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않아도 남는 것들

태민을 사랑하며 배운 관계의 윤리

by 올가의 다락방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가 내 삶을 ‘영원히‘ 바꾸었다는 표현을 쓴다. 애초에 삶은 유한한 것인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영원한 변화란 성립 가능한 것일까? 오늘은 태민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내 삶을 ‘영원히’ 바꿨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기억나는 순간부터 내 삶은 자의식과 우상이라는 두 축을 기반으로 굴러갔다. 나에게는 시기마다 내 삶의 모든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우상이 존재했다. 때로는 스승이었고, 때로는 선배였으며, 친구이기도 했던 그들은 내 삶의 모든 이유였으며, 그들에게 받는 인정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포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억압이기도 했다. 타인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흡수하는 것은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인정욕구가 지배하는 삶은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더 자의식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던 것 같다. 자의식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인정욕구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러 우상들과 함께 수많은 계절들을 보내고 태민이라는 아티스트를 만났다. 태민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대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가치관이나 자세를 동시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가령, 나는 그가 섬세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고, 자기보다 더 큰 가치에 스스로를 내맡길 줄 아는 게 좋았다.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는 내 우상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우상들과 달리 그가 손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알지 못한다. 이 사실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더 이상 한 명의 우상을 섬기며 인정욕구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렇게 태민이라는 아티스트를 만나고 나는 지난했던 인정욕구와의 싸움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조금씩 놓아주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정욕구와 자기 연민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보였던 건 우상의 등 뒤에 있는 한 인간의 존재였다. 나만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힘든 줄 알았는데, 나의 우상들도 완전무결해야 한다는 틀 속에서 억압받아왔겠구나, 그럼에도 그 억압을 받아들인 건 나를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구나. 모든 관계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태민에 대한 사랑 덕분에 모든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살면서 마주할 여러 스승들과 더불어 태민을 우상이 아닌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려고 한다. 그런 결심을 하자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른다는 확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그를 알고, 그도 나를 안다. (물론 물리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그런 ‘앎’이 아닌 앎도 분명 존재한다는 걸 나는 이제 믿게 되었다.) 더 이상 그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야 말로 서로를 (태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게 한다. 태민의 삶도, 나의 삶도 모두 유한하지만, 서로를 하나의 실체로 인식하게 된 순간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 순간을 음악으로 기록하여 남기는 것이 태민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사랑의 기록은 누군가의 삶을 바꿀 것이다. 이게 바로 삶은 유한하지만 변화는 영원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가 만들어낸 무대를 응시하며 내 삶의 자리에서 나도 무엇을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이 순간들이, 결국 나를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태민이 내 삶에 남긴 영원한 흔적들을 더듬으며 최대한 큰 목소리로 그를 응원하려고 한다. 그 메아리가 그의 삶에 영원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기를, 그리하여 태민의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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