없어 보었고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으며 우리는 그렇게 필요하다 생각했던 모든 대화를 다 마친 뒤에 마지막으로 남편이 입을 열었습니다. 바로 병원을 다녀볼 것에 대한 동의였습니다.
동의? 남편에게서 꼭 동의를 얻어야 했을까, 스스로 필요하다 생각되면 언제든 다닐 수 있는 게 병원 아닌가 싶었지만 저는 남편으로부터 그동안의 자신을 존중받고 싶었습니다. 비정상 적여 보였던 행동들을 이해해 달라기보다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던 자신의 상태를 바로 그 사람이 당신의 아내였음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길 바랐던 것였습니다. 혹 자신이 당신의 판단과 다를 수 있어도 그저 다르게 살아왔던 사람이지 비판받을 대상은 아녔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이 얘길 듣고 어쩌면 저 같은 사람과 살기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자신을 이해 못 하겠다면서 결혼을 후회한다 말한 적도 있었기 때문였습니다. 이번 기회로 자신을 완전히 오픈하면서 그럼에도 남편의 생각이 이전과 같은지 다른지 궁금했기에 그럼에도 병원 다닐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말 그대로 저는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의 모든 생각을 존중하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였습니다.
사실 기대를 한 건 아녔지만 남편의 대답은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완전히 오픈 함으로 이해해 볼 기회가 생겼기에 자신에게도 시간을 달라고 말하는 것였습니다. 또 병원에 다녀보겠다는 제 의견에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며 남편으로서 도울 것은 없는지 꽤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였습니다.(이때부터 제 병명에 대해 검색하고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저와 함께 새로운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