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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미 Jul 09. 2024

아내이자 엄마로서 용기 내야만 했던 이유

그때도 지금도 결국 날 위한 선택이었어


 병원을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 제게 붙여진 병명은 '불안장애'였습니다.



불안장애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 질환을 통칭한다. 불안과 공포는 정상적인 정서 반응이지만, 지나칠 경우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어렵게 하고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증상을 유발한다. 직장생활, 대인관계, 학업과 같은 일상 활동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우 불안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中)



선척적인 요인도 있었겠고 자라온 환경이란 울타리에 또 우발적인 어떤 사고로 발견된? 그저 언젠간 받아들여질 자신의 장애였습니다. 즉 선천적, 후천적 요인의 컬래버레이션. 지금껏 살아온 나의 인생의 동반자 같은 '불안'인데 고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병이라기보다 그저 어떻게 하면 '덜' 불안해하며 살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야 했습니다. '불안'이란 감정이 죄도 아니고 제 잘못으로 생겨난 것도 아니기 때문였습니다. 그렇게 처음 시작했던 약물치료는 일상생활로 복귀하기까지 꽤나 도움을 주었습니다. 불편하기만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호전되어 갔고, 자리 잡았던 직장생활에서는 나름의 인정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과도 마주해야 했습니다. (현재의 남편과) 연애를 하던 중 제 자신에 대해 솔직해야 했고 결국 결혼과 출산이라는 이야기를 끝으로 약물치료와 연애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속적인 약물 복용은 임신 시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 저 또한 고민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남자친구는(지금은 남편) 단순히 약물치료를 중단했음 하는 마음에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서 치료를 멈출 수 없냐고 물었습니다.(강요 아닌 그저 바람이 담긴 물음였습니다)


자신의 건강만 생각했다면 결혼과 출산은 너무 먼 이야기 같았고, 약물 없이도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만 있다면 한 번쯤은 꿈꿔 봐도 될 미래가 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 약물치료 지속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였습니다. 그래서 담당 주치의 선생님과 이야기 끝에 약물을 조금씩 줄여보기로 했습니다. 줄여가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약물치료 없이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드디어 전 꿈을 이뤘습니다? 치료 없이 결혼했고 지금의 아이를 낳았으며 현재까지 잘 살고 있었기 때문였습니다. 그렇다면 마냥 행복해야 할 텐데 전 왜 다시 병원을 가려고 할까요? 사실 바랐던 목표까지 가는 여정이 사실 제겐 어두운 터널과도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혼생활, 함께 모든 것을 시작했고 끝을 맺기까지 우리는 우리 만의 미래를 그려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혼부부가 겪듯 행복만 이어져 가진 않았습니다. 자신과 남편의 살아온 방식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느낄 때쯤 이성적인 생각보다 감정적으로 대할 때가 많았습니다. 서로의 생활방식을 존중하며 때론 맞춰가는 노력을 하면 좋았을 텐데 그저 상한 감정은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봐졌고 잘못된 판단은 결국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이어져갔습니다. 사소한 다툼이 있을 때마다 홀로 느끼는 불안의 감정은 상상 이상으로 더 커져만 갔습니다.(정상적인 불안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 때론 혼자서 이 마음을 추슬러야 할 때가 제일 고통스러웠습니다. 한 번쯤은 자신이 갖고 있던 장애를 떠올리며 '넌 그런 사람이라서 그래'라고 인정해 줬다면 덜 괴로웠을 텐데, 그때 당시에는 저는 환경 탓 남 탓만 하기 바빴었습니다. 그러니 해결되는 것 하나 없이 계속해서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한 번 유산을 했고, 두 번째로 찾아온 아기 천사마저 제게 다른 불안을 심어주었습니다. 남편이 아닌 아이가 주는 사랑은 또 달랐습니다. 어쩌면 힘겨루기가 아닌 일방적인 사랑에 잠시나마 행복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제가 한없이 줘야 할 사랑에는 인내와 연단이 필요했습니다. 몸과 마음의 고통 또한 뒤따르게 되면서 사랑보단 끊임없이 생겨나는 불안의 감정으로 제 자신은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엄마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할 모든 일들이 사랑의 수고와 헌신된 마음보다 그저 감당해야 할 힘겨움 부담감 책임감 등으로 몇 배는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제게 주어진 여러 상황과 급변하는 환경이 영향을 준 것 같았습니다.(육아를 하며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남편의 육아 참여도는 생각보다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어릴 적부터 신장에 결함이 있어 오랫동안 병원을 다녀야만 했습니다 현재도 1년에 한 번씩 추적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이를 키우며 갖게 되는 모든 엄마들의 불안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불안을 어떻게 다스리냐는 결국 엄마의 몫 일 테고 엄마의 역량이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전 사소한 것 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 중 한 명였고 제 몫을 다하기까지 노력은 했지만 결국 쌓여놨던 불안들은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사랑하는 사람들 남편과 하나뿐인 아이에게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바로 서야 하는 이유 다시 말해 엄마가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결국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말과 동일했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서 자신을 되돌아봤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자신은 괜찮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괜찮은 사람이 돼 보고자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이란 노력을 해봤지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도움을 받아 환경과 남 탓이 아닌 자신을 바꾸며 살자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한계가 있는 약한 자인지라, 이제는 약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듯 마음의 병을 얻었다면 회복될 때까지 마음의 약을 먹어야 하는 것, 그저 도움이 필요했던 것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난 8년 동안 복용하지 않았었습니다. 약물치료 없이 홀로 버티며 살아온 이 8년은 제게 참 다양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말 못 할 고통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그저 그 시간 너무 힘들게 버텼구나 싶었습니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다른 시간으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선택이라 말하면서도 결국 제 자신을 위한 선택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고 우리 둘을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 선택했던 길로 약물을 중단했다면,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남고 싶어 선택하는 길이 될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자신을 위해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치료를 위한 병원을 검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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