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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미 Jul 02. 2024

숨겨지지 않았다, 인정해야만 했다.

역시 너였구나.


 결혼생활 6년 차, 이제는 익숙할 법도 한데 여전히 저는 갖가지 불안에 휩싸였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때로 풍선처럼 부풀려져 남편조차 이해 못 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이따금씩 발현되는 저의 이런 행동들은 남편을 더욱 답답하게 했고 점점 자라고 있는 딸아이마저 힘들게 했습니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소중한 가족인데 오히려 저의 이 불안들은 모든 것을 망쳐놓고 있었습니다.

숨길 수가 없었고 이제는 인정해야 할 타이밍이 왔구나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남편에게 용기 내어 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신의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행동들의 해석까지 말입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뒤로한 채 이제는 병원에 다녀보겠다는 말까지 덧붙이고는 남편의 동의 여부를 물었습니다.




사실 남편은 제가 오래전 정신과치료를 받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정확한 병명과 왜 치료를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었기에 잘 모르고 있었을뿐였습니다.(대충 둘러 말했던 기억만 있습니다) 또 연애 때 처음 언급했던 거라 지금처럼 같이 살고 있는 입장에서만큼 비중 있게 다룬 대화주제도 아녔습니다. 어쩌면 결혼을 앞두고선 함께 얘기 나눠 볼 주제였을텐데 그땐 왜 그러지 않았을까 의문도 들었습니다. 과거는 잠시 접어두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아쉬움보단 이제라도 진지하게 대화해 보자라고 운을 띄웠습니다. 한 마디로 앞으로의 일들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우린 이전과 다른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서로를 속일 필요가 없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서 또 자신을 바라봤던 남편의 생각까지 저희는 이야기 끝에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어쩌면 우리 부부에게 꼭 필요했던 대화 같았습니다. 중간중간 침묵이 흘렀고 자신의 떨리는 목소리와 울음이 뒤섞여 입 밖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경직되면서도 필터 없이 거르지 않아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며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날 것의 이야기들을 쏟아냈습니다. 생각을 내뱉는데 거침이 없어 보었고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으며 우리는 그렇게 필요하다 생각했던 모든 대화를 마친 뒤에 마지막으로 남편이 입을 열었습니다. 바로 병원을 다녀볼 것에 대한 동의였습니다.




동의? 남편에게서 꼭 동의를 얻어야 했을까, 스스로 필요하다 생각되면 언제든 다닐 수 있는 게 병원 아닌가 싶었지만 저는 남편으로부터 그동안의 자신을 존중받고 싶었습니다. 비정상 적여 보였던 행동들을 이해해 달라기보다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던 자신의 상태를 바로 그 사람이 당신의 아내였음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길 바랐던 것였습니다. 혹 자신이 당신의 판단과 다를 수 있어도 그저 다르게 살아왔던 사람이지 비판받을 대상은 아녔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이 얘길 듣고 어쩌면 저 같은 사람과 살기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자신을 이해 못 하겠다면서 결혼을 후회한다 말한 적도 있었기 때문였습니다. 이번 기회로 자신을 완전히 오픈하면서 그럼에도 남편의 생각이 이전과 같은지 다른지 궁금했기에 그럼에도 병원 다닐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말 그대로 저는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의 모든 생각을 존중하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였습니다.


사실 기대를 한 건 아녔지만 남편의 대답은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완전히 오픈 함으로 이해해 볼 기회가 생겼기에 자신에게도 시간을 달라고 말하는 것였습니다. 또 병원에 다녀보겠다는 제 의견에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며 남편으로서 도울 것은 없는지 꽤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였습니다.(이때부터 제 병명에 대해 검색하고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저와 함께 새로운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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