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쏭쏭 Aug 18. 2024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행복

내 몸에 대한 생각

나는 하체가 콤플렉스다. 상체보다 다리가 굵다. 이 콤플렉스는 꽤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구나. 내가 이걸 ‘콤플렉스’라고 인지하게 된 것은 아마도 대학생 시절이었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은 소녀시대가 색색의 화려한 스키니진을 입고 gee를 부르던 시대였다. 그녀들 덕분에 다리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스키니가 유행했다. 미끈한 각선미가 대세이던 시대. 당시 바지를 사면 허리는 남지만, 허벅지가 꼈다. 때로는 종아리에서부터 껴서 올리지 못하기도 했다. 그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특별한 다이어트(여기서는 식이요법을 말한다)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후로 줄곧 50kg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에게 말랐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뚱뚱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보통의 체격이었고, 나 자신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살을 빼야겠다’라고 마음먹은 것은 취직하고 난 이후였다.     


나에게는 몇 번의(!) 인생의 우울한 시절이 있는데, 취업 준비생 시절은 그중 한 번에 속한다. 덕분에(?) 나는 의도하지 않게 살이 빠져서 45kg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45kg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거였다. 그 무게는 처음에는 좀 유지가 되는 듯하더니 2년 만에 야금야금 살이 쪄서 어느덧 50kg이 되어버렸다. 본래의 무게를 되찾은 거였다. 그러나 어느덧 나는 45kg인 나에게 적응되어 버렸다. 게다가 타고난 체형 때문이겠지만, 그 5킬로는 다리에만 다 붙었다. 당시 근무복을 입고 있었던 탓에 항상 치마를 입어야 했다. 다리 노출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다리가 점점 두꺼워지고 있으니…. 속상했다.      


나도 남들처럼 당당히 다리를 내놓고 다니고 싶어!!!      

결국, 나는 그렇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다이어트가 어디 쉽던가? 애써 노력해서 2kg를 빼면 3kg가 찌는 일이, 3kg를 빼면 2kg이 찌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로 인해 내 체중은 크게 변함이 없지만, 어째서인지 몸매는 점점 나빠지는 기분이었다. 탄력은 없고 어딘가 아픈 것 같은 느낌의 몸이랄까? 한때 탄수화물을 끊어보기도 했는데, 그 덕분에 나는 그전에 모르던 탄수화물의 맛을 알게 되었다. (떡이 맛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하. 탄수화물 응축의 맛 ㅜ)     


심지어 그 과정에서 다리에 대한 내 콤플렉스는 점점 더 심해졌다. 어째서 상체와 얼굴은 빠지는데 다리는 안 빠지는 거지?? 남들은 그 정도면 평범한 다리라고, 도리어 날씬한 편이라고 했지만 그런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콤플렉스란 그런 거니까……. 내 상체가 아무리 마르던, 허리선이 얼마나 예쁘던, 그런 장점은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말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부분은 좀 흔들려도 되는 것 같다. 그때 내 몸은 예뻤는데…. 참 건강했는데…. 그 좋은 시기에 그걸 단 한 번도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그렇게 하체에 대한 콤플렉스가 점점 강해지던 어느 날, 갑자기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간혹 운동을 잘못하면 아픈 날이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을 그런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달랐다. 


무릎이 아파서 걷기가 힘들었다. 뛰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무릎이 아파서 자다가 깨는 일이 자주 있었고, 앉거나 서는 일이 어려웠다. 사무실의 바퀴 달린 의자를 휠체어처럼 사용했고, 심할 때는 차에 타지도 못했다. (차에 탈 때 무릎에 힘이 들어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몸을 차에 올리기 위해서는 무릎에 체중을 실어야 하는데, 그때는 그 짧은 순간 무릎에 체중을 지탱하는 것이 어려웠다) 걷거나 뛰는 걸 좋아하는 내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고, 정확한 원인은 찾을 수 없었고 차도가 있었을 때도 있었지만 없을 때도 많았다. 많은 시간과 돈을 썼다. 이제 내게 남은 방법은 운동뿐이었다.     


처음에는 필라테스였다. 그리고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이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아서 무릎이 아픈 사람이 하기에 가장 적절한 운동이라는 추천 덕분이었다. 대학교 때 서너 달 수영을 배웠던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이 좋았던 것도 선택에 도움을 주었다.     


수영장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수영복 자체가 몸을 많이 드러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그것보다 나의 비루한(!) 몸매가 부끄러웠다. 볼륨 없는 몸매도 그렇지만, 두툼하게 탄력 없이 흔들리는, 순두부 같은 내 허벅지가 너무 부끄러웠다.      


