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린내 풀을 그려보기로 했다. 직접 본 것이니 특징을 살려 그릴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나는 누린내 풀을 본 게 아니고 하늘거리는 보랏빛 꽃과 독특하게 생긴 수술에만 마음이 빼앗겼다는 걸 말이다.
스케치를 하며 나는 누린내 풀꽃 사진을 꼼꼼히 보았다.
꽃잎은 다섯 장인데 아래쪽 꽃잎 한 장이 달랐다. 혀를 내민 것처럼 길고 하얀 점무늬가 있었다.
수술은 네 가닥인데 세 개는 노란 꽃가루가 매달려 있고 나머지 한 가닥 끝은 검은색 갈고리모양이었다.
나뭇잎은 결각이 있고 마주나기였다.
열매는 꽂이 진 자리, 꽃받침 안에 맺혔다. 그 모습이 마치 둥지 안에 있는 아주 작은 새알 같았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꼼꼼히 보고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다 그려놓고 보니 이상했다. 그림 솜씨가 모자라서라고 자책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별꽃님이 말해 주었다. 나뭇잎에 잎자루가 없이 그려서라고 말이다.
직접 보고도 모르고 사진을 보면서 그려도 특징을 잡아내지 못했던 거다. 색칠된 물감을 지워 잎자루를 만들어 나갔다. 자국이 남아 아쉬웠지만, 누린내 풀이 잎자루가 있다는 걸 절대 잊지 않을 것 같다.
누린내 풀은 누린내가 난다고 누린내 풀이라고 불렸단다. 풀잎을 비벼보면 과연 누릿한 냄새가 난다. 별꽃님은 이 냄새가 싫지 않단다. 이 냄새를 좋아하는 이가 또 있는 것 같다. 바로 검정꼬리박각시나방이다.
검정꼬리박각시나방은 누린내 풀 위를 떠나지 못하고 뱅글뱅글 맴돈다. 처음 검정꼬리박각시나방을 본 나는 독특한 모습의 벌이라고 생각했다. 벌새처럼 입이 뾰족하고 길었지만 꼬리 부분은 검은색이고 몸 전체는 갈색이었기 때문이었다. 히어리님이 벌이 아니고 검정꼬리박각시나방이라고 알려 주었다.
모임은 이래서 좋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는 다시 수리산으로 향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누린내 풀꽃은 많이 시들어 있었다. 하지만 꽃이 활짝 핀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이 보였다.
찬찬히 봐주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