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인가? 창문인가?

태민 Veil 컨셉 포토 분석

by 올가의 다락방

오늘(9/8) 공개된 ‘베일’ 컨셉 포토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건 깨진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보는 태민의 모습이다. 안경을 쓰고,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드라이’ 버전의 태민은 욕망을 통제하는 심판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드라이 버전의 태민을 규범과 관습에 따라 이상적인 자아상을 설정하며, 무의식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초자아’로 보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초자아가 분열의 양상을 띤다는 사실이다. 9월 7일에 공개된 사진 속 태민은 간신히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점들의 집합처럼 보였다. 필자는 해당 사진이 금기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모두 흩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욕망을 동시에 느끼는 태민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깨진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는 태민의 모습은 의미심장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거울은 자아 성찰의 도구이자, 심연의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로서의) 창문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거울과 창문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볼 때 상당한 의미를 갖는 장치다. 거울은 자신이 보고 싶은 자신의 모습, 즉 주체가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을 재현해 주는 매개체인 반면, 창문은 자신이 보는 위치가 아닌 곳에서 자신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물이다. ‘거울’은 주체 한 명만 있어도 이미지를 재현해 낼 수 있지만, ‘창문’이라는 상징은 주체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을 전제로 성립된다. 즉, 사진 속 물체를 거울로 보느냐, 창문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태민을 응시하는 또 다른 주체의 존재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특정 예술작품을 거울로 볼 것이냐, 창문으로 볼 것이냐를 두고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통해 컨셉포토에서 제시된 오브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푸코와 라캉은 벨라스케스의 <궁정의 시녀들>을 두고 의견 차이를 보였다. 그림을 매개로 순수한 형태의 재현이 이뤄졌다고 본 푸코는 해당 작품을 ‘거울’로 본 반면, 그림에 분열된 주체가 새겨 넣어졌다고 본 라캉은 <궁정의 시녀들>을 ‘창문’으로 해석했다.


우리는 여기서 라캉의 ‘분열된 주체’라는 개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자아성찰의 도구인 거울이 분할되어 있는 것은 곧 자아가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늘 뜬 컨셉포토 속 핵심 오브제가 바로 조각난 거울이기 때문이다. 라캉에 따르면, 시각적 영역에서 주체의 분열은 눈(eye)과 응시(gaze)의 분열로 나타나는데, 눈은 보는 주체의 시점, 응시는 주체를 보는 타자의 시점을 뜻한다. 주체의 분열은 ‘나’와 ‘너’의 어긋난 시선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 하에서 컨셉포토를 찬찬히 뜯어보자. 사진에는 어딘가를 올려다보는 태민과 타자(즉 화면 밖 ‘우리’)를 쳐다보는 태민의 모습이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거울 속 태민과 거울 밖 태민에게로 분산된다. 분산된 시선은 태민을 분열시키고, 분열된 태민의 모습은 우리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과정이 무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어딘가를 올려다보는 태민을 이상적인 자아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욕망을 외면하는 자아로 보았다. 반면 거울 속 태민은 타자와의 공명을 욕망하는 자아이다. 사진 밖의 타자에게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며 눈맞춤을 시도하는 모습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태민의 초자아는 이렇듯 통제하려는 쪽과 욕망하는 쪽으로 양분되어 있으며, 이러한 분열을 상징하는 게 바로 깨진 거울이다

흥미로운 건 거울이 깨지면서 우리가 초자아 너머의 태민, 무의식이라는 심연 속 태민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즉, 깨진 거울은 그 자체로 “푸른빛 망각”(마카오 공연 때 태민이 낭독한 니체의 시에서 인용)의 기운이 감도는 태민을 내다볼 수 있는 하나의 통로이자 창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통제받던 자아는 사진 프레임 밖의 우리에게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며 묻는다. 당신들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아니, 이게 당신들이 원하던 것 아니냐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컨셉 포토는 관음의 대상으로서 은폐되어 왔던 태민 자신의 욕망이 꿈틀거리며 가시화되는 순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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