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l: 욕망을 마주하는 네 가지 여정

태민 Veil 컨셉 포토 분석

by 올가의 다락방

욕망은 언제나 우리를 시험한다. 욕망을 억눌러야 할 것인지, 그저 따라야 할 것인지, 아니면 초월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Veil의 여러 버전들은 바로 그 경우의 수인 동시에 한 인간이 욕망과 화해하기까지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 번째 Dry 버전은 금욕의 자세를 상징한다. Dry 버전의 태민은 욕망을 억누르며 단단히 버티는 자아를 닮았다. 표면은 건조하게 갈라져 있지만, 그 금은 억눌린 욕망의 흔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태민은 욕망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탱하려 하지만, 거울의 갈라진 틈은 이미 그 인내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형상을 구성하는 입자 하나하나가 파편화되어 흩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프리뷰 사진에서도 이미 드러난 징후이다.

욕망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기에 자아는 Plastic, 변형의 자세로 이동한다. 여기서 자아는 욕망의 열기에 따라 유연하게 모습을 바꾸며 살아남는다. 휘어지고 구부러지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는 성질 덕분에 억압과 방종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형태를 띨 수 있는 것이다.

Wet 버전은 몰입의 자세를 보여준다. 더 이상 욕망을 억누르거나 그에 맞추어 자신을 변형하는 대신, 그 안으로 깊이 잠기는 순간. 욕망과 두려움이 구분되지 않는 심연의 늪에 빠져 흠뻑 젖은 자아는 자신을 잃고 경계를 허문다. 겉으로 보기에 몰입은 침잠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는 그 자체로 초월을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과정이다. 자기 심연의 바닥을 확인한 자만이 다시 위로 솟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Pale은 초월의 자세이다. Dry의 억눌림과 Plastic의 변형, Wet의 몰입을 모두 통과한 후에 욕망은 더 이상 물리쳐야 할 대상도, 그렇다고 나를 온전히 내맡길 대상도 아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욕망과 두려움을 모두 수용할 때 자아는 넘치는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투명한 자유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자유는 억압(dry), 변형(plastic), 침잠(wet) 등 다양한 형태의 베일을 벗은 뒤 나타나는 투명한 살갗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욕망에 어떤 식으로든지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넘어설 때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초월적인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다.


또한 창백함은 사랑, 정열 등 리비도가 휩쓸고 지나간 끝에 자리하게 된 타나토스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들처럼 끊임없이 생성(리비도)과 죽음(타나토스)을 반복한다. 창백한 자아는 이러함 ‘죽음’과 ‘재생’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꽃을 피워낸다. 창백한 꽃잎을 지닌 하데스의 꽃인 아스포델은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상징했다. 이처럼 Pale은 소멸과 초월을 모두 아우르는 색이라고 볼 수 있다. 니체의 맥락에서 이는 욕망의 거부와 수용 등 급변하는 운명을 긍정하는 운명애의 상태일 터. 바타유의 맥락에서 Pale은 이미 불연속성을 극복하고 연속성과 신성의 세계로 용해된 자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흩어진 자아는 다시 Dry 버전의 형상을 구성하는 입자로 모일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며 욕망을 거부하고, 그에 맞춰서 스스로를 변화시켜 보기도 하고, 욕망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겨 보다가 이내 초월의 상태를 이르는 생성과 소멸은 인간의 삶에서 계속 반복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dry, plastic, wet, pale은 각각 한 인간이 욕망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절제와 변형, 몰입과 초월을 지나면서 자아는 욕망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결국 Veil은 우리의 눈앞에서 흩날리는 욕망의 조각이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Veil이 시선을 가리는 동시에 시선을 잡아끄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롤랑 바르트는 인간이 신체를 전체로서가 아니라 파편으로 욕망한다고 보았으며, Pale 버전의 조각난 사진이 이를 암시한다. 중요한 것은 태민이 그러한 욕망 앞에서 더 이상 분열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태민 그 자신도 이미 욕망을 다뤄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Veil은 길티 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볼 수 있다. 길티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에서 방황하듯 길을 떠난 태민은 사막과 오아시스를 지나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얇은 욕망의 베일을 한 장 걸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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