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 새 학기의 시작 – 이곳은 강원도 홍천
한 학기 동안 학교와 산골 생활에 적응을 잘해준 자녀들이 고마웠다. 펜션에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게 마음으로 신경 써주신 펜션 지기와 사모님께도 감사했다. 그렇게 강원도의 겨울을 뒤로하고 방학 동안 서울로 돌아왔다. 언제나 따듯한 방과 끊임없이 나오는 온수가 새로웠고, 도시의 다양한 편의시설이 참 편리했다.
강원도에 있으면 편하고 따듯한 서울이 그리웠고, 서울에 있으면 강원도의 청정함이 그리웠다. 내가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방학 동안 자녀들은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엄마와 매일을 함께하니 행복했을 터다. 하지만 너무 편했던 탓일까? 나는 아버지의 병환을 핑계 삼아 일상이 조금 무너졌다. 어그러진 루틴 사이로 스마트폰과 야식 같은 부정의 습관들이 자연스레 침투했다. 청정한 곳에서 한층 맑아졌던 몸과 마음이 탁해지는 기분이었다.
살아가면서 부지런할 때가 있으니 게으를 때도 있다고 위안 삼았지만 역시나 몸이 편하니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같은 상황이라도 산골에서는 산책을 하고 눈을 쓸며 몸을 굴리면 금세 정신이 맑아졌을 터다.
같은 환경에서는 그에 걸맞은 행동이 자연스러울 뿐이다. 의지가 나약한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뀌어야 한다. 새 학기가 다가왔다. 반년 남은 농촌유학 기간 동안 산골 펜션에서 산책과 루틴으로 다시금 일상을 바로 세워야겠다.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는 동안 이곳에는 함박눈이 내린다. 장갑과 귀마개를 하고 눈을 쓸러 가야겠다. 이번에 내리는 눈이 마지막일까?
늦은 추위에도 다가올 산골의 봄이 더더욱 기대된다.
아흔셋. 장로님의 인생 조언 – 다시 기본으로
홍천으로 온 다음날 아침을 먹고 산책을 했다. 3월에 내린 늦은 눈을 구경하며 그간 그리워했던 맑은 공기를 실컷 마셨다. 산책의 돌아오는 이정표는 이곳에서 다니고 있는 교회의 장로님 댁. 때마침 아흔이 넘은 장로님께서 눈을 쓸고 계셨다. 인사를 드리고 지나치려는 찰나 들어왔다 가라고 여러 번 손을 흔드신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장로님 내외분의 손에 이끌려 어르신들의 시골집에 첫 방문을 했다.
정갈한 실내에 한번 놀라고, 많은 고서와 직접 그리신 그림들에 또 한 번 놀랐다. 전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 다니신 사진에 그간 두 분의 행복했던 시간들이 쉽게 상상되었다.
간식거리를 주시며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었는데, 다가올 50대와 앞으로 펼쳐질 중장년을 대비해 꼭 갖추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 주셨다. 특히 건강(음식, 운동)과 취미(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돈에 대해 그분들의 지혜를 과감 없이 나누어주셨다. 네이버 은오(은퇴 후 오십 년) 카페에서 반평생 이상을 성실히 살아온 인생 선배들의 말을 수시로 읽어 왔던 터라 어떤 말씀인지 이해되었다. 조언주신 일부분은 다행히 루틴에 포함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쉬운 이야기들. 역시 본질, 진리 같은 것들은 그 속성이 쉽고 단순하다. 다만 이를 염두하며 일상을 충실히 대하냐의 여부에 일생의 건강과 풍요 그리고 행복이 결정되는 것이다.
취미로는 그림을 그리셨고 책장에는 성경책이 펴져 있었다. 수시로 묵상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자녀들도 참 잘 키우신 것 같았다. 아빠 따라 농촌유학온 우리 여니 주니가 생각났다. 역시나 자녀 교육이나 좋은 관계 또한 모든 일이 그렇듯 내 문제라는 생각이 스쳤다.
자녀 교육이랄 게 별다른 게 있을까? 내가 바로 서면 되는 간단한 일 아니었을까? 내가 규칙적으로 생활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바른 자세와 예의 배려 성실 차분함 같은 긍정의 태도가 몸에 배어있다면 이를 따로 자녀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자녀들이 삶의 기본기만 갖춘다면 그들의 미래가 걱정이 안 될 것 같다. 나머지의 삶은 그들의 몫일 테니. 좌충우돌했던 내 인생처럼.
40대 중반에 나와 주변을 둘러본다. 진퇴양난이란 말이 적절하다. 모두들 삼중고 사중고의 가운데 있다. 자녀 양육, 가족들의 건강에 회사 문제와 경제 상황까지 복잡한 일들이 사방을 에워싸 포위당한 것 같은 기분이다. 덧붙여 몇 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체력까지 한 몫한다.
해결책은 간단해 보인다. 복잡할 것 하나 없다. 다시금 기본으로 돌아가면 된다. 외부에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다. 모든 문제와 그 해답은 내 속에 있다. 행복과 불행이 모두 내 선택이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자녀도 나의 선택이다. 다시금 운동하고 명상하고 글을 쓰며 나를 다잡는다.
어른께서 말씀 주신 기본들을 되새기며 오늘을 그리고 지금을 충실히 즐겁게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