이런 몸을 이렇게 드러내도 괜찮은 걸까? 수영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런 생각은 나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사라졌다. 수영을 배운다는 것은 생존의 영역이다. 숨을 쉬어야 하는데 물을 먹고, 발차기해야 하는데 정신 차리면 발은 바닥에 닿아 있었다(?). 팔을 저으라는데, 아니, 팔이 움직이지를 않는데? 강사님이 하라는 걸 하다 보면, 아니 그 반의반만 따라 하려고 해도 몸도 마음도 바빴다. 어느덧 내 머릿속은 죽겠다는 생각만 가득하고, 몸매나 콤플렉스에 대한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운동하면서 사실 내 몸이 극적으로 바뀐 건 아니었다. 남들은 필라테스 3개월만 해도 몸의 균형이 잡힌다는데, 나는 2년 넘게 했는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수영도 1년 반을 했지만, 살이 빠진다거나, 근육이 생겼다거나, 몸매가 좋아졌다거나, 하는 건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운동을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내 몸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을 평가하는 기준은 허벅지가 굵다거나 뱃살이 나왔다거나 하는 미용상의 기준보다 발차기를 오늘 제대로 했는지, 런지를 몇 개까지 했는지가 중요해졌다. 무엇보다 무릎의 통증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무릎이 아픈 날은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늘씬한 다리는 여전히 부러웠지만, 그보다 아프지 않은 무릎이 더 부러웠다.     


언젠가 수영장에 들어오지 않은 채, 수영장 가장자리를 서성이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녀가 어떤 수영복을 입었는지, 살이 쪘는지 말랐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나는 것은 오롯이 그녀의 무릎, 그 무릎에 선명한 수술 자국이다. 나는 그녀를 보며 내 미래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 현재의 모습을 생각했다. 아직 수술하지 않은 내 무릎. 이제는 아픈 날보다 안 아픈 날이 더 많은 내 무릎……. 수술 없이 이 정도 움직여주는 내 무릎이 고마웠다.     


무릎이 아파지고 나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이 있다면 몸은 미용상의 영역으로만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릎이 아프기 전까지 내게 다리는 ‘살을 빼야 하는 부위’, 그러니까 ‘예쁘지 않은 영역’에 지나지 않았다. 걷고, 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그걸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평생 ‘당연히’ 함께 갈 줄 알았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나 역시, 그것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가 가고 싶을 곳을 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몸. 그런 몸이 내게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콤플렉스를 벗어나게 되었다-로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이야기는 아주 현실적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작년 겨울, 그러니까 벌써 1년 8개월 정도 지났군, 이후 나는 갑작스러운 어깨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수영하면서 다친 것인지, 아니면 헬스를 하다 다친 건지, 그것도 아니면 너무나 없었던 어깨 근육이 드디어 파업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아프다. 또다시 병원을 전전하고 MRI까지 찍었지만, 원인은 나오지 않았다. 어깨가 아픈 것은 무릎이 아픈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무릎이 아플 때는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어깨가 아프고 나서는 나는 운동을 전부 접었다. 그 결과 지금은 운동을 안 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따흑….     

한때 운동 중독이라는 평가도 받았던 나. 그런 나는….     


이제는 운동하기가 너무 싫다. 진짜 귀찮아!!! 아프니까 더 하기 싫어!!


운동을 쉬게 된 계기는 이렇다. 하체 운동이라도 하겠다고 헬스장을 갔는데, 하체 운동을 위해 손잡이를 붙잡기만 해도 어깨가 아팠다. 그런데 내 앞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 중. 다들 저렇게 건강하게 운동하는데, 나는 무슨 죄로 이렇게 아픈 거지? 내가 무게를 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왜 이런 부실한 몸인 거지? 이런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이러다가 몸보다 정신이 더 먼저 고장 날 것 같다고 생각해 운동을 그만두었다.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운동을 이렇게까지 쉬게 된 것은 참 아쉽다. 


운동은 관성과 같다. 한번 시작하면 계속할 수 있지만 멈추면? 시작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운동을 예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운동은 좋다. 하지만 운동은 내 삶을 위한 수단이다. 내 삶을 더욱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수단. 중요한 것은 내 몸, 내 삶이다.


내게 두 다리가 있음에 감사하는 것. 내가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음에 소중함을 느끼는 것. 타인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한탄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나는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잊고,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득도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요즘 몸에 군살이 많이 붙은 것을 느낀다. 살이 좀 처진다고 해야 하나? 원래도 없던 탄력이 이제는 아예 없어져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다. 게다가 중간에 몇 번 심하게 아팠더니 근육만 쏙 빠졌다. 무릎도 다시 자주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피골은 맞닿았는데 군살은 엄청 찐 느낌……. 거울을 볼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     


그렇다. 사람은 이렇게 간사하다. 운동을 끊었더니 나는 다시 몸을 미용으로 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운동이 내게 주었던 가르침은 내게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상온에 둔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내 허벅지는 여전히 싫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은 잊지 않았다. 덕분에 과거, 예쁘기만 한 다리를 추구할 때보다 나는 덜 불행하다. 걸어 다닐 수 있는 두 다리가 내게 있음에 감사한다.


그러니까 여러분, 운동하세요. 미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위해서.    


저도 다시 시작할 겁니다.


음... 그러니까 어깨가 조금만 덜 아프면...?

이전 04화 행복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