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태민 아레나 투어를 기다리며
7월 26일, 태민의 2025년 일본 아레나 투어를 알리는 포스터와 콘서트 타이틀이 공개되었다. 하나의 불꽃처럼 휘날리는 붉은 베일에 감춰진 태민의 검은 형상과 간결하지만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한 투어 타이틀(VEIL)은 많은 팬들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필자는 ‘베일’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태민의 음악적 세계관을 살펴보려고 한다.
‘베일’이라는 장치는 참으로 많은 것을 감싼다. 감추는 동시에 드러내는 이 이중적 외피는 지난 몇 년간 태민이 활용한 메타포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베일은 단지 얼굴을 가리는 천이 아니라, 태민이 지금까지 구축해 온 자아서사의 연장선에서 그 외연을 확장하는 또 하나의 언어이다. 지금부터 베일이라는 언어에 드리워진 장막을 걷고, 이 언어가 지닌 의미를 하나하나 해부해 보도록 하자.
우리는 가장 먼저 ‘VEIL’이 ‘EVIL’과 같은 알파벳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언어유희에 따르면, ‘베일’과 ‘악’은 본질적으로 같은 구성요소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베일’이 ‘악’이 되기 위해서는 알파벳의 배열을 바꾸어야 하는데,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막을 걷어 올리는 행위다. ‘베일’의 장막 뒤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글의 말미에 밝혀질 것이다.
베일은 태민이 크리미널, 길티 그리고 메타모프 콘서트에서 일관되게 사용된 ‘알’과 ‘나비’의 비유와도 연결된다. ‘알’은 태민의 자아를 감싸고 있는 세계이며, 태민이 음악적 성취를 일군 토양인 K-pop 시스템 그 자체로, 하나의 자기 완결적 공간이다. 필자는 그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에서 생긴 파편과 흔적이 곧 ‘베일’이라고 보았다.
베일은 시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시선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이다. 베일을 쓴 사람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바로 그 사실이 베일 뒤의 존재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이는 태민이 추구해 온 관능과도 맞닿아 있다. 태민은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관객과의 눈 맞춤을 일부러 피하는 연출을 자주 활용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베일’은 태민의 관능을 상징하는 장치로 보인다.
태민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즘>에 따르면, 인간은 분절된 존재이기에 필연적으로 연속성(죽음 또한 신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금기를 넘어서야 한다. 태민이 선 무대가 죽음이 재현되는 일종의 제단이라고 볼 때, 그 제단 위에 드리워진 베일은 죽음과 신성의 영역을 가리는 장막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베일은 바타유가 말하는 에로티즘적 의미의 ‘금기’로도 해석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베일’의 세부적 의미를 토대로 지난 태민 콘서트 타이틀을 살펴보고 그의 서사가 그리는 궤적을 따라가 보자.
베일을 알이라는 한 세계를 감싸고 있던 껍질 혹은 외피로 볼 때, <T1001101> 콘서트(이하 TMI콘)는 완성된 알의 존재를 처음으로 자각한 순간이었다. TMI콘은 태민의 음악적인 정체성을 확고하게 한 무브와 원트 연작이 발매된 이후 진행된 콘서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콘서트를 통해 태민이라는 브랜드와 태민이라는 인간의 본질, 즉 시뮬라크르와 실재의 괴리를 표현해 보고 싶었다던 황상훈 연출가의 말이 보여주듯이, 알에는 이미 균열의 조짐이 존재했다. 그래서 크리미널과 이데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T1001101’이라는 타이틀에 활용된 이진법은 그 자체로 이분화된 세계와 분열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후 태민이라는 이름의 알은 강해진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듯 파열음을 냈다. 더 이상 자신은 장기판의 말이 아니라는 어드바이스의 선언이 가장 불안정하게 들린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길티에 이르러서야 알은 안정을 찾게 되었는데, 이는 사실 폭풍전야, 즉 파열을 예고하는 마지막 응축이었다. 길티 때 정교하게 완성된 자아가 내뿜는 내부의 압력(길민)과 외부의 시선(관음)이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다. 알은 단단하게 완성되었지만 너무 단단해서 깨져야만 했고, 태민은 ‘길민’이라는 캐릭터를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받게 되었다. <Metamorph> 콘서트는 바로 이 시점, 즉 단단해진 알이 ‘변태’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진행되었다.
<Ephemeral Gaze> 콘서트(이하 시선콘)는 태민이 알이라는 하나의 자기 완결적 세계를 깨고 우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선콘에서 강조된 ‘원’은 눈인 동시에 알이었던 것이다. 주체와 대상의 시선이 어긋날 때, 즉 실제 나와 남들의 눈에 비친 내가 다를 때, 인간은 분열을 겪는다. 그리고 알 내에서의 분열은 그 자체로 세계의 분열을 의미한다. 하지만 알을 깨고 나온 뒤, 여러 시선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겪는 분열은 내가 존재하는 평행우주를 늘려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시선콘은 태민이 일관된 ‘알’과 같은 자아에서 여러 가능성이 공존하는 우주적 자아로 뻗어가는 과정을 표현한 콘서트다. 이게 바로 시선콘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앨범인 이터널이 일관된 콘셉트보다는 다채로운 색깔의 음악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이번에 태민은 아레나 투어 소식을 알리며 “베일의 안쪽에 숨어 있는 태민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이는 일종의 선언처럼 보인다. 즉, 깨진 알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우주를 바라보던 태민이 알을 감싸던 마지막 외피, 혹은 우주적 장막을 모두 벗어던지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감춤 혹은 관능을 가능케 했던 모든 장치를 해체하고, 타자 혹은 세계와 정면으로 눈을 맞추겠다는 것. 그게 베일콘의 메시지 아닐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글의 도입부에서 언급한 언어유희로 돌아가야 한다. 베일을 벗고 시선이 향하는 곳을 드러냄으로써 관객과 진정한 ‘공명’을 하겠다는 게 왜 ‘EVIL’로 이어지는 것일까?
태민이 영감을 받았다는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즘>에 따르면, 인간은 연속성, 즉 진정한 의미의 ‘공명’을 위해 금기를 넘어야 하며, ‘금기’는 세속과 신성, 일상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이다. 그리고 그 금기를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의 체험이 필요한데, 이때 등장하는 게 바로 무대라는 공간이다. 태민은 무대에 몰입한 순간 의식이 서서히 멀어지는 신비한 상태에 빠진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이는 바타유가 말하는 ‘작은 죽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대는 죽음이 재현되는 제단이며, 태민은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제물인 동시에 우리를 죽음과 신성의 경계로 인도하는 일종의 사신과 같은 존재다.
이제 베일은 죽음의 옷자락처럼 보인다. 포스터 속 붉은 천은 피처럼 흘러내리고, 그 속에 감춰진 어둠 속의 태민은 제단 앞에 선 인도자의 형상을 띤다. 그가 서 있는 세계는 모든 시선이 영원히 만나는 진정한 연속성의 공간, 죽음의 세계이다. 그래서 VEIL은 위선 혹은 EVIL이 될 수 있다. 태민이 마지막 관능의 외피를 벗는 순간, 우리는 죽음과도 같은 영원을 약속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