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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운진 Apr 07. 2023

우리는 모두 시시포스다


    오늘은 어제와 같고 내일은 또 오늘과 같을 것이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그것이 삶이고 일상임을 알지만 그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불모의 느낌이 들 때면 여행을 꿈꾸거나 일탈을 상상하곤 한다. 오로라가 커튼처럼 하늘거리는 밤하늘을 온 몸이 얼도록 바라보는 시간과 이름 모르는 낯선 도시의 기차역에 내리는 발걸음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를 때나 서서히 쇠락할 때나 하염없이 마주할 고요는 또 얼마나 벅찰 것인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 환희를 수없이 생각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마음이 찾아가는 거리만큼 무거울 뿐이다.


    어떤 소망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어떤 희망도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어떤 행복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날들이면 가벼운 위로보다 더 깊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나 얄팍한 꿈으로 덮어버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고통을 보여줄 때 더 위안을 받는 것처럼, 타인의 고통에 내 고통을 견주어 보는 일은 때때로 좋은 약효를 낸다. 그런 의미에서 시시포스는 내게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존재와 같다.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을 납치한 제우스를 고발하고 죽음의 신을 속인 죄로 시시포스는 저승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바위를 밀어 올리라는 형벌을 받았다. 그런데 그 바위는 정상에 닿는 순간 다시 저승으로 떨어지고 시시포스는 영원히 그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므로 결코 끝나지 않는 형벌을 떠안게 된 것이다. 도망갈 곳도 바위를 피할 길도 없는 시시포스는 오늘도 바위를 밀어 올린다. 한 발자국씩 한 걸음씩 산꼭대기를 향해 걸어간다. 거의 부서지기 직전의 몸으로 시시포스는 바위를 옮기며 어떻게든 자신의 몸을 견디고 운명을 견딘다. 신들은 그에게 형벌을 내리면서 되풀이되는 고통과 좌절을 끝내도록 차라리 죽음을 달라는 시시포스의 애원을 바랐는지도 모르겠지만, 시시포스는 바위와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카뮈는 정상에서 다시 바위를 향해 되돌아 내려오는 시시포스의 걸음을 바라보고 그 순간 깨어있는 시시포스의 의식을 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하여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시지프 신화』를 읽으며 나는 이 말에 많은 빚을 졌다. 일상의 무게 뿐 아니라 바란 적 없는 운명이 나를 움켜쥐었을 때, 나는 시시포스의 바위를 짊어 졌다는 생각을 했었다. 운명의 저울에 올려진 내 바위의 무게만 생각하느라 심장이 쪼그라들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티치아노의 시시포스를 볼 때면 벌거벗은 내가 보였다. 바위에 찢어지고 깨진 수많은 상처들만 보였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무엇에 화풀이를 해야 할지 몰라 나를 미워하고 할퀴던 날에 카뮈를 읽었고 그의 글은 나를 묶었던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우리를 떠받쳐준다면 무엇 때문에 고통스럽겠는가? 하지만 삶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바위는 또다시 굴러 떨어질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향해 가는 시시포스의 그 묵직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걸 자꾸자꾸 생각했다. 희망의 약속도 없는 끝없는 패배에도 굴복과 절망을 하지 않는 시시포스. 이것이 카뮈가 말한 진정한 저항임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나는 내 하루가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어쩌면 시시포스는 수없이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아름다움을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해보곤 했다. 어제의 꽃나무에서 오늘의 열매가 달리는 모습도 보고, 아침의 구름이 오후의 석양이 되는 것도 바라보며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매번 느꼈을 것이라고. 때로 우리는 잠깐 붙잡힌 풍경만으로도 고통을 넘기고 사소한 의미로도 큰 바위를 옮기기도 하니까.


    우리는 각기 다른 삶의 중력과 바위를 지닌 채 끝까지 나아가야 하는 시시포스다.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행복한 우연과 달콤한 결말을 기대하는 일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으며, 슬픔과 아픔은 막을 수 없고 바위처럼 늘 제자리로 돌아오고 자꾸만 돌아오고, 그 속에서 매일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삶의 진짜 의미인지도 모른다. 기록할 만한 인생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나는 내 바위와 함께 울퉁불퉁한 산길을 오른다. 머리 위에는 태양이, 가슴에는 뇌우가 내리쳐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이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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