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욕망·퀴어: 베일 속 재현의 미학
어제(9/13) 요코하마 공연을 시작으로 태민의 일본 Veil 투어가 시작되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진 첫 공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적 장면처럼 다가왔다. 특히 Shadow 무대에서 태민의 춤이 여성의 그림자로 재현되는 연출은 남성과 여성, 욕망의 주체와 대상이 교차하는 강렬한 순간이었다. 필자는 그 장면과 함께 Veil이라는 곡을 들으며 그리스 신화 속 세멜레를 떠올렸다.
길티가 선과 악, 여성과 남성, 낮과 밤의 경계에 선 디오니소스의 노래라면, 베일은 그 디오니소스를 잉태한 세멜레의 노래처럼 들린다. 헤라의 꼬임에 빠져 제우스에게 신의 증명을 요구한 세멜레는 결국 번갯불에 타 죽고 만다. 스틱스 강을 두고 맹세를 어길 수 없었던 제우스가 기어이 번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멜레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인간, 아니 여성의 어리석은 호기심을 상징하는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 그러나 나는 이 신화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세멜레는 정말 제우스의 능력을 의심했던 걸까? 어쩌면 그녀가 원했던 것은 불타 죽음을 감수하고서라도 경험할 수 있는 극강의 엑스터시가 아니었을까?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신으로서의 제우스와 결합해 얻을 수 있는 쾌락, 바로 그 신적 경지에 이른 황홀 말이다.
이러한 욕망의 흔적은 베일의 가사 속에 선명히 드러난다. 내가 가장 주목한 대목은 “Own me for good”이다. 문자 그대로는 “날 영원히 소유해”이지만, 만약 이 ‘good’을 ‘god’으로 전환한다면 곡의 맥락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된다. “Own me for god”은 “신으로서 날 소유하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세멜레의 욕망과 직결된다. 세멜레는 인간적 사랑을 원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신적 황홀과 파멸을 원했다. 그녀는 죽음을 알면서도 제우스의 ‘신의 모습’을 요구했고, 결국 그 욕망은 그녀를 삼켜버렸다. 이는 가사 속 “Fading my legacy”와도 겹친다.
이렇게 읽을 때 베일은 단순한 소유와 욕망이 아니라 신적 쾌락을 갈망하는 매우 불경한 기도가 된다. “Can you feel the Fever Ecstasy / 금기를 깨며 핀 꽃 Heresy”라는 가사는 쾌락이 곧 파멸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꽃으로 산화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신에게 도전하고, 죽음을 불사하고, 역사에 어리석은 자로 기록되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지금-여기의 쾌락을 얻고 싶은 자에게 엉켜 붙을 수밖에 없는 죄의식, 그 끈적이는 죄의식 속에 잠식되면서 외치는 마지막 비명 말이다.
태민은 여기서 단순히 가수라기보다 영매가 된다. 그는 구천을 떠도는 세멜레의 비명을 전한다. 남성의 입에서 발화되는 여성의 비명은 젠더 경계를 전복한다. 태민은 메스큘린한 신체에 페미닌한 안무를 더해서 여성성과 남성성을 상쇄하는 젠더리스(무브)를 넘어 퀴어-되기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일은 불에 타 죽은 세멜레의 시신에 드리워진 장막 같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장막은 처참한 파멸을 가리기 위한 덮개가 안다. 이는 욕망과 황홀,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한 죄의식의 불길을 비추는 얇은 막이다. 태민의 목소리와 몸짓은 그 장막을 걷어내며, 우리에게 세멜레의 욕망과 비명을 다시 듣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