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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 Mar 30. 2023

쿠르베, 드가, 버스킹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아무 말 대잔치 뇌피셜 주의


느지막이 메트로폴리탄에 들어갔다. 그저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에 정신을 놓고 무리했더니 처음에는 뉴욕이 그냥 크고 잘 정돈된 도시처럼 느껴졌다. 첫날은 쉬었고 둘째 날 센트럴 파크는 여유 있고 상당히 아름다웠지만 완전히 늘어져 즐기지는 못했다. 오늘도 늦게 집을 나와 어제 행사로 입장할 수 없었던 메트로 폴리탄을 방문했다.


어딘지 모르고 대충 박물관이겠거니 했더니 루브르 같은 거대한 미술관이었다. 아차 싶었다. 선사 고대의 각종 미술품부터 현대 미술까지 광범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집트 미술들 앞에서 왜 이게 여기까지 와 있어라는 당연한 질문이 떠올랐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집트 고대미술 같은 박물지보다는(이게 더 흥미가 있었지만) 근대 유럽미술로 향했다. 하느님과 신화의 관습과 코드 속에 자신의 개성을 심어둔 중세미술은 패스할 수밖에 없었고 직관적으로 그들의 감정과 미적 태도를 알아차릴 수 있는 근대미술이 편안했다. 개인적으로는 조형을 분해 파괴하고 더 원초적인 감각과 유희적 실험들이 넘쳐나는 현대미술이 더 좋지만 말이다.


피카소처럼 무엇을 아무렇게 그려도 어디서나 눈에 들어오는 작가들이 있다. 쿠르베도 그 중 하나. 비슷한 소재의 수많은 초상화들, 다양한 작품들 속어서도 왠지 쿠르베의 작품 앞에서는 멈추어 서게 된다. 모딜리아니처럼 하나의 양식 자체가 아름답고 눈에 띄는 것과는 다른, 재능의 영역이다. 집중력이 떨어져 오늘은 감상이 텃네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서 멈추었는데 또 쿠르베였다. 초상화를 시체색처럼 그려 우울한 작품이라 말하기에는 블랙유머가 가득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삶과 죽음 욕망과 같은 인간적 고뇌들을 마치 저 위의 악마의 시점에서 보면 저러려나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어찌 보면 이런 정서도 동시대에서 냉정하게 보면 컨셉충에 그저 자극적인 것이라 눈에 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런 면에서 드가는 참 쌉쌀한 느낌이 있다. 모네가 런던 타워 같은 미친 작품들을(오르세에서 정말 20분 동안 넋을 놓고 보았다.) 보여주고, 많은 작품들이 그야말로 인상적인 작품을 보여주지만 드가의 다소간 하얗게 바랜, 마치 시간과 햇빛에 바랜듯한 그림들에는 그 공간의 먼지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힘을 잃어가는 빛의 느낌과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역동적 구도가 겹쳐 묘한 쌉쌀한 느낌을 준다. 인상주의 작품들을 무척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과잉 속에서 드가는 묘하게 품위 있는 인상의 표현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러저러한 그림을 보다 고흐 앞에서 퇴실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오르세에서도 고흐만 보지 못했다.


메트로 폴리탄을 나와 리틀 이탈리아를 걸으며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 정감 어린 건물들을 보게 되었다. 뉴욕을 느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지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의 나름의 문화들이 무척 궁금해졌다. 꼭 한번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졌다.


이러저러한 공원을 다니다 해 질 무렵 대학건물 주변에 있었던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들리게 되었다. 그러다 개선문 같은 건물 아래에서 첼로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클래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그 세계에서 어디까지 가 있는 연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음악이 되고 있는 연주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음악이 되지 않는 버스킹들은 지나친 자의식이 불편할 때가 많다. 처음으로 팁을 주었는데 그가 바로 다음곡을 연주하지 않았다면 so harmonius with wind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바람에 가릴 듯 실려오는 첼로소리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타임 스퀘어를 돌아보고 오는 지하철에서 연주하는 분을 만나기도 했다. 블루지 하면서도 불협화음을 적절히 꽂아 넣는 꽤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음악이었다. 락의 뿌리가 블루스라는 것을 한 음악 안에 느낄 수 있었다. 합주가 잘 되고 있지 않았지만 감각 있는 연주였다. 다음곡은 좀 더 무난한 곡이었지만 짧게 삐끗하는 에지를 놓치지 않았다. 지렸다. 거리 음악의 레벨이 어제 들렸던 공연장보다 좋았다. 흑형들의 소울이란. 24시간 지하철이 다니는 뉴욕이 좋아졌다.



2017년 중남미 여행기를 꺼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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